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Column  /  십사

삶의 궤적을 그리는, 이상원 화백

15.11.27 1

<동해인> 한지 위에 유화물감과 먹


언제부터인가 백종원씨가 종이컵으로 계량을 하며 요리를 하는 게 무척 편해 보여서, 이번 주말에 김장을 할 때는 할머니께 양념을 꼭 종이컵에 담아 계량해달라고 부탁했다. 좋은 파와 무를 사서 운반하는 것을 도와드렸으니 그 대가로 바란 것이었다. 일이 있어 함께 양념을 만들 수 없으니, 꼭 그 양념 맛을 익히고 기억하고 싶었다. 할머니는 흔쾌히 알겠다고 하셨다.

 



<동해인> 한지 위에 유화물감과 먹


일을 보고 집에 들어가니, 할머니는 크고 빨간 함지박에 이미 양념을 버무려 놓은 상태였다. 엄마와 나는 그 옆에 앉아 배추에 속을 넣기 시작했다. 소금에 절어 힘이 빠진 배추는 그 상태로도 최상의 맛을 냈는데, 할머니의 속이 함께 하니 맛은 배가 됐다. 나는 ‘할머니가 해주는 김장 김치를 언제까지 먹을 수 있을까’는 생각이 들었다. 삼대(三代)의 여자가 둘러앉으니 이야기꽃이 피었는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돌아가신 할아버지 이야기가 나왔다.

 

할머니는 내가 태어나기 전, 이미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당신의 병을 고쳐야 하니 꼭 굿을 하자고 하셨다며 힘든 과거를 이야기 해주었다. 당시 할머니는 아픈 할아버지를 돌보며 혼자 세탁소를 운영했고, 산에서는 나무를 베어다가 땔감 재료를 만들었다. 할머니는 그 때 번 돈의 상당량을 굿하는데 썼다며 김치 속을 버무렸다. 우리 할머니 손에 남은 주름이 마음이 아팠지만, 그저 씁쓸하게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을 뿐이었다. 그러나 굿을 하는 무당 옆에서 손을 비벼가며 아픈 남편이 영험한 기운을 받기를 기도하는 젊은 할머니를 상상하니 마음에 파도가 일었다.

 

<동해인> 한지 위에 유화물감과 먹


문득, 나는 할머니 나이가 된 나를 생각해 봤다. 지금도 벅찬데 미래까지 생각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지만, 나의 미래도 멀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다. 눈을 떠 보니 어느새 이십 대의 후반인 나를 생각해보면, 조금만 훅 지나면 마흔이 되어 있을 것 같고 그리고 잠깐 졸고 일어나면 오십이 되어 있을 것 같아서였다.

 


 

<동해인> 한지 위에 유화물감과 먹

 

많은 인물들을 만나보면 그 중에 내 마음 속에 깊이 파고드는 얼굴들이 있다.
그 얼굴은 삶의 진정성을 일깨워주는 얼굴들이다.
의도치 않았지만 주름지고 못생긴 노인들 특히 노파의 얼굴에서 그런 감정을 느꼈다.

ㅡ 이상원 화백

 

나는 할머니의 손에서 이상원 화백의 그림을 기억했다. 이번 가을, 먹먹한 안개를 담고 있던 산 중턱의 ‘이상원 미술관’에서 그의 작업을 만났다. 큰 화폭에 담겨 있는 사람들은 나의 할머니보다도 연배가 있으신 어르신들이었다. 사실 이렇게 큰 화폭에 사실적인 노인들이 담겨있는 작품은 처음이라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그들의 얼굴에는 주름이 깊게 패여 있었지만, 되레 그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상원 화백은 아주 잠깐의 찰나, 아주 짧은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동해인> 한지 위에 유화물감과 먹



