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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것을 위한 노력, 알타미라(Altamira) 동굴 벽화

15.06.26 0


- 알타미라 동굴 벽화, 출처 : http://www.travelbook.de/europa/Die-Hoehlen-von-Altamira-267657.html

 

 

 

어린 시절, 내가 살던 오래되고 허름한 단독 주택에는 옆 집과 우리 집을 잇는 벽이 있었다. 시멘트로 잘 발린 벽은 가끔은 임신한 고양이들이 떼 지어 지나가는 길이었고, 옆 집과 우리 집을 구분하는 선이었으며 담쟁이 넝쿨이 자신의 영역을 키우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벽을 칠판 삼아 동네 아이들과 함께 선생님 놀이를 했다. 마치 여러 개의 칠판이 붙어있는 듯했던 그 벽에 나는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적거나 그림을 그리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래서 집이 허물어지기 전까지, 혹여 그 벽 때문에 이 집이 팔리지 않을까 가족들에게 미안했다. 하지만 그 때의 벽은 나를 다른 세상과 연결해주는 통로였으며, 내가 만든 세상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문이었다.


아마 인간의 마음은 모두 비슷할 것이다. 꼭 이루고 싶은 일이 있을 때 물을 떠놓고 밝은 달 아래서 소원을 빈다거나 마음이 답답할 때 꽃잎을 떼면서 ‘된다, 안 된다’를 가늠해보는 행동 같은 것 말이다.


- 알타미라 동굴 벽화, http://www.espanaymas.nl/artikel/virtuele-tour-door-de-grot-van-la-covaciella

 

 

 

이런 마음은 어느 미술사(史)에서든 첫 챕터로 등장하는 ‘벽화’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벽화를 보면 사람들의 마음이 예나 지금이나 비슷비슷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인간은 이루고자 하는 바람이 생기면 그 마음을 흔적으로 남길 수 밖에 없는 존재 같다. 그런데 왜 하필 벽이었을까?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며 책상 앞을 바라봤다. 때마침 책상 앞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나의 소원들과 앞으로 해야 할 일들, 마음을 다잡을 때 보는 문구가 눈에 띈다. 벽화 역시 아마 아주 오랜 옛날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 아닐까. 결국 매번 보는 곳,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곳, 자신의 생활이 지속되는 곳에서 우리는 소원을 이루기 위한 준비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너무나도 많은 변수를 지녔지만, 가지고 있는 마음은 비슷하기 때문이다.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를 보면, 커다란 들소가 그려져 있다.

 

 

 


1879년, 마르셀리노 디 사우투올라는 딸과 함께 스페인 북부의 알타미라 동굴을 탐험했다.
동굴 천장이 어른 머리에서 몇 인치밖에 안 되는 높이였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머리 위에 무엇이 있는지 주목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어린 딸은 동굴 천장에서 놀라운 동물 그림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발견한 이는 이것이 진품이라고 말하였지만, 학자들은 위조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벽화가 진품으로 판명된 것은 프랑스의 라스코 동굴에서 알타미라 동굴의 그림과
비슷한 그림들이 발견된 후였다.

– 캐롤 스트릭 랜드, 『클릭 서양미술사』, 김호경 옮김 (예경, 2010), p. 15




- 출처 : http://www.spiegel.de/reise/aktuell

- 알타미라 박물관의 모습, 출처 : http://en.museodealtamira.mcu.es/index.html

 

 

 

이들은 왜 들소를 그리게 됐을까? 물론 예측할 수 없는 자연을 통제하고자 하는 마음과 저 동물들을 꼭 잡아서 먹어야겠다는 생존에 대한 강한 집념이 만든 주술적인 의지였을 것이다. 그리고 저 주술적인 의미가 당시에만 존재했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책상 앞에 있는 많은 메모와 글귀에도 주술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벽화를 그렸던 예전 사람들이 재미있다. 이들은 그림만 그린 게 아니라 직접 그림을 재현하기 위해 수 많은 연습을 했다. 멍 때리며 그림만 그린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하면 저것을 잡을 수 있을지 철저하게 시뮬레이션 해 본 것이다. 그들은 단 한 번뿐인 ‘실전’의 의미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오히려 지금처럼 모든 것에 몰입하지 않아도 대충 하루가 가는 그런 시대가 아니었기에, 죽을 만큼 강렬하게 원하며 집념을 쏟아 부었을 것이다.



- 알타미라 동굴 벽화, 출처 : http://fglaysher.com/TheGlobe/tag/r1b1b2a1a2/




그런 면에서 이들의 주술은 주술이 아니다. 벽화에 나타난 이들의 주술은 요즘처럼 돈만 내고 나의 미래를 점쳐 보는 수동적인 주술이 아니라 찍어 놓은 목표를 명중하기 위해 행동으로 실천하는 당당한 주술이라고 볼 수 있다. 

나는 다시, 예전 사람들의 마음을 떠올리며 책상 앞에 붙어있는 목표와 글귀들을 바라본다. 이 나약한 포스트 잇들이 힘을 가진 탄탄한 방탄 종이가 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한 열망과 집념의 노력이 이 종이들을 빛나게 해줄 것이다.

 

 

 

십사

안녕하세요, 십사입니다.
미술, 만화영화, 춤, 피천득님, 법정스님을 좋아합니다.
살아있음을 기쁘게 여기며, 지혜롭고 성실하게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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