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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설레임, <Waiting>

17.02.07 0

무언가 기다리는 ‘설렘’에 대해 생각하자면, 글쎄. 내겐 어떤 설렘이 있을까? 곰곰이 생각할 필요도 없이 ‘택배’가 먼저 떠오른다. 배달음식은 잘 시켜먹지 않는 편이라 모르겠고, 연인을 만나러 갈 때 조차 내가 기다리는 것보다 자신이 기다리는 게 낫다는 배려심 덕분에 ‘기다림의 즐거움’을 온전히 택배에 쏟고 있다. 아, 요즘 기다리는 일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졸업식이다. 며칠 전, 일기를 쓰다 무의식 중에 날짜를 ‘2015년 2월’로 적어놓고 마치 보지 말아야 할 장면을 본 사람처럼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인생시계가 2015년에 멈췄네, 멈췄어’를 혼자 중얼거리면서, 볼펜으로 두 선을 짝짝 긋고 2017을 되새겨 넣은 것이다.


그도 그럴게, 2017년 새해가 밝았을 때 “너 이제 몇 살이지?”란 지인오빠의 질문에 아무런 의심도 없이 “나 이제 서른이지!”를 당차게 외치고는 왜 마주 앉은 오빠와 내가 동갑이 된 건지 순간 의아해졌다. 그만큼 대학원을 마무리 짓는 지난 2년은 쉽지만은 않았다. 뭐, 애초부터 ‘내 인생에 2년은 없다’고 생각하고 들어갔던 자리기도 해서, 한 해 한 해가 어떻게 흘렀는지 모를 정도로 치열하게 살았다. 그렇게 주말 없이 하루에 3시간 내외를 자며, 어디서도 환영 받지 못하는 존재로 사는 게 고달플 때마다 ‘졸업식’이 환각제라도 된 것마냥 ‘그 날’ 만을 꿈꿨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읽었던 책에서 “행복은 현재에 있으니 기다리지 말고 ‘현재(The present)’를 살라!”라고 했는데 그러기엔 당시의 내 현실이 너무나도 시궁창이었다.

 

<Waiting> jana romanova, 2009-2014

생각해보면 ‘설렘’의 감정은 무언가(혹은 누군가) 내게 오리라는 확신이 있을 때 가능한 감정이다. 불확실함이 주는 설렘에 대해서는 우리는 흔히 ‘상상’이나 ‘망상’, 혹은 ‘공상’등의 단어를 사용하곤 한다. 내가 시킨 배달음식이, 주문했던 옷이나 반려동물의 용품이, 사랑하는 사람이 ‘곧 여기 이 곳에 자리할 것’이라는 기대는 설렘을 안겨주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어떤 것에도 비할 수 없겠지만, 지금 이 세상에는 나만큼이나 무언가를 ‘기다리는(waiting) 존재’들이 있다. 바로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Waiting> jana romanova, 2009-2014

 

러시아 사진작가 ‘자나 로마노바(Jana Romanova)’는 러시아의 상트 페테르부르크(Saint-Petersburg)와 모스크바(Moscow)에 거주하는 만삭 부부의 모습을 담았다. 한 가지 재미있는 건, 만삭사진을 찍긴 찍었는데 이들이 곤히 잠든 모습을 촬영했다는 점이다.

Young Russian couples, inhabitants of Saint-Petersburg and Moscow, are sleeping in their bedrooms early in the morning, the time when people don’t really care about their appearance, being natural. They are preparing to become parents in few months, and the project investigates not only their attitude to each other during the period of expecting a baby, but also the way young families live in big cities of modern Russia, 20 years after the fall of the Soviet Union, the country that will be known to their children only from history books.

<Waiting>은 상트 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에 거주하는 젊은 만삭 부부의 모습을 담았다. 사진은 이들의 침실에서 이른 아침에 촬영되었다. 아침 시간대에 촬영된 만큼, 이들은 외모에 신경 쓰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부부는 곧 부모가 될 준비를 하고 있었고, 프로젝트는 아이를 기다리는 동안 서로에 대한 그들의 태도를 담았다. 뿐만 아니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책 속에서나 접할 수 있는 ‘소련붕괴 20년’후에 나타난 새로운 형태의 가족의 모습을 담았다.

 

작가의 말처럼 이른 시간에 촬영해서 일까, 사진 속 부부들은 원시적인 모습 그대로다.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듯, 그들은 몸 속에 잉태한 새로운 생명의 모습처럼 반쯤 구부린 자세로 꿈을 꾼다. 어쩐지 사진 속 등장인물은 분명 2명인데, 아직은 보이지 않는 뱃속의 1명의 모습도 눈에 그려진다. 지극히 일상적인 모습에도 이들이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건, 두 사람의 사랑으로 발현될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을 잉태했을 뿐만 아니라, 그 생명이 태어나길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까. 새로운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이들의 아침이 더 눈 부시다.

 

<Waiting> jana romanova, 2009-2014

 

사랑을 시작한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한번쯤 꿈꿔봤을 순간이 있다. 그와 나의 반이 합쳐진 새로운 생명에 대하여, 그 생명이 몸 속에 자리하는 일이 꿈이 아닌 현실이 되었을 때의 그 감격을 말이다. 그리고 그 상상이 현실이 되어 ‘기다림’ 끝에 ‘그와 나의 반’을 안게 되면, 비로소 온몸으로 느끼고 말할 것이다. ‘이 아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인생은 영화가 아니기에 아마 보석 같은 아이 때문에 마음 아파 울게 될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기다림’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들이므로 ‘기다림이 주었던 설렘’을 반추하며 견딜 수 있을 것이다.

 

사진 출처: http://janaromanova.com/projects/waiting

 

아직 생명을 잉태해보지 않은지라, 사진 속 부부들의 설렘이 어떤지는 백프로 공감할 수는 없다. 그래서 지금 주저리 늘어 놓은 글들이 맞는 말인지 아닌지도 백프로 확신할 수 없지만, 감히 그런 상상을 해본다. 몇 년 전, 아이라면 몸서리를 치던 내가, 아동치료를 앞두고 모든 게 막막했던 내가, 막상 아이들과 함께하고서 아이를 사랑하게 됐다. 그래서 언젠가는 치료하는 아동에게 그런 말을 한적도 있다. ‘넌 내 자식도 아닌데, 왜 그렇게 예쁘니?’. 자기 내면에 들어가 도통 나올 생각이 없던 아이일지라도, 하자는 일에 무조건 ‘안 해!!!’를 외치던 아이일지라도, 아이와 눈을 맞추고 마음이 통하는 순간에는 그 어떤 말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니 오죽하랴, 내 자식이면 더 예쁠 수 밖에. 그래서 사진 속의 ‘기다리는 존재’들이 너무나도 예뻐 보인다. 사랑의 결실을 기다리는 그 ‘설렘’을 조금이나마 가늠할 수 있어서다. 그래서 진심으로, 진심으로, 저들의 축복을 축하해주고 싶다. 중간에 아내 대신 임신한 것 같은 아저씨에게도!

김해인

읽는 사람이 즐거운,
언제나 유쾌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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