이상원화백은 자신만의 한국적 사실주의 화풍을 이룩한 화가이다.
1935년에 강원도 춘천에서 출생한 이상원화백은 30대 후반의 늦은 나이에 화가의 길을 선택하여 순수회화 작업을 시작하였다. 이상원화백은 가난한 농가의 아들로 태어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근대화를 경험하였다.
그가 걸어온 삶의 행로는 다수의 민중이 밟아온 20세기 한국사의 굴곡 그대로이다.
이상원화백의 작품은 산업화와 자본화의 화려함 이면에 놓인 삶의 진실을 밝히고 소외된 존재에 대한 사랑을 드러낸다. 빛바랜 노동자의 작업복을 닮은 작품은 빛나는 땀과 노동의 진정한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

- 이상원 미술관 홈페이지 작가소개 

 

 

<동해인> 한지 위에 유화물감과 먹

 

나무
- 박목월(1991) 


유성에서 조치원으로 가는 어느 들판에 우두커니 서 있는
한 그루의 늙은 나무를 만났다.
수도승일까, 묵중하게 서 있었다.

다음날 조치원에서 공주로 가는
어느 가난한 마을 어구에 그들은 떼를 져 몰려 있었다.
멍청하게 몰려 있는 그들은 어설픈 과객일까
몹시 추워 보였다.

공주에서 온양으로 우회하는 뒷길 어느 산 마루에 그들은 멀리 서 있었다.
하늘 문을 지키는 파수병일까
외로워 보였다.


온양에서 서울로 돌아오자
놀랍게도 그들은 이미 내 안에 뿌리를 펴고 있었다.
묵중한 그들의, 침울한 그들의, 아아 고독한 모습


그 후로 나는 뽑아낼 수 없는 몇 그루의 나무를 기르게 되었다.



 

<동해인> 한지 위에 유화물감과 먹


독학으로 미술을 배워 영화관의 간판을 그리던 작가는, 마흔이 되었을 때 순수미술을 시작했다. 이상원 작가의 작품에 나온 노인들은 마치 나무 같았다. 화려한 꽃과 단풍의 싱그러운 잎은 아니지만, 고목이 주는 단단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여유라고 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는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단단함일지도 모른다. 젊은 시절, 돈을 벌기 위해 상경했다 고향에 다시 돌아와서 작업을 했던, 그렇게 뿌리를 찾아 다시 돌아온 그의 삶도 나무와 같다. 나는 작가의 그림을 보고 인간은 결국 자연으로 돌아가 자연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늙을수록 피부를 포함한 외적인 부분은 점차 굳어가지만 건강한 사고와 신념, 추억과 사랑 그리고 믿음은 굳지 않는 인간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동해인> 한지 위에 유화물감과 먹


나는 김장을 마치고 손이 새빨개진 할머니의 손을 바라봤다. 손이 시큼시큼, 따끔따끔 하다고 하지만 가족들을 위해 김치를 담그는 거니 아무렇지 않다고 말한다. 나도 가족을 위해 저렇게 단단하고 강해질 수 있을까? 쉬이 답할 수 없었다. 아직 나무가 될 자신이 없어서였다. 그것은 그저 떠벌리기만 하는 책임감이 아니라 어깨와 몸, 그리고 가슴에 ‘책임감’이 박힌 나무가 되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는 아직 누군가를 위해 삶의 일부를 떼어줄 수 있는 여유가 없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사람이 늙는 과정은 다른 사람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과정이다. 할머니의 모습과 이상원 화백의 그림이 그렇듯, 늙어가는 사람들의 깊은 주름살에는 후대의 인류에게 전해 줄 삶의 의미가 담겨있다. 그리고 그 의미는 나이테처럼 궤적을 그린다. 나 또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을 위한 여유 있는 삶의 흔적을 가질 수 있기를. 그의 그림을 보며 다짐해본다.

 

 

 

십사

안녕하세요, 십사입니다.
미술, 만화영화, 춤, 피천득님, 법정스님을 좋아합니다.
살아있음을 기쁘게 여기며, 지혜롭고 성실하게 살고 싶습니다.

1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