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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은 돌고 돈다, 그러니 잘 간수해!

17.01.17 0


10minutes, 이효리, 2003, 출처: K-pp Aminio

출처: 중앙일보 <시간을 되들리는 패션아이템>, 2012년에 쓰여진 해당 기사는 2000년 전후로 여가수들이 착용한 특대형 귀걸이가 언제 다시 유행할 것인지 추측하고 있다. 이효리는 2003년에 솔로 1집을 발매했다. 

 

출처: 2013년에 발매된 이효리 <미스코리아> MV 

 

아침에 눈을 뜨면 손에 잡히는 대로 옷을 입는 터라, 패션에 특별나게 고집이 있다거나 나만의 철학이 있지는 않다. 그런데 요즘 즐겨 입는 아이템에 대해 생각해보면, 유난히 ‘옛 스러운 것’들이 많다. “나~ 나나 난난나나나나 쏴”를 외치며 두 팔을 흔들어 재끼던 채연 언니와 ‘10분’이면 다 된다는 효리 언니의 공통점은 바로 링 귀걸이! 정작 링 귀걸이가 유행하던 시절에는 ‘버스 손잡이 같은 게 뭐가 이뻐?’ 싶었는데 요즘엔 그 버스 손잡이를 자주 걸고 다닌다.



크롭탑과 진, Tiffani Thiessen (1994)

Drew Barrymore

sarah michelle gellar, 모든 사진 출처: https://kr.pinterest.com

 

그 외에도 허리까지 올라오는 하이웨스트나 배꼽이 살짝 드러나는 크롭 탑은 편히 걸칠 수 있는데다 체형상의 단점을 보완해 즐겨 입는다. 지난여름부터는 어깨가 드러나는 오프 숄더를 즐겨 입기 시작했는데, 어깨를 자유롭게 움직이는 게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어깨선을 좀 더 예쁘게 만드는 것 같아 꺼리지 않는다. 가까운 지인만 해도 중·고딩시절 노스페이스 패딩이 등장하기 이전에 유행했던 더플코트를 다시 구매하고 즐겨 입으니, 지금까지 나열한 아이템만 해도 주변에서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이 모든 것들이 지금으로부터 족히 15년 전후로 유행했던 아이템이란 사실! 유행은 돌고 돈다는데 2000년을 전후로 유행했던 메이크업이나 헤어를 찾아보면 어딘가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크롭탑과 오프숄더 차림의 핑클, 출처: Sh K-star,fashionsharesommpi

 

일명 떡볶이 코트라 불렸던 더플코트, 출처: 응답하라 1997 

 

피부가 꺼무잡잡한 사람으로서 90년대의 유행이 반가운 건 바로 ‘컨투어링 메이크업’ 때문이다. 일명 ‘교포화장’이라고도 불리는 컨투어링 메이크업은 얼굴에 음영을 주어 입체감을 더하는 화장이다. 진한 갈매기 눈썹과 팥죽색의 립스틱, 그리고 어두운 피부표현을 특징으로 하는 90년대 메이크업은 당대 대부분의 여배우가 즐겨했던 화장법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카일리 제너(kyliejenner)를 비롯해 여러 뷰티 크리에이터들에 의해 다소 어두운 분위기를 풍기는 이 화장법이 ‘컨투어링’ 혹은 ‘교포화장’이라는 이름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90년대의 김혜수&이승연&김희선, 출처: 드라마 <웨딩드레스> OHFUN, GRAZIA

 

어릴 때부터 ‘까만 애’, '검정 콩‘, ’그 깜깜한 애‘ 등, 각종 어두운 것들의 대명사로 불렸던 탓에 일부러 껌껌하게 보이는 화장의 재등장은 반갑기 그지없다. 어릴 때는 ’까만‘의 ’ㄲ‘, 'black'의 ’b'도 싫어서 쌀뜨물로 세수도 해보고 우유로 치덕치덕 발라보기도 했는데, 언젠가 찾아본 지식IN 답변에 “까만 건 유전이라 평생 하얘질 수 없어요.”가 달린 걸 보고 현실 눈물을 훔친 적도 있었다. 성인이 된 후로는 (정말 이상하게도) 남들 바르는 만큼 바르고 남들이 긋는 만큼 그어도 “화장 진해”라는 소리를 진저리가 날만큼 들은지라, 되레 진한 갈매기 눈썹에 어두운 피부표현, 그리고 벽돌 립을 바르는 지금의 유행이 반가울 따름이다.

 

출처: kyliejenner instagram

 

지금에야 웜톤이니 쿨톤이니 자신에게 어울리는 색조와 패션아이템을 찾는 문화가 시작되었지만, 한 때는 투명하고 흰 피부에 립글로즈 하나만 발라도 예쁜 (게다가 마르기까지 한) 미인을 선호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니 연하면 연할수록 엉망진창이 되는 얼굴인, 여리 여리한 옷을 입을수록 더 튼실해 보이는 체형을 가진 내가 설 자리는 없었다. 하지만 과거에서 한 층 더 발전한 컨투어링 메이크업과 언뜻 보기에 ‘패피’처럼 보이는 믹스 앤 매치 패션의 재유행이 ‘개성’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설 자리를 내주어서 고맙다. 아니, 사실 나는 계속 나였는데 미(美)에 대한 기준과 스펙트럼이 과거보다 더 넓어진 것도 같다. 수 십 년을 걸쳐 지나온 세월동안 다양한 유행이 생기고, 그게 곧 다양한 미(美)와 개성의 스펙트럼이 되어 모두를 수용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과거의 유행이 더 긍정적인 의미를 갖는 건, 당시보다 더 발전된 형태로 현재의 트렌드를 반영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출처: 엘르 <K뷰티 아이콘, 24년의 변천사>, 그라치아 <그 때 그 언니 룩>

 

그러고 보니, 문득 ‘돌고 도는 패션’의 속성이 ‘연구’의 속성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의 유행이 선행연구가 되고, 현재를 사는 우리들이 연구자가 되어 과거의 선행연구를 반영해 더 발전적인 트렌드를 만드는 것 같아서다. 어찌됐든 패션은 돌고 돈다. 그러니 지금으로부터 20년 후, 오늘 입었던 옷을 또 입고 오늘했던 메이크업을 또 할 수 있으니 ‘지금의 것’들을 잘 간직해보자!

김해인

읽는 사람이 즐거운,
언제나 유쾌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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