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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ARTROAD] 그리며 세계일주 : 남미 히치하이킹 파트너를 찾다

14.10.20 0

 

‘두 여자의 위험한 도전! 남미히치하이킹의 시작’
 Argentina

 

 

남미에서 히치하이킹을 하는 대망의 첫 날이다.
내가 남미에서도 히치하이킹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겁이 없다’는 표현보다는 ‘겁을 상실했다’는 게 맞을 것 같다.
겁을 상실한 두 여자는 도대체 무엇을 믿고 도로 위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걸까.
지금 내가 믿는 것은 하치하이킹 파트너인 보경언니와 주머니에는 있는 페퍼스프레이와 잭나이프가 전부였다.

 

우리의 계획은 바릴로체를 시작으로 약 2,200km 더 남쪽에 위치한 세계 최남단의 항구도시인 우수아이아까지 내려가는 것이다. 우선 칠로에 섬에서 버스를 타고 바릴로체로 다시 넘어 왔다.

오전 10시 반, 바릴로체 버스 터미널에서 조금 걸어 나와 큰 도로에서 무작정 손을 흔들었다. 띄엄띄엄 지나가는 차들은 우리를 보고 속도조차 줄일 생각도 하지 않고 쌩쌩 지나갔다.

 

‘어떤 차가 우리의 히치하이킹 스타트 테이프를 끊을 것인가,’

‘과연 차가 멈추기는 할까.’

 

그런데 멈추더라.

 

우리의 스타트 테이프를 끊어 준 차는 낡은 트럭이었다.
트럭 한대가 우리를 보고 우리를 살짝 지나쳐 차를 세웠다. 멈춰 선 트럭으로 열심히 뛰어가 어디로 가는 지 물었다.

 

“돈데 바스? (어디로 가요?)”

 

 같은 방향은 아니었지만 갈림길에서 내리기로 하고 우선 트럭에 탔다. 나는 스페인어를 못한다. 그러나 보경언니는 기본적인 스페인어를 할 줄 알았다. 그래서 운전기사와의 대화는 보경언니의 담당이었다.

남미에서 히치하이킹을 처음 시도해서 탄 첫 트럭과는 고작 8km정도밖에 이동하지 못했다. 생각보다 금방 갈림길이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8km라는 거리가 아니다. 낡은 트럭은 희망을 상징했고, 히치하이킹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후, 4번의 트럭과 3번의 승용차를 거쳐 바릴로체에서 약 700km거리의 남쪽에 있는 도시인 사르미엔토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르미엔토 도시에 도착한 시각은 저녁 11시였다. 12시간 반 동안의 히치하이킹을 통해 여기까지 왔다. 첫 날부터 기대이상 선전했다. 그리고 우리의 이번 목표 우수아아이까지는 아직 한 참이 남았다. 도착하기까지 이틀이 걸릴지 삼일이 걸릴지, 아니면 일주일이 걸릴지 모르지만, 그래도 한번 가보자 이거다.

 

 

 

 

사르미엔토는 작은 동네였다. 숙소도 간신히 찾은 한 곳에서 열심히 깎고 깎아 저렴하게 흥정했다. 조금이라도 일찍 히치하이킹을 시도해야 조금이라도 더 이동할 수 있으니,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었다. 해가 지면 길 위에서 차를 잡는 일이 더 위험하고 힘들기 때문에 해가 지기 전에 최대한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오늘의 목표는 사르미엔토에서 915km거리의 남쪽에 위치한 ‘리오 가제고스’도시다.

 

배낭을 메고 큰 도로로 나와 차가 가장 많이 몰리는 곳으로 걸었다. 무작정 아무 길가에서 기다리는 것은 무모한 짓이다. 도로가 모이는 곳을 찾는 것이 중요했다. 속도 방지 턱을 찾아 그 앞에서 시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차가 어쩔 수없이 속도를 줄여야 하기 때문에 우리를 더 잘 볼 수밖에 없어서다.

 

 너무 일찍 나왔는지 지나가는 차가 너무 없다.

 

 간간히 지나가는 차를 한 대라도 잡기 위해 오른 손을 쭉 펴고 크게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리고 주문을 외운다. ‘차야 멈춰라. 멈춰라. 멈춰라. 멈춰라..’

차가 섰다. 오늘의 시작은 승용차다. 승용차는 장거리로 움직이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트럭보다 훨씬 속도를 낼 수 있어서 빨리 이동할 수 있다.

 
두 번째로 갈아탄 트럭을 거쳐 세 번째 차에 탑승했을 때 우리를 태워 주신 아저씨께서는 주유소에 들려 남부지역 지도를 사주셨다. 덕분에 히치하이킹은 좀 더 수월해졌다. 차를 잡으면 지도를 펴서 손가락으로 방향을 그리고 도시를 찍으면 됐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계획도 좀 더 디테일하게 짤 수 있었다. 큰 도시 뿐만 아니라 작은 도시들의 위치도 알 수 있어서다.

 

히치하이킹의 든든한 장비인 지도도 확보하고, 조금은 더 자신감을 얻어 길 위에 섰다.

