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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을 착취하는 이중적인 사회 <토요일 밤>

20.03.26 0

saturday night

 

어느 토요일 밤의 호텔 전경. 화려한 불빛 아래 사람들은 저마다 각자의 휴일을 즐기고 있다. 언뜻 보기에 별다른 특색이 없어 보이는 이 공간은, 사실 다소 충격적인 장면들로 구성되어 있다. 면밀히 그 안을 들여다보면 누군가는 자살을 하고 있고, 누군가는 살인을 저지르고 있고, 누군가는 마약에 쩌들어 있다. 그렇게 구성된 이야기가 총 66여 가지. 일반적이지 않은 이 이야기들은 다소 외설적이고 불쾌하지만,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이 66개의 장면이 모두 신문에 게재되었던 실제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saturday night room

 

사생활을 보호받기 위해 방문한 호텔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공개된다는 점도 흥미롭지만, 66개의 호텔방에서 눈에 띄는 장면이 ‘여성’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실제로 작품에 등장하는 대다수의 여성들은 선정적인 요소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들은 성관계를 하거나, 약을 먹거나, 미쳐있거나, 남성의 성욕구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설정돼 있다. 호텔 속 여성들이 하고 있는 행위는 사회적 규범에 따라 음침하고 더러운 것으로 치부되는데, 희한하게도 사람들은 이런 ‘음침하고 더러운 행위’를 관음하고 싶어 한다. 작품을 보자마자 ‘평범하지 않은 기운’에 사로잡혀 방에 있는 여자들이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흥미로운 시선을 갖게 되는 것 역시 작가의 연출이다. 이러한 의도에 우리는 자연스레 흥미로운 눈을 하고서 방 구석구석을 훑어본다. 이는 사생활을 보호받고자 하면서 타인(특히 여성)의 사생활에 관심이 많은, 현대인의 관음증을 의미하기도 한다.

 

 

작가는 이러한 연출을 통해 특히 여성의 ‘성적대상화’ 현상을 지적한다. 성적대상화란 여성을 하나의 ‘사람’이나 ‘인격체’로서 존중하기보다 주로 성적인 대상으로만 해석하는 현상을 말한다. (ex. 여자는 얼굴만 예쁘면 돼. 저렇게 말라서 아이는 어떻게 낳아, 기 쎈 여자는 남자들이 안 좋아해 등의 말이 해당한다) 그림을 바라보는 우리 역시 이 여성들이 가진 이야기보다 현재 이 여성들이 하고 있는 ‘행위’에 흥미를 느끼니 말이다. 이렇듯 무의식으로 내재하는 성적대상화 현상은 여성에 대한 관음으로 이어지기 쉽다. 작가가 해당 작품을 발표한 건 2003년. 그로부터 17년이 흐른 지금, 우리사회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김인숙은 관심의 폭을 넓혀 인간 관계에서 정신적 결핍을 경험하는 현대 사회의 모순적인 단면을 포착하기도 했다. 그녀가 깊이 파고든 현대 사회의 이슈 중 하나는 본래 가족 관계의 모습이었다. 여기서 그녀가 파악한 문제는 사회 전체적으로 여가 시간이 늘어났음에도 사회 구성원들은 오히려 고립되고 고독에 갇혀있다는 것이다. 그녀의 사진 세계는 이와 같은 현상을 반영하여 현대 사회의 소외감을 상징하는 안식처와는 거리가 먼 파편화된 건물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녀의 이러한 시각은 특히 작품 ‘Saturday Night’ (2007) 에서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호텔 내 개인들은 각자의 외로움에 잠식된 존재로, 현대 사회의 단면과 더불어 무감각한 상태에 이를 만큼 유흥에 매달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김인숙 작가의 작품에서 종종 활용되는 유리라는 소재는 자신의 사생활을 철저하게 감추고 싶어하는 현대인들의 바람과는 상반되는 소재이다. 유리로 만들어진 건축물은 일반적인 건축물의 기능을 상실한 채, 고스란히 내부를 드러낸다. 보고 싶고 또 보여주고 싶어 하는 관음증 사회의 단면이 이를 통해 표현된다. 현대 사회 속에서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CCTV에 노출되어 있지만, 이미 판옵티콘 사회의 포로가 되어버렸기에 그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다. 이러한 아이러니를 통해 작가는 현대인의 고독과 소외라는 주제를 작품을 통해 풀어낸다.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정신적 빈곤을 낳는 황폐한 문명 속에서 작가는 인간의 정체성에 대해 결국 묻고 있다. 출처: 313 art project

 

 

사실 2020년의 지금은 n번방 이슈로 온세상이 시끄럽다. (*n번방이란 각 방마다 운영자가 고유의 번호를 부여해 여성들을 착취하고 불법음란물을 유포하던 온라인 대화방을 말한다.) 세상은 여전히 여성들의 ‘행위’에 관심을 가지며 이들의 ‘행위’를 이끌기 위해 누군가는 협박과 폭력을 자행하고 돈을 벌어댄다. 몸과 마음을 찢기는 건 정작 여성인데, 이러한 여성을 가해하는 남성들의 주머니만와 성욕만이 채워지고 있다. 그 어느때보다 김은숙 작가의 <토요일 밤>이 떠오르는 지금, 흥미로운 눈을 하고서 각 방의 여성들에게 폭력을 자행했던 몇 만의 남성들 모두 호텔 앞에 자신을 드러내길 바란다.

 

김해인

읽는 사람이 즐거운,
언제나 유쾌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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