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Column  /  김물길

365 ART ROAD - 그림을 그리며 세계를 여행하다 (프롤로그)

13.12.12 8


2011년 12월 12일 18시 45분.
추운 한국의 겨울을 뒤로 하고, 뜨거운 불교의 나라 미얀마에 도착했다.

원래 양곤(미얀마의 수도) 도착 예정 시각은 17:10였으나, 항공편이 지연되어 늦게 도착했다. CouchSurfing에서 알게 된 ‘수히얀’이라는 친구가 공항으로 마중 나오기로 했는데, 도착 시간이 너무 지연되어 기다리다 그냥 돌아갔을 것이라 생각했다. 양곤공항에 도착해서 허둥지둥 짐을 찾고 급한 대로 환전을 하려고 줄을 서있었다. 그 때 한 남자가 내 이름이 적힌 종이를 들고 나에게 다가왔다.

“Sooro. Sooro?”
“Yes. I am sooro.”

아마 나를 찾기는 참 쉬웠을 것이다. 당시 공항에 동양여자는 나 하나뿐이었으니까.
나를 확인한 그는 나에게 편지 한 장을 보여주었다. 수히얀이 쓴 편지였다. 그 남자는 수히얀의 친 오빠였고, 오늘 그녀가 회사에서 일이 늦게 끝나게 돼서 오빠를 대신 공항에 보냈던 것이었다. 수히얀의 오빠와 함께 버스를 타고 근처 카페로 들어가서 수히얀을 기다렸다. 그리고 곧 일을 마치고 온 수히얀을 만날 수 있었다.

-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의 수히얀은 아주 밝고 착한 동갑내기 친구였다.

그녀는 나를 데리고 양곤 시내로 가서 숙소를 찾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 후, 함께 늦은 저녁을 먹고 나니, 10시가 가까워졌다. 수히얀의 집은 시내에서 버스로 1시간이 좀 안 되는 거리였는데, 막차를 놓치는 바람에 그녀는 결국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야했다. 그녀가 떠나고 나는 터덜터덜 숙소로 돌아와 짐 정리를 했다.

24개월 전 그 날 밤이 아직도 뚜렷하고 생생하다.
나는 씻지도 않은 몸으로 침대에 걸터앉아 스케치북에 의미 없는 선들을 끄적였다. 이상하게 여행 첫 날인데도 불구하고 여행의 기대감과 즐거움보다는 ‘혼자’라는 생각에 불안하고,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1년이라는 여행기간이 너무나 길게만 느껴졌다.(실제 총 여행 기간은 22개월이지만, 처음의 계획은 일년이었다)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의 긴 여행이.

- 2012.12.12  여행시작 1년 후 그린 그림

 

내가 ‘세계일주’라는 꿈을 갖게 된 것은 대학교에 입학하고 해외로 워크캠프와 봉사활동을 하는 기회를 접하면서였다.

외국이라는 곳은 당시 정말 나에게 신세계였고, 각자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그들의 다양한 가치관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다른 나라라는 ‘낯설음’이 주는 예민함은 그림을 그리는 나에게 그동안 발견하지 못했던 많은 것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런 매력에 빠져 처음에는 일주일 일본여행, 한 달 유럽여행, 이런 식으로 단기여행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던 중 문득 그림을 그리며 세계를 여행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상상만으로도 황홀한 일이었다.

그 꿈같은 일은 어느새 간절한 목표가 되었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준비하기 시작했다. 마음은 항상 떠날 수 있었고, 몸은 아픈 데 없이 건강했으며, 대학교는 언제든지 휴학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여행자금, ‘돈’이었다. 1년이 넘는 여행에서 계속 지출만이 있을 텐데, 그 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부모님의 도움은 받고 싶지 않았다. (다 큰 성인이니까)

우선 대학교 2학년까지는 졸업한 고등학교에서 입시생 실기보조강사 알바를 했다. 다른 알바보다 시급은 셌으나 일주일에 두어 번하는 것이 다였기 때문에 모으기가 쉽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모아둔 작은 돈으로 펀드도 해 봤지만 큰 성과는 없었다. 본격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 알바가 아닌 직장에 들어가기로 했다. 대학교 3학년을 마치자마자 휴학계를 내고 일자리 사이트를 탈탈 털어 겨우 붙은 의류회사. 작은 회사였지만, 첫 경험이니만큼 열심히 일했다. 그렇게 10개월이 흘렀지만 여행자금을 채우기엔 턱 없이 부족했다.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일 년 동안 시급이 세다는 알바들을 찾아다니며 열심히 돈을 모았다. 악착같이.

그리고 넉넉하진 않았지만 여행을 떠날 만큼의 돈을 모을 수 있었다. 휴학 2년째가 되어서였다.

휴학 전 1년, 휴학 후 2년 동안 돈을 모으면서 세계일주라는 것에 대한 열망의 불이 조금은 식을까 걱정했지만, 참으로 그 불은 꺼지지 않았다. 처음에 쉽게 허락해 주시지 않았던 부모님도 스스로 준비해가는 과정을 보시고 여행을 허락해 주셨다. 그리고 응원해 주셨다. 그렇게 나를 믿고 위험할지도 모를 딸의 도전을 허락해 주시고 응원해 주셨던 부모님이 나보다 더 용감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마음도, 정신도, 건강도 그리고 어느 정도의 자금도 준비되었다. 물론 충분한 돈은 아니었지만 여유롭게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좋은 데서 자고 편하게 다닐 여행은 생각조차 안 했기 때문에 자신은 있었다. 사실 나는 꼼꼼하지도 않으며 똑똑하지도 않다. 어릴 때부터 집에서 별명은 항상 ‘덜랭이’였고, 항상 뭔가를 빼먹고, 놓치고, 틀리고. 그래왔던 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모할지도 모르는 이 도전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두려움의 크기보다 더 큰, 그림과 여행에 대한 열정 때문이었다.

<365 Art Road>는 ‘매일 보고 느낀 것을 그린다.’는 Daily art의 의미로 만든 나만의 프로젝트이다. 낮선 나라에서 느끼는 생소함과 새로운 감명을 통해 마음껏 그림을 그리며 여행하고 싶었다. 누가 시켜서도 아닌 자랑하려고도 아닌, 그저 내 꿈 중에 하나였던 것을 이루기 위해서.


673일 (2011.12.12. ~ 2013.10.14.), 46개국, 400여장의 그림 작업.
이제 그 22개월 간의 컬러풀한 여행 이야기를 펼쳐보려고 한다.




김물길

스물넷에 떠난 컬러풀한 세계일주 '아트로드' 저자

이름처럼 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22개월간 그림을 그리며 세계 이곳저곳을 여행하고 돌아왔다.
계속 이번 여행에서처럼 드라마, 코미디 그리고 로드무비의 주인공으로 살고 싶다.

8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