 

 다섯 번째로 탄 트럭은 지금까지 타봤던 트럭 중에 가장 깔끔하고 내부시설이 좋았다. 역시 집 상태를 보면 집주인을 알 수 있다고, 잘 정돈된 깨끗한 트럭의 내부를 보니 운전기사 미구엘 아저씨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역시나 굉장히 예의바르고, 깔끔한 분이셨다. 보통 남미에서 볼 수 있는 장거리 트럭들은 한 번 이동시에 수천 킬로미터를 달려야하기 때문에 트럭에서 숙식을 다 해결할 수 있도록 갖춰져 있다.

기본적으로 운전석 뒤에 침대가 있고, 트럭 옆에는 음식을 해먹을 수 있는 간단한 조리도구와 가스를 이용할 수 있다. 그리고 조금 더 좋은 트럭일 경우, 침대가 이층으로 되어 있기도 하다. 미구엘 아저씨의 트럭은 바로 그런 트럭이었다.

 

정 많은 미구엘 아저씨는 저녁도 주유소 식당에서 사주셨다. 그리고 정오가 가까워져서야 오늘의 목적지였던 리오 가제고스에 도착했다. 우리는 숙소를 찾아 내일 다시 우수아이아를 향한 히치하이킹을 시작할 계획이었는데, 미구엘 아저씨는 시내로 들어가지 않고 고속도로에 있는 트럭 주차장에서 밤을 보내고 다시 출발해야 했다.

 

이 컴컴해진 밤에 고속도로 한가운데서 시내로 들어가는 차량은 없었다. 택시도 기대할 수 없었다. 약간 당황한 우리를 보시고 미구엘 아저씨는 뒤에 있는 침대를 가리키시며 여기서 자는 건 어떠냐고 물으신다.

“너의 둘은 몸집이 작으니까 둘이 이층 침대에서 같이 잘 수 있을 것 같은데?”

 

보경언니와 나는 잠시 고민을 했다. 여기서 자는 것이 과연 안전할 것인가. 물론 미구엘 아저씨는 지금가지 이동하는 몇 시간동안 정말 좋은 모습만 보여주셨다. 사람을 오래 겪어봐야 안다고는 하지만 가끔은 짧은 시간이라도 그 사람을 파악하기에 충분 할 때가 있다. 보경언니도 그랬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아저씨를 믿고 트럭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언니와 트럭에서 내려서 양치질을 했다. 그 사이에 아저씨는 트럭 안에서 우리가 잘 수 있게 우리의 짐을 앞 조수석으로 옮기고 위에 접혀있던 이층침대를 펴서 정리하고 있었다. 나는 가지고 있던 생수통을 양치와 간단한 세수를 하는데 탈탈 다 썼다. 정리를 마친 아저씨가 나오셔서 트럭 옆에서 수도꼭지를 돌린다. 물이 나온다. 이런, 저 물을 쓸 걸.

 

깔끔쟁이 미구엘 아저씨가 잘 정리해 놓으신 이층 침대 위에 내가 먼저 올라갔고 그 옆에 언니가 누웠다. 그리고 아저씨는 아래층 침대에서 주무셨다. 밤새 시동을 켜 놓을 수 없으니, 쌀쌀할 것 이라며 옷을 든든히 입고 자라고 하신다. 덕분에 가방에서 미리 겉옷을 꺼내 만만의 준비를 하고 잤다. 미구엘은 우리를 태워주고 재워준 걸로도 충분한데, 다음 날 근사한 아침까지 손수 차려 줬다. 처음 본 우리에게 대가없이 베푸는 친절에 고마울 따름이다. 나는 감사한 마음을 담아 젠틀맨 미구엘에게 작은 초상화를 선물했다.

 

- 미구엘아저씨 초상화

 


이렇게 남미 사람들의 친절과 배려로 2박 3일, 총 14대의 차를 타고 2,200km를 거쳐 바릴로체에서 남쪽 땅 끝 도시 우수아이아까지 왔다. 배낭여행 경력 15개월의 김물길, 이제 남미 히치하이킹까지 정복했다.

 

 

 

 

 

 

‘남미 대륙 끝에는 우수아이아가 있다.’

Ushuaia, Argentina

 

 

- No.266 Ushuaia, Argentina

 

 

 

남아메리카 대륙 남쪽 끝에는 큰 섬이 있다. 그리고 그 섬에는 세상의 끝이라고 불리는 '우수아이아'가 있다.
세계 최남단의 항구도시이며, 비글해협과도 닿아있다.
대륙 끝자락에 와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새롭다. 단순하긴.
이래서 뭐든 의미가 중요한가보다.
사실, 의미 이상의 기대보다 마음을 비우고 온 탓일지도 모른다.

 

숙소에서 나와 항구로 내려갔다. 항구도시답게 수많은 배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배들이 푸른 바다 위에 떠있다.
배들이 맑은 하늘 끝에 매달려 있다.’

