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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별, <실연의 박물관>

17.02.03 0

<실연의 박물관> 실연에 관한 82개의 이야기와 헤어짐을 기증하다, 출처: 네이버 책 

 

실연(失戀). 연애에 실패함.


국어사전을 찾아볼 필요도 없이, 내가 아는 ‘실연’의 의미나 네가 아는 ‘실연’의 의미가 같을 거라 생각했다. 유치한 제목만큼이나 단순히 유치한 이별 이야기의 모음집이겠거니, 라는 생각에 책을 내려놓을 찰나 ‘근데 여기서 말하는 실연의 의미가 뭔데?’ 싶었다. 그렇게 다시 책을 들추고, 책에서 말하는 실연의 의미를 찾고 보니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형태의 헤어짐’이란다. 이번에는 다시 국어사전을 띄어 ‘연애’의 의미를 검색해본다. (국어사전에서 말하는 실연과 이 책에서 말하는 실연의 차이를 비교해보고 싶었다.) ‘남녀가 서로 그리워하고 사랑함’이라니.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뜻이다.


그래서 ‘실연’을 남녀관계에만 한정 짓지 않은 이 책이 마음에 들었다.

 

제주도 아라리오 뮤지엄, 출처: <실연에 관한 박물관> 스토리 펀딩 

 

<실연의 박물관>은 2016년 제주도 ‘아라리오 뮤지엄’에서 <실연에 관한 박물관(Museum of broken relationships)>라는 이름으로 개최된 전시품과 그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전시품은 특이하게도 어느 작가의 작품이 아닌, 82명의 실연이야기와 기증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모든, 친구든, 자식이든, 사랑하는 연인이든, 내가 아닌 타인과 관계를 맺어본 사람이라면 실연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리고 그들과 나눈 대화, 주고받은 물건, 혹은 추억의 상징들이 처치곤란의 잔여물로 남아 헐거워진 마음을 이따금 톡- 톡- 하고 건드린다. 그래서 누구나 고민해봤을 것이다. 이 처치곤란 한 물건을 과연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 (버리기엔 아깝고 그렇다고 내가 가지고 있기도 곤란하지 않은가!)

 

<실연의 박물과>의 기획자, 드라젠 그루비시치와 올링카 비스티카, 출처: 한국일보

 

한 때 사랑하는 연인이었던 드라젠 그루비시치와 올링카 비스티카는 이별을 앞두고 우리와 같은 고민을 했다. 사실 이별이 행복한 일도 아닐 텐데, 둘은 이 ‘처치 곤란한 물건’을 두고 함께 고민하다가 세계 방방곡곡에서 ‘실연의 기증품’을 전해 받아 전시에 올리기까지 이른다. 이 무슨 쿨하디 쿨한 구남친&구여친의 조합인가 싶으면서도, 82명의 실연에 관한 이야기를 좇다 보면 세상살이 다 똑같구나 싶어 위로가 된다.

 

이미지 출처: 브런치 <Framing the world>


"당신의 손길이 없으니 시동도 걸리지 않고, 문도 잘 열리지 않지만, 눈과 비를 맞으면서 가족을 지키던 당신 같은 차! (...) 당신 이대로 밖에 더 오래 서 있으면 더 상하겠어요. 자기 여기서 힘들게 서 있지 마요. 당신이 여기서 지켜보고 있었던 시간보다 더 길게 이제 우리가 당신을 찾아갈게요.” (아내의 편지)


"아빠! 나 아빠를 다시 만난다면 그동안 너무 보고 싶어서 그냥 아빠 안고 울고만 있을 거 같아요. 그리고 우리 아빠 차를 기꺼이 전시해주신 박물관에 감사합니다."(아들의 편지)

