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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ARTROAD] 그리며 세계일주 : 세계 순회공연을 마치고 돌아 온, 두 한국인의 음악회

14.11.04 0
 
 
‘펭귄으로 가득’

Canal De Beagle, Argentina

 

No.268 penguins, Canal De Beagle, Argentina

 

 

 

 

우수아이아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비글해협으로 바다사자와 펭귄을 보러 나섰다.
우리가 탄 보트가 한참을 달려 펭귄들이 사는 섬에 도착했다.
작고 뒤뚱거리는 펭귄들이 참 귀엽다.
오늘은 펭귄으로 가득 채운 날.

 

- 우수아이아에 펭귄벽화


- 우수아이아에서

 

 

 

 

 

 
‘얼음 숲’
El Calafate, Argentina

여행 477일차, 로스 글라시아레스 국립공원

No.269 Glaciar Perito Moreno, Argentina

 

 



로스 글라시아레스 국립공원에 가기 위해 우수아이아에서 4대의 차를 히치하이킹해서 1박 2일이 걸려 칼라파테에 도착했다. 남미 히치하이킹에 완전 적응한 보경 언니와 나는 담력이 커질수록 버스 요금이 아까웠다. 노하우가 생긴 우린 가까운 주유소를 찾아가 들어오는 모든 차에 목적지를 물었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을까.

 

“로스 글라시아레스 국립공원이요.”

 

드디어 반가운 대답을 들었다. 방향만 같아도 감사한데, 목적지까지 같다. 동정심을 유발하기도 전에 운전사 아저씨는 우리의 의도를 눈치 채고 차문을 열어줬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자연유산인 로스 글라시아레스 국립공원에는 5km에 이르는 불투명하면서도 투명한 얼음 숲이 있다. 수 만 년 전부터 내린 눈들이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진 페리토 모레노 빙하다. 빙하는 평균 2미터씩 무너져 물이 되고, 물은 다시 눈이 되어 내렸다 빙하가 된다. 이 과정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때문에 빙하에서 얼음 덩어리가 떨어질 때면 굉음과 함께 일어나는 파장이 얼마나 큰지 물 전체가 한참을 진동한다. 무엇보다 빙하의 모양새도 독특하지만 푸르게 시린 색감 또한 참 아름답다.

 

숨 막히는 자연의 조각 작품을 앞에 두고 그에 걸 맞는 표현을 찾지 못해 입을 다물었다. 얼음보석이라 해도 손색없을 만큼 아름다운 조각. 보통 감히 넘볼 수 없는 자연풍경은 그림에 잘 담지 않는데 이번만큼은 꼭 그려보고 싶었다. 비록 그 대작의 백 분의 일, 천 분의 일도 담아내지 못했지만 말이다.

 

우리와 함께 빙하를 감상하고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이동한다던 아저씨는 일부러 칼라파테 시내에 들러 우릴 내려줬다. 얼음 숲에서 함께한 따뜻한 사람, 고맙습니다.

 

 

 

 

 

‘세계 순회공연을 마치고 돌아 온 두 한국인이 음악회’
Rio gallegos, Argentina

여행 485일차, 엑토르의 트럭

 

 

우수아이아에서 떠나 지체 없이 이동한 덕분에 목적지였던 칠레의 푸에르토 나탈레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행 중 탄자니아에서의 킬리만자로가 마지막 등반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토레스 델 파이네를 1박 2일간 트레킹 했다.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은 웅장하고 아름다운 자연경치와 풍부한 야생생물로 관광객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곳이다. 칠레에서도 현지 친구의 도움으로 좋은 가족들을 만나 공허한 마음을 가득 채울 수 있었다.

 

- 칠레의 가족들에게 그림선물

 

 

 

 

여전히 겁 없는 두 여자는 7대의 차를 거쳐 부에노스아이레스로 향하는 긴 길 위에 있었다.

 

8번째로 탄 차는 아빠와 아들이 탑승한 아주 낡은 고물 트럭이었다. 속도가 너무 느려서 117km를 쉬지 않고 달렸는데 꼬박 2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우리를 고속도로 갈림길에 있는 ‘YPF주유소’에서 내려주었다.

 

이미 점심시간이 지났을 때라 언니와 나는 주유소 내에 있는 편의점에서 간단히 샌드위치를 사먹었다. 그리고 차를 다시 잡기 위해 주유소로 들어오는 트럭과 승용차에게 일일이 목적지를 물었다. 한 시간이 넘도록 차를 잡지 못했다. 그러다 한 승용차가 주유소에 주차를 했다. 차 안에는 나이 지긋한 아저씨와 소녀가 있었다. 그들은 차에서 내려 주유소 편의점으로 들어왔다. 아저씨를 보니 낯선 사람은 절대 차에 태울 것 같지 않은 까칠한 인상이었다. 밑져야 본전이다, 김물길. 나는 아저씨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어디로 가세요?”

“리오 가제고스요.”

 
리오 가제고스는 우리가 가려고 했던 방향의 도시였다.

 

“리오 가제고스요? 저희도 거기로 가는데 태워주실 수 있으세요?

 

아저씨의 험한 인상에 약간 주춤하면서도 질문을 했다. 아저씨는 우리에게 잠시 기다려보라고 하더니 함께 온 소녀와 대화를 나눴다. 아저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소녀의 모습을 보니 징조가 좋다.

