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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보편적인 감정

21.09.16 0

영원할 것만 같던 사랑의 강렬함이 끝나고 나면, 처음이 언제 그랬냐는 듯 평범한 일상이 시작된다. 흔히 두 사람이 만나 사랑을 꽃피우게 하는 생화학적 호르몬은 2년이 한계라고 알려져 있다. 때문에 이 시기가 지나면, 사랑은 뇌의 반응이 아닌 서로에 대한 신의와 노력으로 유지된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세상사 만물이 그렇듯 시작에는 끝이 있다. 그리고 그 ‘끝’은 사랑이 소실되어 택하는 이별일 수도 있고, 안타깝게도 누군가 먼저 세상을 떠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형태가 어떻든 우리는 상실을 경험하고, 아픔을 느끼며 아쉬움을 토로한다.

 

변하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take waltz)> 출처:네이버 영화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작품들은 ‘사랑’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리고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를 만나 그전에는 알지 못했던 세계를 자신에게 흡수해 세상을 확장해가기 시작한다. 확장된 세계는 어느덧 자신의 일부가 되기도 하고, 사랑이 끝나고 나서도 하나의 취향이자 추억으로 새겨지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는 사랑을 거듭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간다. 문제는 애석하게도 상대와 함께 하는 사랑의 흐름이 모두 나와 같지 않다는 사실이다.

 

사랑의 차이를 다룬 영화 <500일의 썸머>, 출처: 네이버 영화

 

이러한 맥락에서 ‘곤잘레스 토레스’는 두 개의 시계를 배치함으로써 사랑의 시간차를 설명했다. 작품의 제목은 <무제>로 ‘완벽한 연인들’이라는 부제를 가졌다. 사실 <무제>라는 제목만 접하면 해당 작품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하지만 작품의 설명을 듣고 나면 그 의미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사랑의 차이를 다룬 영화 <500일의 썸머>, 출처: 네이버 영화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처음에는 정확하던 시계가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정확성이 떨어지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완벽한 연인들’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분명 함께했던 사랑의 시작점이 시간이 흐를수록 어쩐지 어긋나기 시작한다. 그 이유로는 초침을 돌게 하는 에너지원이 떨어져서일 수도 있고, 어느 한쪽 시계가 고장나서 일 수도 있다. 이렇듯 처음에는 아주 미묘했던 두 시간의 차이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명백해지고, 종국에는 서로 다른 시간을 가리킨다. 하지만 우리는 선택을 할 수 있다. 시간차가 나는 시점에서 서로의 흐름에 맞출 것인가, 아니면 어긋난 채로 둘 것인가 하는 그 선택 말이다.

 

Gonzalez-Torres' Untitled (Perfect Lovers), 출처:Curious.com

 

물론 ‘곤잘레스 토레스’는 서로의 시간을 맞추는 ‘노력’을 선택했던 것 같다. 사실 (충분히 유추 가능하겠지만) 그는 이 작품을 통해 그의 연인과 자신의 시간을 다뤘다. 사랑하는 둘은 어느 순간 어긋나기 시작했지만, 서로의 시간을 맞추려 노력했을 것이다. 하지만 둘은 결국 이별을 택했다. 사실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별할 수 밖에 없던 이유는 곤잘레스 토레스의 연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었다. 몇 년 후, 곤잘레스 토레스도 세상을 떠났는데 그럼에도 두 사람의 시계는 지금까지 여전히 흐르고 있다.

 

Title: Untitled (Portrait of Ross in L.A.), 출처:Curious.com

 

이러한 시계의 속성은 ‘시간이 흐를수록 사랑과 사람은 변한다는 것’과 그럼에도 ‘사랑은 영원하다’는 명제를 다루는 것 같다. 실제로 다른 작품인 <무제: 사탕> 에서 그는 79kg의 사탕더미와 34kg 사탕더미를 관객에게 제공해서 자유롭게 사탕을 먹을 수 있게 했다. 전시 관리원은 매일 처음 무게에 미달하는 kg수 만큼 사탕을 채워 넣었는데, 알고 보니 이 숫자의 의미는 작가의 연인이 건강했을 때의 몸무게와 세상을 떠났을 때의 몸무게라고 한다. 사탕더미는 ‘완벽한 연인’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흐를수록 변하는 속성과 그럼에도 영원한 사랑을 위해 노력하는 작가의 모습을 투영한다.

 

 

한 가지 더 놀라운 사실은 곤잘레스 토레스의 연인은 동성이었다는 점이다. 나아가 동성애에 대한 편견이 좋지 않았던 시대에 활동했던 작가는 ‘성별’보다는 ‘사랑’의 보편적인 속성에 중점을 두어 동성애에 대한 편견 속에서도 많은 이들의 공감을 자아냈다. 어쩐지 그의 작품은 ‘성별’ 이상으로, 계속해서 노력해도 헤어질수 밖에 없는 잔인한 현실을 나타냈을런지도 모른다.

 

연인이 떠난 빈 침대 사진, 출처: MoMA

 

그 어느 때보다 ‘사랑’의 보편적인 특성을 망각하기 쉬운 시대다. 세상사에 치이며 먹고사니즘을 걱정하다 보면 ‘사람’보다 여러 조건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정작 사랑에 필요한 기본적인 감정을 잊게 된다. 이러한 시류에서 곤잘레스 토레스의 작품은 사랑의 ‘순수’ 그 본연의 감정을 나타낸다. 비록 그 역시 8년간의 짧은 작품 활동과 투병으로 젊은 생을 마감했지만, 그가 전하는 사랑의 메시지는 여전히 강렬하게 남아있다.

 

김해인

읽는 사람이 즐거운,
언제나 유쾌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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