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Column  /  십사

잡을 수 없는 유토피아를 향해서, 이불(Lee Bul)

17.03.06 0

<Civitas Solis III10>,  acrylic mirror, plywood, and galvanizing on nickel-plated aluminum frame, 162 x 112 x 14.5 cm, 2015



시급 남편(時給男便)’이라는 단어가 있다. 시간당 1만 5,000원에서 2만 5,000원을 받고 남편이 하는 다양한 역할을 대신하는 대행 서비스이다. 여기서 말하는 ‘남편의 역할’이란 결혼식에 함께 참석하고, 수도꼭지나 형광등 설치와 같은 집안일을 돕기도 한다. 

 

시급남편 서비스 항목, 출처: IT조선

 

시급 남편은 1900년대 후반 영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른바 ‘골드미스’를 대상으로 한 서비스를 그 시초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것을 갖추었으나 단지 ‘남편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깔보이는 것이 싫었던 골드미스들이 남편대행을 이용해 결혼식이나 동창회에 참석하곤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급남편’은 소위 ‘잘난 남편’ 역할을 대행해야 했기에 높은 학력과 준수한 외모를 갖춰야만 했다. 하지만 시급 남편의 진정한 의미는 혼자 사는 여성들이 혼자 하기에는 벅찬, 이를테면 형광등 설치나 수도꼭지를 교체하는 일, 혹은 전자제품 설치와 무거운 가구를 옮기는 일, 부동산 계약하기 같은 여자 혼자서 하기엔 ‘불편한 일’을 해소하는 데 그친다. 참고: 네이버 지식백과


이 서비스가 존재하고 운영될 수 있는 이유는 여성들이 결혼이라는 위험성이 높은 결정을 하지 않더라도 남편의 역할을 돈으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시급 남편이 있기에 남편의 필요성은 현저하게 줄어든다.

 

Untitled sculpture (M5), mirrored tiles, acrylic paint on polyurethane sheets, stainless steel armature, 62.2 x 110.24 x 15.75 inches, 2014

Untitled (Infinity wall), wood, mirror, LED, glass, polyurethane and acrylic, 160 x 120.7 x 17.8 cm, 2008


남자 가사도우미가 아닌, 결혼식에 동행하거나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시급 남편을 쓰는 사람들의 마음은 무엇일까? 타인의 이목을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사회이기에 이해가 되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돈으로 사는’ 관계 속에서 사람들은 더 외로워지는 건 아닐지 생각해본다.

많은 것을 가진 골드미스가 돈으로 사람을 사는 행위는 자신이 규정한 유토피아로 가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자연스럽지 않다. 마치 자신이 만든 꽃밭에 딱 하나 없는 장미꽃을 꽃집에서 급하게 사와 어울리지 않게 푹 꽂아놓은 형상이다. 정원에서 자란 꽃과 꽃집에서 사는 꽃이 같을 리가 없다. 그래도 자꾸 시도해본다. 자신의 상황을 바로 보고 인정하려는 노력을 하고 싶지가 않아서다. 물론, 노력하는 자체가 두렵기 때문일 수도 있다. 자신을 바로 보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없기 때문이다.

 

<Sternbau No. 32>, crystal, glass and acrylic beads on nickel-chrome wire, stainless steel and aluminum armature, 170 x 92 x 87 cm, 2011

 

그만큼 나의 장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단점을 겸허하게 인정하는 일은 쉽지 않다. 때문에 우리는 감쌀 수 있는 만큼 우리를 감싸고, 보호할 수 있을 만큼 자신을 보호한다. 남의 이목으로부터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나 자신을 속이고, 설득하지 못하는 일이 계속되면 외로움은 더욱 커진다. 그리고 자신을 좋아하지 못하는 비극에 다다른다. 그렇다. 이건 결국 자신을 속이는 일이다. ‘꽃이라면 모두 됐다’는 어떤 희망 속에 갇혀서 말이다. 그렇게 유토피아는 자기기만과 자기 속임, 자신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복숭아꽃이 피는 동굴이 존재하지 않듯, 유토피아는 우리가 상상하기만 하고 도달할 수 없는 ‘허상의 공간’이다.


