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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작가 시점] 진짜 고구마다운 삶, 권희선

16.04.12 2

<전지적 작가 시점>은 노트폴리오에 작품을 게재하는 작가를 선정해 그의 작품을 인터뷰하는 자리입니다. 그동안 작가가 어떤 의도로 이런 그림이 그렸는지, 무슨 생각으로 이런 표현을 했는지 궁금하셨죠? 앞으로 진행되는 <전지적 작가 시점>을 통해 작가보다 작품 중심의 이야기를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 권희선 

#01. 왕구마

<끙차> 

<구마구마 잼잼>
구마구마 잼잼은 왕길동 고구마 99% + 콩콩아지의 콧물 1%로 정성스럽게 만들어 집니다 


왕구마의 탄생에 대해 알려달라. 왕구마는 언제 어디서 권희선의 손에서 태어났나.

몇 년 전, 청소년수련관 인턴으로 근무 했었어요. 그림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게시판 꾸미는일을 맡았었는데, 우연히 자른 종이의 뾰족한 머리 모양이 고구마 같았죠. 마치 숨어 있던 고구마를 발견한 기분이었어요(웃음). 형태가 정말 웃겨서 사진으로 찍어 놓았고, 언젠가는 꼭 재미있는 것을 만들겠다고 생각했었답니다. 일년 반이 지난 후, 그림을 시작하면서 제일 처음 그렸던 그림이 ‘왕구마’였어요. 왕구마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제일 많이 듣는 질문이 '왜 하필 고구마냐', '감자는 안 좋아하나보다'라는 편견이에요. 설명하기 쉽지 않을 때는 '감자보다 고구마가 좋아서요.'라고 대답하곤 하지만, 사실 제 입맛은 고구마보다 감자랍니다!

- 왕구마를 처음 발견했을 때, 왕구마의 탄생, 출처: 작가제공 

 

<구마구마 잼잼>은 그동안 상상해본 적도 없던 ‘쨈’이다.

개미가 와글와글 모여있는 모습을 보면,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나도 모르게 계속 쳐다보게 되잖아요. 징그러운데 귀엽기도 하고, 꿈에서도 나오고, 밥 먹다가도 생각나고. 그래서 ‘왕구마들이 와글와글 모여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는 생각으로 작업했어요. 대신 개미처럼 기어 다니면 너무 불쌍해 보이니까 병에 넣어봤어요. 이왕이면 맛있게. 개인적으로 <구마구마 잼잼> 이라는 이름도 엄청 마음에 든답니다.

 

잼을 만드는데 드는 ‘왕길동 고구마’는 ‘왕구마’와 다른 고구마 인가?

‘왕구마’는 사실 ‘왕길동 고구마’의 줄임말이에요. 저는 왕길동에 살고 있는데 누군가 ‘어느 동네 사세요?’라고 물을 때마다 부끄럼을 타며 대답하곤 했어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당당히 말하고 싶었죠. 그래서 결정했어요! ‘왕길동에 사는 고구마를 그려보자’고.

 

권희선이 생각하는 진짜 ‘고구마다운 삶’은 어떤 삶인가.

고구마다운 삶은, 자신이 고구마라는 것을 인정하는 삶이에요. 저도 그래요. 저라는 사람을 온전히 받아드리는 것이 너무 어렵거든요.

TV를 봤네

아침이네

 

왕구마 작업과 그 외 일러스트 작업에 조금 차이가 있는 거 같다. 왕구마는 수채화의 면으로 채워진 느낌이라면, 그 외 일러스트는 크레파스로 채워진 느낌이라 해야 할까? 작업과정의 차이를 알려달라.

일러스트 작업은 스케치부터 채색까지 모두 수작업으로 진행해요. 이런 작업은 재료의 질감과 예측할 수 없는 ‘색의 섞임’ 때문에 즉흥적인 맛이 있어요. 작업이 끝나면 스캔을 하죠. 그리고 포토샵에서 마무리 정리를 해요. 반면, 왕구마 작업은 처음부터 끝까지 컴퓨터로 해요. 스케치부터 채색까지 포토샵으로 진행하죠. 그런데 저는 컴퓨터가 무섭고 어려워요. 온몸이 경직되는 기분이 들어요. 그래서 왕구마 작업이 뜸한데, 이 부분이 항상 고민이에요.

왕구마가 체크무늬 바지를 즐겨 입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바지 어떻게 그리지?'하고 고민하고 있으니 동생이 그려주었어요. 저도 마음에 들어서 그때부터 체크 바지로 그리고 있고요. 왕구마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까요? 사실, 다른 바지를 입혀 본적이 없네요. (웃음)

 

왕구마의 평소 표정은 눈이 양끝으로 올라가 새초롬해 보인다. 

