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Column  /  김물길

365 ART ROAD - 나의 첫 번째 초상화 주인공

13.12.30 4
 
365 ART ROAD 1화
‘나의 첫 번째 초상화 주인공’

 

'365아트로드'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매일 보고 느낀 것을 그린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껌 종이 쪼가리에 낙서를 하든, 제대로 된 종이에 멋지게 작품을 만든 것이든 모든 것을 다 포함한다. 그림일기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쉬울 것 같다.

그런데 여행을 하다보니 보고 느낀 것들을 그리는 그림일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사람들과 더 소통하고 ‘나눌 수’ 있는 것이 필요했다. 그래서 시작한 작업이 초상화 그리기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22개월 동안 그린 초상화 중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없다. 혼자 꽁하니 간직하는 것은 나의 예술관에 맞지 않기에 모두 주인공들에게 선물로 전달했기 때문이다. 

미얀마에서 좋은 인연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사람, 색다른 인연 Sunil 아저씨. 내가 그린 초상화의 첫 번째 주인공이 된 사람이다.



#

세계일주를 처음 계획할 때 나는 당연히 다들 말하는 ‘세계일주 항공권’을 써야 좋은 건 줄 알았다. 그런데 하나하나 따져보고 계산하다 보니, 오히려 복잡하고 까다로운 규정 때문에 그때그때마다 저가항공편을 구입해 이동하는 것이 훨씬 저렴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세계일주 항공권은 처음 시작 날부터 날짜와 나라를 미리 정해야 했기 때문에 자유롭지 못한 여행이 될 수도 있었다.
출발 전 한국에서 구입한 항공권은 인천-인도(스탑오버, 경유지: 태국), 인도-남아공, 이렇게 두 개였다. 경유지 태국에서 스탑오버 3주를 잡고, 방콕에 도착하자마자 미얀마로 이동해 미얀마, 태국, 라오스를 여행했다.

그렇게 미얀마는 365아트로드의 세계일주 첫 번째 여행지가 되었다.

No. 5
<소 수레>, Myanmar, 2011

2012년도 미얀마 새해달력, 현지에서 구입한 펜

 

Golden Rock, Myanmar



2011년 12월 17일

산꼭대기에 금으로 뒤덮힌 바위가 아슬아슬하게 걸려있는 Golden Rock을 보고 난 후 이동했던 Nyaungshwe 마을 Inle Lake에서 보트를 함께 탔던 게 첫 만남이었다. 노 젓는 아저씨 외에 투어 손님이 Sunil 아저씨와 나 뿐이었기에 호수를 돌아보는 몇 시간 동안 서로 많은 얘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 보트 앞자리에 타고 있는 Sunil

 

No. 7
<Inle Lake> Myanmar, 2011

 

Sunil 아저씨는 인도 출신이고, 현재는 미국에서 살고 있다고 하셨다. 그런데 그 날 함께 숙소 근처 거리 식당에서 저녁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그는 NASA 과학자이자, 엘리트 교수님이셨다는 것. 뭔가 나와는 거리감이 있는...

그때의 인연으로 Sunil 아저씨와 나머지 미얀마 여행을 하고, 함께 태국으로 이동했다. Sunil 아저씨는 가끔은 아빠처럼 가끔은 선생님처럼 나를 챙겨주고 많은 정보를 주셨다. 방콕으로 돌아가서 나는 저렴한 호스텔에, Sunil 아저씨는 근처 좋은 호텔에 묵으셨지만, 저녁 시간이 되면 함께 밥을 먹자며 저녁을 사주시곤 하셨다. 우리는 항상 저녁을 먹고 아저씨는 슈퍼에서 맥주를, 나는 음료수를 사서 길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얘기를 하곤 했는데, 신기하게 굉장한 엘리트임에도 불구하고 사는 이야기, 사랑 이야기, 마음 아팠던 이야기 등 친구와 카페에 앉아 떠는 수다와 별 다를 게 없었다. 머리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사람은 다 같은 사람이다. 뭔가 나와는 '다를 것' '소통이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 생각이 참 짧았구나라고 피부로 느꼈던 작은 사건이었다. 

Sunil 아저씨는 사십대인데 아직 결혼을 안 하셨다. 왜냐하면 예전에 사랑했던 여자와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 여자가 사고로 죽었단다. 그 뒤로 다른 여자를 만나보기도 했지만 결혼을 결정하기가 힘들었단다. 그 말을 들으니까 마음이 슬펐다. 나도 여행을 시작하기 며칠 전 친할아버지께서 사고로 돌아가셨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갑작스럽게 보내야 했던 상처를 공감할 수 있었다. 우리는 한동안 서로 그리운 사람에 대한, 약간은 슬픈 얘기를 나누었다.

- 첫 초상화 선물, 양곤공항에서


Sunil 아저씨는 개를 키우는데 이름이 MUJU(무주). MUJU는 아저씨의 영원한 연인이자 딸이자 친구라고 했다. 아이패드 비밀번호를 MUJU를 사랑하는 내용으로 사용할 정도로 아저씨는 MUJU는 각별한 사이였다. 아저씨에게 선물을 하나 해드리고 싶어 아저씨가 사랑하는 개 ‘MUJU’와 함께 찍은 사진을 받아 초상화를 그려 드리기로 했다. 그와 함께한 여행의 마지막 날, 그림을 받고 너무 행복해 하시며 절대 구겨지면 안 된다고 책 사이에 고이고이 넣으시던 그 모습이 아직도 내 기분을 좋게 만든다.

우리는 지금까지도 메일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Sunil 아저씨, 친구가 되어줘서 고마워요. 잊지 못할 거예요!

 

김물길

스물넷에 떠난 컬러풀한 세계일주 '아트로드' 저자

이름처럼 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22개월간 그림을 그리며 세계 이곳저곳을 여행하고 돌아왔다.
계속 이번 여행에서처럼 드라마, 코미디 그리고 로드무비의 주인공으로 살고 싶다.

4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