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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 때릴 생각’조차도’ 하지 말라,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Artemisia Gentileschi)

14.04.30 0



최근 영화 <한공주>를 보면서 다시 한 번 성폭행을 생각해보았다. 물리적, 신체적, 감정적인 성폭행은 피해자는 물론이고, 사실을 알게 된 모두에게 많은 감정을 남기는 것 같다. 이 영화는 2004년에 있었던 '밀양 성폭력 사건'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영화를 보는 내내 너무 긴장을 해서 무서운 롤러코스터를 타는 느낌이었고, 일어날 때는 다리가 풀리지를 않았다.

밀양지역 고교생의 여중생 집단 성폭행은 2004년 1월 중반부터 2004년 11월 말까지 경상남도 밀양시 가곡동 등지에서 밀양의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1986년생)이던 밀양시, 창원시 거주 남학생들 115명(성폭행 직접가담 40여명 이외 망을 보거나 범행에 직접 가담한 30~70여명이 더 있다는 정황이 포착)에 의해 울산의 한 자매와 그들의 사촌과 기타 여학생들을 밀양으로 유인, 밀양시내 가곡동의 모 여인숙 등지에서 집단 성폭행, 구타, 공갈협박, 금품 갈취해온 강도, 강간, 폭력 사건이다.
이들은 지역 일진으로 부르는 학생들로 일명 밀양연합이라는 유사 조직을 결성하여 활동하기도 했다. 가해자들은 모두 1986년생이다. 가해자 및 가해자들의 여자 친구들이 피해자들이 당하는 장면을 핸드폰과 캠코더 등으로 촬영, 부모에게 발설할 경우 전 세계에 유포하겠다고 협박하였다. 결국 자매들은 1년 가까이 부모에게 말도 못했고, 일부 가해자는 동영상을 인터넷에 유포했다. (위키피디아_ 밀양지역 고교생의 여중생 집단 성폭행)

 

가해자 부모들이 “여자애들이 와서 꼬리치는데 거기에 안 넘어가는 남자애가 어디 있으며, 딸자식을 잘 키워야지. 그러니까 잘 키워서 이런 일이 없도록 만들어야지.” 라고 인터뷰를 하고 있는 사진은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것이 얼마나 무섭게 이해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너무 많은 사건들을 들어서, 그 단어의 의미가 무뎌질 것 같은 ‘성폭행’은, 1500년대에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난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의 이야기에서도 찾아볼 수가 있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 1593년7월 8일 ~ 1651년/1653년)는 이탈리아의 초기 바로크 시기의 여성 화가로, 카라바조의 강렬한 명암법에 많은 영향을 받은 여러 화가들 중 하나이다. 그녀는 10대 때부터 미술에 관한 재능을 보이기 시작하여, 화가였던 아버지 오라치오 젠틸레스키에 의해 미술 수업을 받는다. 초기 바로크 시대의 여성들은 미술을 공부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으나, 그녀는 23살 때 최초로 피렌체 디세뇨 아카데미아의 회원이 되는 영예를 얻었다. 그녀는 여성화가로서 처음으로 역사적이고 종교적인 작품을 그렸는데, 당시에 이러한 주제의 그림들은 여성의 능력 밖이라고 여겨졌다.

그녀가 17살이 되던 해에 그녀의 아버지 오라치오 젠틸레스키는 후원자이자 친구였던 타시 (Tassi)를 강간상습범으로 고발했는데, 이후 아르테미시아는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부도덕한 여자로서 고통을 겪어야 했다. 재판은 7개월간 지속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타시가 그의 아내를 살해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으며, 그의 처제와 간통을 하고 오라치오의 작품을 훔쳐내려는 것을 계획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재판 도중 다른 남성과의 성관계는 없었고, 타시와의 관계가 ‘처음’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아르테미시아는 부인과 진찰대에서 검사를 받아야 했으며 모진 고문을 당했다. 이것은 그녀의 말이 진실임을 증명하기 위한 과정 중 하나로, 만약 그 사람이 모진 고문 와중에서도 같은 말을 한다면 그것은 진실이라는 당시의 보편적인 관점 때문이었다. 이 재판 이후 타시는 1년 형을 선고받게 되고, 이 이야기는 훗날 20세기의 페미니스트들의 아르테미시아에 대한 생각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위키피디아_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젠틸레스키는 성폭행 사건 이후 시기, 고통에 대한 복수심을 많은 작품들에 투영하였다. 특히 자주 사용했던 소재는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유디트>이다.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는 <구약성서- 유디트서>에서 등장하는 인물들로, 유디트가 이스라엘에 침략한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어 이스라엘을 구한 이야기다.

