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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공간, 그리고 코로나 시대의 전시

21.01.06 0

기회가 닿아 보름이 넘는 기간을 지방의 한 아파트에서 보냈다. 코로나 재확산으로 수도권 내 5인 이상 집합 금지가 떨어졌지만, 먹고사니즘을 해결하려면 대면으로 이루어지는 경제활동을 쉬이 그만둘 수는 없었다. 반려하고 있는 개의 산책도 하루 두 번 이상 나가야 했고, 번잡한 서울의 지하철은 마치 TV 브라운관 속 마스크 없는 연예인들의 얼굴처럼 ‘코로나’와는 먼 이야기 같았다.

 

 

고정된 위치에서 주변과 단절되어 존재해오던 서울의 주거 공간은 스크린을 통해 절대 좌표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집은 외부와 분리된 사적 공간이 아니게 되며, 이는 집에 대한 기존의 인식체계를 변화시킨다. 도시인들의 인식 속에서 주거 공간은 기존의 좌표계를 빠져나와 끊임 없이 왜곡되는 새로운 좌표계에 놓인다. 이 왜곡된 공간에서, 서울의 집은 가까워지고 멀어지며, 흘러가듯이 뒤틀린다.

 

지방의 도시는 유독 밤이 빠르게 찾아왔다. 오후 5시면 빠르게 어두워졌고, 아직 개발되지 않은 사면의 한 너른 벌판은 스산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서울에서의 생활은 밤 9시에나 마무리되어서, 이토록 빠르고 긴 밤은 처음이었다. 생필품은 비대면으로 원하는 물건을 양껏 받을 수 있었고, 먹고 싶은 음식은 배달로 해결할 수 있었다. 마치 미래의 한 장면을 그렸던 영화처럼,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집 밖으로 한 발자국 나가지 않아도 윤택한 삶이 이어졌다.

 

현관 주방 

30분 거리의 식당에서 완성된 음식이 현관까지 쉽게 배달되는 서울의 일상은 주거공간의 부엌이 가져야 할 헤게모니를 쉽게 전복시킨다. 집 안 깊숙한 곳의 주방을 현관 앞으로 옮겨버린 것이다. 현관은 배달된 식사를 준비하기 위한 전이공간으로서, 주방의 지위를 획득하게 된다. 배달음식을 효율적으로 받기 위한 냉장 시설, 음식을 빠르게 데우기 위한 조리 시설이 갖춰진 현관은 효율적인 식생활을 추구하는 도시의 명백한 증거물이 된다.

 

이런 느린 삶에 익숙해질 때 즈음, 다시 삶의 터전인 서울로 돌아와야 했고 약간의 욕심을 부려 식물 몇 개를 화분에 심어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 그간 미루었던 액자를 두 점 구입하고, 식물을 재배치한 채 다시 ‘좁고 빨라진’ 생활을 맞이했다. 전염병 확산 이후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면서, 요즘 유독 식물과 자연을 그리는 작업에 관심이 많아졌다.

 

 

집에 꽃과 나무를 심는 행위는 자연과 멀어지지 않으려는 무의식적인 몸부림이다. 하지만 식물은 지속적인 관심과 보살핌을 필요로 한다. -중략- 인간의 본능은 가꾸지 않아도 되는 자연스러운 화분을 원하고, 기술의 발전이 이를 도울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물을 주거나 햇볕을 쐬어주지 않아도 스스로 자라나는 화분을 갖게 된다.

 