왕구마를 그릴 당시 제 자신에 대해 화가 많이 나있었어요. 그만큼 고민도 많았고요. 그래서 왕구마에게 그런 감정을 대입해봤는데, 그러다 보니 양쪽 눈 끝이 올라가 있고 입은 앙 다물어 심술을 부리는 것처럼 되었어요. 어느새 이게 왕구마의 기본 표정이 되어있네요.

 

밝고 귀여운 화풍의 일러스트 작업을 하고 있다. 그래서 가끔은 마치 동화책을 보는 듯한 느낌도 든다. 주로 유쾌한 작업을 하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

유쾌하고 기분 좋은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한다는 건 정말 기분 좋은 일이에요. 그리고 누군가와 나눌 수 있다는 점도요. 이건 저의 정신 건강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어둡고 우울한 그림도 그려보고 싶지만, 아직은 정말 무서워요.

 

 

#02. 왕가네 아저씨

<집안일> 집안일은 내가 책임진다.


보통 ‘아저씨’하면 출근길 아침에 피곤한 얼굴을 한 중년남성이 떠오르는데 ‘왕가네 아저씨’는 그렇다 하기엔 너무 귀엽다. 기존 ‘아저씨’가 가진 이미지로 캐릭터화 한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왕가네 아저씨는 어떻게 탄생했나.

창문을 열었는데, 반대편 아파트 베란다에 아저씨가 보였어요.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베란다 청소를 하고 계셨었는데 그 모습이 정말 귀여웠어요. 덩달아 저도 기분이 좋아졌고요. 왕가네 아저씨는 그날 바로 탄생하게 되었답니다. ‘그때 아저씨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우리 아빠와 엄마와 비슷할까?’라는 상상으로 그리기 시작했어요.

 

왕가네 아저씨의 간략한 신상을 알려달라.
신상은 비밀이에요. 그림으로 차근차근 보여드릴게요!

 

 

 

같은 맥락에서 권희선의 작업을 보면, 왕아저씨의 ‘대머리’와 뽈록한 ‘배’가 마냥 귀여운 만큼 ‘뭐든지 귀엽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작품 속 귀여운 포인트가 어디서 비롯된다고 생각하나.

제가 좋아하는 특유의 포즈와 행동, 또는 라인에서 매력을 느껴요. 이건 참 말로 설명하기 힘들어요. 굉장히 미묘한 차이인데 저는 그 부분만 크게 다가와요. 그래서 ‘귀여운 변태 같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답니다(웃음). 사실 슬프게도, 귀엽게 그리려는 의도가 있던 건 아니고 저 나름대로는 멋지게 그렸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림을 업로딩하고 보니 다들 귀엽다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 이제는 ‘귀여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는걸 인정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네요.

 

집안일을 도맡는 아저씨라니 너무 매력적이다. 왕가네 아줌마는 행복할 것 같다. 그래서 말인데, 왕가네 아줌마는 작업할 의향이 없나.

질문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저는 왜 왕가네 아줌마를 작업하지 않았을까요?

 

왕가네 아저씨, 그리고 왕구마의 근황


왕가네 아저씨는 왕구마를 이용한 요리로 장사를 하는 사람인가?

왕가네 아저씨는 왕구마와 같은 동네에 살고 있어요. 그림에서는 아저씨가 왕구마 장사를 하는 사람으로 보이지만, 제가 그릴 때는 다른 의도로 그렸었어요.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지는 보시는 분들이 해석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왕가네 아저씨, 그리고 왕구마의 근황>을 보면 왕구마는 사실 우리가 아는 평범한 고구마가 아닌 모양이다. 600g에 8000원이면 웬만한 삼겹살 가격이다! 

고기라니! 생각치도 못했네요. 왕구마는 그냥 단순히 고구마예요. 가격이 비싼 이유는 아무래도 사람의 손길이 갔으니, 손길이 닿지 않은 고구마보다 더 비싸지 않을까요? 

한 곡 뽑아볼까?


<집안일>에서도 그렇고 <한 곡 뽑아볼까?>에서도 왕가네 아저씨의 팬티와 메리야스 차림, 분홍색 니트와 벨트 같은 요소가 ‘극 사실주의’다.

뱃살을 힘들게 버티고 있는 아저씨의 벨트를 생각하면 귀엽고, 다 늘어진 메리야스 차림을 보면 슬프기도 해요. 이건 우리 주변의 아저씨들, 그리고 아빠의 모습이거든요. 전 그게 멋져요.

 

왕가네 아저씨의 애창곡은?

윤수일의 <아파트>


권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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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인

읽는 사람이 즐거운,
언제나 유쾌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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