출처: <실연의 박물관>中, 5° 아빠 차를 부탁해, p36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형태의 헤어짐, 그러니까 <실연의 박물관>속 ‘실연’은 사실 ‘이별(離別)’에 더 가깝다. 그럼에도 굳이 ‘실연(失戀)’을 키워드로 택한 건 연(戀)이라는 단어가 갖는 본연의 뜻, 이를테면 그리움과 사랑, 아쉬움 같은 의미에 충실했으리라. 왜냐하면 그리움과 사랑, 아쉬움을 잃는 일인 ‘실연’은 단지 화학 호르몬에 의해 발생하는 사랑에만 국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실연에 관한 박물관> 전경, 출처: http://magazine.urbanpoly.com


그리고 나의 최초의 실연에 대해 생각해본다. 누군가와의 이별로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팠던 건, 이모와의 이별이었다. 지방에 거주하는 이모는 투박한 성격의 아들 둘을 뒀지만, 여자아이인 내가 아주 흡족할 만한 선물을 자주 안겨주곤 했다. 그도 그럴 게 언젠가 무릎 위로 오는 기장의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블랙원피스를 선물해주셨는데, 선물을 집어 들고 했던 첫 말이 ‘이모는 딸도 없는데 어떻게 이런 선물을 줘?’였으니까. 그 때 나이가 고작 5~6살, 키우던 강아지도 없고 엄마아빠, 오빠와 떨어져 본 적도 없어 아직 이별을 몰랐던 때다.

 

그러던 어느 날, 이모의 지인이 서울에서 식을 올려 집에 묵었던 적이 있다. 한 이틀 머물렀나,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정말 흐르는 시간 1분 1초가 아까웠다. 이모와 맛있는 것을 먹고, 용산상가에 가서 쇼핑을 하고, 백화점을 돌아다니는 데도 즐거움은 그때 뿐, 이모가 가는 날인 일요일까지 한 밤 한 밤을 손가락으로 꼽고 나면 알 수 없는 외로움이 밀려왔다. 이모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을 상상하면 가슴 한 켠이 먹먹해지면서 눈물이 났다. 그런 와중에 신기하게도 이별에 대처하는 타고난 본능인지 뭔지, 마냥 우울하게 그 순간을 보내는 게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모와 같이 있을 때만큼은 최대한 즐겁게 보내려고 했다. 

그리고 결혼식 날은 잊을 수 없다. 사실 누구의 결혼식이었는지도 모르겠고, 식이 끝나고 이모의 가족들이 집으로 돌아간 게 그 날 일의 전부다. 그런데 나는 집에 돌아와 한참을 울었다. 왜 우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마음이 저릿저릿하고 아쉽다고 생각했다. 그게 ‘최초의 실연’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실연을 간접경험 하고 나서 ‘나의 최초의 실연’이 언제인지를 떠올렸을 때, 이날의 기억이 떠오른 걸 보면 아마도 그런 모양이다.


The Museum of Broken Relationships, 출처: http://learnedthis.com

 

그리고 <실연의 박물관>에는 최초의 실연 외에도 다양한 이별이 존재한다. 그 중에는 어린 날의 치기 어린, 찌질하지만 애틋한 청춘의 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실연도 있고(44° 관계의 후드 티), 삶의 일부였던 반려동물과의 이별도(8° 우리 집 강아지 호두), 전혀 예상치 못할 만큼 유쾌한 실연도(18° 요일 팬티) 있다. 실연이란 이별 후에 시작되는 혼자만의 이야기이자 홀로 감내해야 하는 아픔이라 생각했는데, 실연의 스펙트럼에 놀라고 말았다. 무엇보다 82명의 기증자들이 ‘처치 곤란한 물건’을 처치하면서 자신의 아픔을 치유하고, 언젠가 세상에 분명히 존재했던 그들의 관계를 공고히 하는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새삼 흥미롭다. 이별은 아주 사적이며 개인적인 일인데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다니. 그만큼 실연은 세상을 사는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보편적인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김해인

읽는 사람이 즐거운,
언제나 유쾌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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