다음날, 먹던 약이 떨어져 병원에 방문했고, 사고 싶은 인테리어 제품이 있어 프랜차이즈 대형마트와 디자인 숍, 백화점에 들렀다. 이내 개의 산책을 위해 밖에 나오니, 산책하는 40분 동안 만난 낯선 사람이 20여명, 토종견이 2마리였다. 때때로 낯선 이들의 생각 없이 내뱉는 말은 나에게 큰 상처를 준다. 그래서 개와 산책하는 시간에 만나는 사람을 피한다. 지방의 도시와 서울은 공간의 크기가 달라서, 인구밀집도 역시 다르다. 이 모든 일과 낯선 이와의 만남을 불과 두 시간 만에 이루어졌다. 서울이라는 공간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질병에 대한 두려움은 위생의 전형적 행태를 손을 씻어 불순물을 제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소독제를 분사하여 보이지 않는 세균을 제거하는 것으로 확장시켰다. 청결의 대상이 관찰 가능한 것에서 불가능한 것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청결에 대한 불안은 도시인의 강박이 된다. 수시로 몸을 소독하는 일은 대도시의 일상으로 자리잡으며, 위생기구들은 화장실을 벗어나 가로수가 도시를 메웠던 것 처럼 촘촘하게 도시에 자리잡을 것이다.

 

서울에서의 생활은 촉박하고 좁다. 같은 가격이어도 평수가 다른 ‘집’이라는 공간이 그렇다. 평수가 다른 공간은 여유를 뺏는다. 같은 액자여도 걸 수 있는 공간과 배치가 달라져서다. 재미있는 지점은 ‘서울의 평수’와 ‘지방의 평수’가 다른 가치를 지닌다는 점이고, 나와 같은 세대들은 더이상 ‘내집 마련의 꿈’을 가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현실이다. 그래서 지금 살고 있는 공간이라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고자 마음 먹었다. 코로나로 인해 집이 호텔로, 카페로, 회의실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삼국시대 창고토기

예로부터 저장 시설의 규모는 권력의 지표로서 작동해왔다. 삼국시대의 고상창고가 식량을 보호하는 마을의 요충지였던 것처럼, 역사 속에서 우리는 여분의 재화를 가지기 위해 노력했다. -중략-  이 때 도시의 유휴 공간은 가장 쉬운 표적이 된다. 수납은 공간의 형태를 가리지 앉기 때문이다. 수납장은 서울의 유휴 공간을 제일 먼저 점유할 것이다.

 

이처럼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서울’과 ‘공간’의 의미를 반추할 때 즈음, 비슷한 감상에서의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다. 바로 건축적사무소의 <아파토피아>展이다. 전시는 자본 논리에 따라 변화하는 동시대 공간 구조를 다루는데, 이를 가장 잘 반영하는 ‘서울’의 공간을 메인으로 다룬다. 그중에서도 좁은 땅덩어리에 많은 인구를 담아내는 ‘아파트’와 그 공간을 채우는 수납, 침대, 변기, 세면대, 운동기구, 부엌, 스크린, 화분을 탐색하고 동시대의 의미를 찾는다. 흥미로운 점은 이번 전시가 온라인에서 개최된다는 점이다. 그야말로 동시대 공간의 의미를 동시대적 관점에서 다룬 시도다.

 

 

동시대 도시의 공간 구조는 자본의 논리를 따라 변모해왔다. 서울은 이 상황이 극대화된 도시다. 자본주의에 귀속된 도시는 땅 전체를 균일화된 주거 유형으로 덮어버렸고, 높은 담장과 그 너머에 우뚝 솟은 아파트는 서울에서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단조로운 풍경이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표준화는 도시인의 욕망을 포착할 수 있는 통제변인으로 작용하며 서울 전체를 실험실로 작동시킨다. 서울의 균질하고 통제된 환경에서는 생활의 변화를 관찰하기가 수월하기 때문이다.

 

 

전시 <아파토피아>는 서울이라는 실험실에서 포착한 여덟 가지 조작변인 ─ 수납, 침대, 변기, 세면대, 운동기구, 부엌, 스크린, 화분 ─ 들을 근거 삼아 미래 도시의 단초를 발견하고, 이에 기반하여 도시의 미래를 자의적으로 해석한다. 우리는 이 단서들을 통해 어떤 새로운 가능성들을 발견해낼 수 있을까?

 

바야흐로 ‘공간’와 이를 채우는 ‘물건’에 대한 의미가 새로운 시대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이번 전시를 통해 공간의 의미를 재탐색해보길 바란다.

 



전시기간 2020년 12월 17일 – 2021년 4월 11일    
장소 https://apartopia.kr

김해인

읽는 사람이 즐거운,
언제나 유쾌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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