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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과 시작,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의 습작

15.06.15 0


-< 투구를 쓴 노인의 두상 습작 (Etude d'une tête de vieillard coiffée d'un casque)> 소묘, 10.6 x 9.9 cm, 15세기 경, 루브르 박물관

 

 


한 학기의 끝이 보인다. 그 동안 공부한다고 글쓰기에 소홀했던 나의 모습에 앞으로 어떻게 글쓰기를 공부해야 할지 눈 앞이 깜깜해진다. 사실 공부를 하면서 새롭게 느끼는 것들이 많이 없어 글을 쓰지 못했다. 감정이 말라버리고 딱딱해지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학기가 끝나니 글을 쓰는 것에 자신감이 없어진다. 원래 시작을 했을 때가 더 어렵다고 했던가. 어제도 부랴부랴 늦은 과제를 제출하며 마지막 수업을 들었다. 3월부터 시작된 새로운 학기 동안 몸은 너무나 힘들었다. 해야만 하는 일정이 있는 하루하루가 전투적이기도 했고 즐겁기도 했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나고 보니, 오롯이 내가 공부 해야 할 몫들만 남아 마음의 짐이 무겁다,

 

강사 김미경은 열정을 습관화하라고 했다. 매 순간에 열정을 느끼고, 그 열정을 하루하루 실천하면 성공한다고 말이다. 김미경 강사의 말은 맞았다. 누구나 초심을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 많고, 몸마저도 그것을 기억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렇지만 초심을 잃은 채 어떻게 끝을 볼 수 있을까? 초심을 잃는 것은 자기 합리화를 통해 하나의 경험이 될 뿐이다. ‘그땐 그랬지’라는 의미 없는 추억팔이가 되는 것이다. 과거의 내가 그토록 갈망했던 것들인데, 이루고 나서는 때아닌 늦잠과 감기 몸살을 핑계로 초심을 잃는 것 같아서 두려웠다. 그러나 게을러진 마음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고 다시 고삐를 쥐어야 비로소 공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 <다리 습작(Etudes de jambes), 소묘, 20.3 x 13.2 cm, 16세기, 루브르 박물관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같지 못한다.” 는 자주 인용되는 공자의 말이지만, 즐기는 데에도 ‘여러 단계’가 필요하다. 우선 관심과 호기심이 있어야 하고,
다음에는 진지하고 성실해야 하며,
그 다음에는 훈련과 연습을 통해 그 일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런 후에야 그 일을 좋아하고 즐길 수 있다.

그러니까 즐김은 관심과 호기심으로부터 시작하여 진지함과 성실성을 지나 익숙해질 정도의 연습을 거쳐
결국 좋아함의 단계에 이를 때, 비로소 도달될 수 있는 향유의 경지인 것이다. 삶에서 ‘깊은 즐김’은 어디에 있을까?


- 네이버 열린연단, 문광훈 교수님 에세이

 

 

김미경 강사와 문광훈 교수는 같은 메시지를 전한다. 초지일관한 자세로 성실하게 훈련하고 연습하면 그 일을 정말 좋아할 수 있다고 말이다. 그 과정을 겪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고난이 있을 건지는 직접 겪어보지 않고도 알 수 있다. 아마 한 길을 가도록 쉽게 놔두는 사람이 없을 수도 있고, 자기 자신이 그것을 해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정도면 잘했어.’ 라는 말을 듣고 물러서기엔 어렵게 시도한 도전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이 말은 남이 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만 아주 어렵게 할 수 있는 말이다. 때문에 그 날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 한다.

 


-<우측 방향으로 4분의 3상의 곱슬머리 청년의 두상 (Tête de jeune homme aux cheveux bouclés, de trois quarts vers la droite)> 소묘, 15 x 12.5 cm, 15세기 경, 루브르 박물관>




사람은 정말 신기한 존재다. 손에는 온 세상을 모두 알 수 있는 휴대폰이 있고, 글은 맞춤법까지 알아서 찾아주는 컴퓨터로 쓰고, 모든 방송을 볼 수 있는 텔레비전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적당량을 운동해야 몸이 건강하고, 배우고 익혀야 지식을 쌓으며, 말싸움을 하고 미묘한 감정변화를 느껴야 살아간다. 그 어느 것도 기계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최근에는 요리를 해주는 기계도 나왔다고 하던데, 그 요리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잠시 잠깐의 편함이 있을 뿐 그 요리에서 사랑을 느낄 수 있는가? 단지 배를 채워주는 먹이에 불과할 것이다. 공부 역시 마찬가지다. 공부를 누가 대신 해줄 수 있을까? 기계가 발전되어 사람들이 내 머리에 공부 칩을 넣어주지 않는 이상, 내 몸과 머리로 시작한 일을 끝맺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기계 습작(Etude de machine), 소묘, 6.5 x 7.3 cm, 15세기 경, 보나 미술관

 

 

 

예술가들이 좋은 이유는 항상 자신의 작품을 끝맺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천재 화가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습작을 보자. 그림을 그리기 위한 습작들인데도 최대한의 노력을 했다고 느껴진다. 원래도 그림을 잘 그렸지만 좋은 그림을 위해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는 꾸준함을 알 수 있었다. 습작이란 프랑스어로 하면 ‘Etude’인데 이는 ‘학습, 공부, 연구’라는 뜻이다. 매 순간의 공부와 성실함과 노력으로 다진 기술들을 가지고 예술가들은 아우라가 있는 작품을 완성한다. 오래된 작품이지만 지금과 다를 게 없다. 현재는 시간으로 붙여진 이름일 뿐, 고전의 향기는 아직까지도 우리와 함께 있다.


-<기계 습작(Etude de machine), 소묘, 6.5 x 7.3 cm, 15세기 경, 보나 미술관


- <땋은 머리의 여인의 측면 두상 (Tête de femme de profil, les cheveux nattés), 소묘, 10.2 x 7.8 cm, 15세기 경, 루브르 박물관

 

 


누구나 흥미는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수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과정이 ‘그냥 시도로 끝 난 사람’과 ‘세상을 바꾸는 사람’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시도만 했다고 실패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시도에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것이고, 그것은 오직 자신만이 알 수 있다. 때문에 나를 속이지 않기 위해 다시금 초지일관의 자세가 필요하다.

학기말이 되니 내가 무의식 중에 몸에게 퍼지라고 응원을 해버린 것 같다. 하지만 아직 제출해야 할 과제가 남아있고, 나는 그것을 마무리 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은 다시 시작이다. 아니, 아마 끝나지 않을 것이다. 평생 열정의 습관을 쌓으며, 나는 이 마무리 없는 과정을 성실하게 받아들여 보려 한다.

 

 

- 모든 사진 출처 : 네이버 다빈치 습작

 

 

 

십사

안녕하세요, 십사입니다.
미술, 만화영화, 춤, 피천득님, 법정스님을 좋아합니다.
살아있음을 기쁘게 여기며, 지혜롭고 성실하게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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