 

얘기를 마친 아저씨는 우리에게 함께 차로 가자고 했다. 아저씨의 이름은 ‘엑토르’. 알고 보니, 그들은 아빠와 딸이었다. 조수석에는 보경언니가 타고, 뒤 자석에는 딸과 내가 앉았다. 생각했던 첫 인상과는 다르게 엑토르 아저씨는 굉장히 유쾌하고 재미있으신 분이셨다. 리오 가제고스까지 꽤 먼 거리라 이동하는 동안 짧은 스페인어로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눴다. 남미여행을 시작한 지 약 두 달이 지났는데 ‘살기 위해’ 스페인어를 접한 결과, 기본적인 대화가 가능했다. 역시 그냥 공부하려는 것 말고, ‘생존’이 걸리면 뭐든 습득이 빨라진다.

 

아저씨는 중간에 휴게소에 들려 간식도 사주셨다. 다시 차는 달리기 시작했고, 엑토르 아저씨는 우리에게 한국노래를 듣고 싶다고 했다. 핸드폰도 잃어버려서 가지고 있는 노래도 없으니, 직접 불러드리기로 했다. 안 될 건 또 뭐있어? 이렇게 바로 옆에 토종 한국인이 두 명이 있는데...! 이윽고 보경언니와 내가 진짜 잘 맞는 파트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노래를 부르겠다고 하자 보경언니가 가방에서 뭔가를 꺼낸다. 그것은 ‘단소’였다.

 

“언니, 단소가지고 다녔어요?”

“응, 나 단소 잘 불어. 학창시절 때 좀 했지. 네가 노래 부르면 내가 단소를 불게.”

보경언니와 함께 여행한지가 지금 3주가 지나가는데, 언니가 단소를 가지고 다닌다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아르헨티나의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세계 순회공연을 마치고 돌아 온 두명의 한국인이 작은 음악회를 열었다.

 

음악회 첫 곡은 한국의 대표 전통음악 ‘아리랑’이었다.

가수는 차분하게 노래를 불렀고 연주자는 단소를 불었다. 리허설도 없이 시작한 음악회였지만 공연은 생각보다 그럴듯했다. 의자를 가득채운 두 명의 관객은 첫 번째 공연이 끝나자 열화와 같은 박수를 치며 호응했고, 음악가들은 두 번째 곡을 준비했다.

 

두 번째 곡은 애국가였다. 큰 실수 없이 노래를 마쳤다. 관객 중에 한 남자분이 노래를 더 요청했다. 관객이 그렇게 열성적으로 원한다면 충분히 더 노래를 더 할 의향이 있었다. 그래서 가수는 자신이 좋아하는 동요 몇 가지를 최선을 다해 불렀다. 노래는 공연장을 가득 채웠고 가수, 연주자 그리고 관객도 모두 만족스럽게 공연을 마칠 수 있었다.

 

엑토르 아저씨는 지금 자신이 너무 행복하다며 오히려 우리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관객이 만족한 공연이야 말로 최고의 공연이 아닌가. 보경언니와 나는 작지만 최고의 공연을 해냈다. 이동시간은 길었지만 정말 즐거웠다. 작은 차 안에서 수많은 이야기가 오갔고 서로에게 오래 남을 추억 또한 만들었다.

 

몇 시간 뒤, 우리는 리오 가제고스에 도착했다. 우리는 아저씨에게 고속도로 주유소에서 세워달라고 부탁을 했다. 엑토르 아저씨는 주유소에 주차를 하시고 트렁크에서 우리 짐을 빼는 것을 도와주셨다. 우리는 너무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감사를 전하며 아저씨를 꼬옥 안아드렸다.

 

그런데 아저씨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시더니 언니와 나의 손에 각각 쥐어주신다. 손을 펴 보니, 아저씨가 주신 것은 100페소 지폐 두 장이었다. 당시 환율로 100페소는 약 13달러의 돈이었다.

 

“엑토르, 왜 이걸 주세요. 저희는 괜찮아요.”

 

우리가 아저씨에게 돈을 드려도 모자랄 판에 우리를 태워 준 아저씨가 오히려 우리에게 돈을 주다니.

 

“멋진 한국노래에 대한 대가로는 이것도 부족한 돈이에요. 덕분에 좋은 시간이었어요. 고마워요.”

 

아저씨의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세상에는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들도 너무 많다. 사람을 통해 얻는 배움과 감동은 수백 번이 반복돼도 항상 새롭고 뜨겁다. 그리고 항상 처음처럼 가슴 떨린다. 세계의 유명한 유적지와 박물관을 찾아 수 십, 수백 번을 찾아다니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오늘 하루 단 몇 시간을 함께 했던 엑토르 아저씨 부녀와의 추억은 진한 감동이 되어 여행동안 머물 것이다.

 

아르헨티나 고속도로에서 세계 순회공연을 마친 두 한국인 음악가들은 또 다시 차를 잡으려 한다. 또 어떤 새로운 인연을 만날지, 그리고 또 어떤 추억을 만들지 모를 일이다.

 No.270 Three Birds, Torres del Paine, Chile

 

 

 

김물길

스물넷에 떠난 컬러풀한 세계일주 '아트로드' 저자

이름처럼 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22개월간 그림을 그리며 세계 이곳저곳을 여행하고 돌아왔다.
계속 이번 여행에서처럼 드라마, 코미디 그리고 로드무비의 주인공으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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