 

 

 

 

‘우수아이아 국립공원 갔다 오기’

Ushuaia, Argentina

 

우수아이아에는 티에라 델 푸에고 국립공원이 있다.
보경언니와 함께 시간도 있으니 국립공원을 가보기로 했다.
입장료가 비싸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시내에서 국립공원으로 가는 교통비라도 아껴보고자 우리는 또 히치하이킹을 계획했다.

 

시내에서 나가는 방향의 도로를 따라 쭉 걸어가서 지나가는 차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한 두 대의 차들이 멈춰 섰지만 안타깝게도 국립공원 방향으로 가는 차들이 아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주유소가 보였다. 주유소만큼 좋은 히치하이킹 포인트는 없다. 주유소에서 주유하는 차 운전자들 한 명 한 명에게 가서 어디로 가는지를 꼼꼼히 물어보았다. 정말 내 얼굴에 깔린 철판은 얼마나 두꺼운 것일까.

 

그러다가 한 아저씨가 국립공원 근처까지 간다고 하셨고, 흔쾌히 우리를 태워주셨다.

 

아저씨의 차를 타고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국립공원으로 들어가는 길가 앞에 우리를 내려주셨다. 그곳과 국립공원까지는 약 5km의 거리였기 때문에 우리는 천천히 산책하듯 1시간을 걸어 공원 입구에 도착했다.

 

그런데 문제는 국립공원이 워낙 크기 때문에, 안을 돌아다니는데 그냥 걷는 것은 무리였다. 단순하게 돌아본다고 해도 적어도 20km는 내리 걸어야 했다. 아무래도 그건 조금 무리가 있겠다 싶어 마침 입구로 들어오는 작은 투어버스를 잡아 1달러를 내고 국립공원 센터로 이동했다.

 

박물관을 구경하고 식당에 앉아 숙소에서 싸온 샌드위치를 먹었다. 그런데 갑자기 하루 종일 우중충해서 불안했던 하늘에서 비가 내린다. 가뜩이나 쌀쌀한 날씨 때문에 추웠는데 하필 우산도 없을 때 비가 온다.

어쩔 수 없이 비가 그칠 때까지 건물 안에서 기다렸다. 그리고 한 참 후, 비가 어느 정도 그쳤을 때 우리는 밖으로 나가 공원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언제 또 비가 쏟아질지 모르기에 발걸음이 급했다.

티에라 델 푸에고 국립공원은 날씨가 맑았다면 더 아름다웠을 텐데, 비 탓에 빛을 발하지 못했다. 하지만 자연은 언제나 옳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공원을 감상했다. 그런데, 기대도 안했던 많은 동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다닌다. 이름은 모르지만 신기하다. 그리고 아름답다. 어쩜 깃털이 그리 아름다운지. 진정한 '자연미'였다.

 

 

 

조금 지나자 털 복숭이 두 마리가 눈앞에서 지나갔다. 야생 여우 한 쌍이 저 멀리서 자꾸 나를 경계하듯, 뒤 돌아보더니 좀 가고, 또 뒤돌아보고 좀 걷는다. 분명 가까이 쫓아가면 싫어 할 것을 알면서도 이기적인 나는 그들을 쫓아갔다. 도망치는 모습을 봤으면 그만했어야 했는데 못돼먹은 나는 계속 따라갔다. 결국엔 그들과 내가 마주하는 순간이 왔고 나는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그들을 관찰했다. 그때의 나는 참 이기적인 인간이었음을 인정한다. 나중에 숙소에 돌아갔을 때, 사진과 눈으로 새겨둔 얼굴을 그림으로 남겼다.

 

 

- No.267 Animals on fingers, Ushuaia, Argentina

 



보경언니와 나는 추운 날씨와 챙기지 않은 우산을 탓하면서도 국립공원의 종점까지 갔다. 어느새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됐고, 버스 정류장에는 사람들이 마지막 셔틀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올 때 히치하이킹으로 왔으니 갈 때도 히치하이킹으로 가야 되지 않겠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며 히치하이킹의 여지를 남겼다.

 
잠시 후, 한 승용차가 주차장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차에서 한 커플이 내린다. 우리는 지금 저 차 만이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고, 커플을 주시했다. 그런데 그 커플이 우리에게 사진을 좀 찍어달라고 부탁을 한다.

 

‘그래, 바로 이거야!’

 

우리는 정말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는 그렇게 열심히 찍어주는 열정을 보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주차장으로 걸어가는 커플에게 말을 걸었다.

 

“지금 우수아이아 시내로 가시나요?”

 “네.”

 “저희도 시내로 가려하는데, 좀 태워다 주실 수 있으세요?”

 “물론이죠. 같이 가요.”

 

시내로 가는 차 안에서 우리는 금방 친해졌다. 브라질에 사는 그 커플은 자신의 도시에 오면 연락하라며 메일주소까지 알려주었다. 그리고 우리를 숙소 앞에까지 데려다 주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남미 히치하이킹은 우리 편인가보다.

 

 

 

김물길

스물넷에 떠난 컬러풀한 세계일주 '아트로드' 저자

이름처럼 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22개월간 그림을 그리며 세계 이곳저곳을 여행하고 돌아왔다.
계속 이번 여행에서처럼 드라마, 코미디 그리고 로드무비의 주인공으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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