 

<젠틸레스키의 그림>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유디트 (Judith Slaying Holofernes), 1614-20, 캔버스에 오일, 199 x 162cm>  

이 그림에서 젠틸레스키는 ‘유디트’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홀로페르네스의 얼굴에 ‘타시(Tassi)’의 얼굴을 넣어 그림을 그렸다. 유디트는 굉장히 강인하고 한치의 후회도 없는 모습으로 적장의 목을 베고 있다. 입을 굳게 다물고 “한 번에 끝내겠다!”는 표정으로 팔을 움직이는 것 같다. 젠틸레스키는 이 동일한 장면과 주제를 반복하여 그렸다.

다른 화가들은 유디트를 매혹적인 여성 혹은 남자를 파멸에 이르게 하는 팜므파탈(Femme fatale: 치명적인 여자)로 표현한다. 유디트의 얼굴 및 몸의 생김새, 목을 베는 장면들을 비교해보면 얼마나 다른 시각을 가졌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카라바지오 : 젠틸레스키 아버지의 스승인 카라바지오의 그림에서 유디트는 목을 베는 것을 무서워하듯, 뒤로 몸을 빼고 있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 (Judith Beheading Holofernes), 1598, 캔버스에 유채, 145 x 195cm>

 

 

#루벤스 : 루벤스의 유디트는 관능적인 자세와 표정으로 화면을 응시하고 있다.

<홀로페르네스의 머리와 유디트 (Judith with the Head of Holofernes), 1616, 캔버스에 유채, 120 x 111cm>

 

 

#파올로 베노레세:파올로 베노레세라는 이탈리아 화가 역시 유디트를 아름다운 여인으로 표현했다.

<홀로페르네스의 머리와 유디트 (Judith with the Head of Holofernes), 1580, 캔버스에 유채, 111 x 100.5cm>

 

 

젠틸레스키가 그린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관련 주제의 그림들을 다시 보면, 그녀 그림의 ‘유디트’는 굉장히 적극적이다. 오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동태를 살피는 모습 역시 한 치의 망설임이 없다.
 

<홀로페르네스의 머리와 함께 있는 유디트와 그녀의 하녀(Judith and Her Maidservant with the Head of Holofernes), 1625, 캔버스에유채, 184 x 141.6cm>

 

<유디트와 그녀의 하녀(Judith and her Maidservant), 1613-14, 캔버스에 유채, 114 x 93.5cm>
(이미지 출처 : http://www.artemisia-gentileschi.com)


“전 잘못한 게 없는데요.”

1593년과 2004년의 약 500년의 격차가 있는 이야기는 의외로 참 많이 닮아 있다. 왜 항상 사건들은 되풀이되고, 주변부의 사람들과 문화를 중심으로 끌어오는 관용은 없는 건지 생각해 볼 시점이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작품을 주문했던 한 고객에게 보낸 편지를 소개한다.

"나는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줄 것입니다.
당신은 시이저(Caesar)의 용기를 가진 한 여자의 영혼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녀의 말처럼, 이 땅의 모든 약자들이 시이저(Caesar)의 용기를 갖게 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십사

안녕하세요, 십사입니다.
미술, 만화영화, 춤, 피천득님, 법정스님을 좋아합니다.
살아있음을 기쁘게 여기며, 지혜롭고 성실하게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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