물론, 사람은 항상 자신의 솔직한 모습을 보여줄 수 없기에, 자신의 민낯을 드러내기에는 용기가 없어서 상대방의 질문에 간단히 답하거나, 가끔은 못 들은 척하며 어려운 상황을 모면하곤 한다. 그것이 내가 만든 이상적인 나의 모습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Aubade III>, aluminum structure, polycarbonate sheet, metalized film, LED lighting, electronic wiring, stainless-steel, fog machine, dimensions variable, 2014


그러나 내가 만든 유토피아, 즉 내가 만든 이상적인 모습은 금세 밑천이 드러난다. 사람이란 참 귀신같아서, 상대방이 어떤 뜻으로 이야기하는지, 저 이야기가 허황된 이야기인지 진실 된 이야기인지를 적확히 분별해낼 수 있다. 우리는 대화를 통해 사람들을 알아가기에, 몇 마디를 나누다 보면 이 사람이 그저 시간을 때우기 위해 이야기하는 건지 나와 인연을 만들고 싶은 건지 직감적으로 알수 있다. 때문에 ‘이상적’이라 여겼던 거짓된 모습을 이어가는 찰나의 순간에 상대방은 나의 허구를 꿰뚫어 보는 것이다.

 


<블루 재스민> 영화 포스터

 

영화 <블루 재스민>에서는 과거에 빠져 현재의 삶을 인정하지 못하고, 주변사람들에게 허황되고 찬란했던 과거의 이야기만을 늘어놓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녀는 스스로의 기억을 왜곡하여 이상적인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내고,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그 모습을 인정해주기를 강요한다. 그러나 상황이 여의치 않자 그녀는 계속 혼잣말을 하며 상황을 모면하려 한다. 그리고 그녀는 멋진 남자를 만났을 때조차도 자신의 모습을 ‘가짜’로 꾸며낸다. 물론, 마지막에 모두 들통나지만 말이다. 영화의 마지막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옆에 두고 자신의 이야기를 떠들어대는 주인공의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주인공은 말을 하면 할수록, 원하면 원할수록 닿을 수 없는 유토피아를 그리며 살고 있는 것이다. 내용이 극단적이긴 했지만, 이게 솔직한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를 포장하고, 감추고, 왜곡하고, 다른 사람들의 말에 좌지우지되면서 점점 더 내 본연의 모습과 달라지는, 허황된 말을 끊임없이 뱉어내는 우리의 모습 말이다.

 

화려했던 생활을 잊지 못하는 주인공

 

현실을 인정할 수 없어 혼잣말이 늘어가는 주인공 


“유토피아는 내재적 조건으로… 항상 우리에게 더욱 가까워지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따라서 인간은 운명처럼 유토피아를 꿈꾸고 계획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유토피아에 도달할 수 없다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을 깨닫고 실망하게 되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꿈을 꾼다. 나는 그러한 실패와 결코 실현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도 꾸는 꿈들에 매력을 느낀다.”


현대 작가 이불(Leebul)은 예전부터 ‘여성’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해온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작가는 여성이라는 존재의 정체성을 넘어 ‘인간’이 지니고 있는 모든 이야기로 작품의 세계를 발전시켰다. 특히 작가는 ‘유토피아’에 대한 이야기를 짚고 넘어간다. 우리가 모두 꿈꾸지만 갈 수 없는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After Bruno Taut (Negative Capability)> crystal, glass and acrylic beads on stainless-steel armature, aluminum and copper mesh, PVC, steel and aluminum chains, 274.3 x 294.6 x 213.4 cm, 2008

 

이불은 현실과 이상에 대한 탐구인 <사이보그(Cyborg)> 시리즈에 이어, 이상사회를 향한 인간의 열망을 형상화한 <나의 거대 서사(Mon Grand Récit)> 시리즈 중 하나로 <인피니티(Infinity)>를 선보였다. 장식적이면서도 건축적으로 보이는 작품은 관람객이 직접 작품을 경험하게 하는 구조로, 주제에 대한 거시적 시각과 미시적 시각을 동시에 제안한다. <인피니티(Infinity)> 시리즈에 사용된 LED 조명과 거울조각, 크리스털은 시각적 미감을 제공함과 동시에 끝없이 반사되는 자신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이러한 형상을 통해 작품은 미래와 인간에 대한 성찰을 이끌어내며 더욱 지적인 작품으로 완성된다, 출처: PKM 갤러리

 

<태양의 도시 II>는 이불이 이탈리아 르네상스 철학자이자 공상적 공산주의자인 톰마소 캄파넬라(Tommaso Campanella)의 저서 <태양의 도시(The City of the Sun)>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하였다. 유토피아론의 고전(古典)으로, 책에서는 저자의 개혁적 이상이 반영된 이상도시를 다루고 있다. 이불은 원형의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 형태와 그에 내재된 의미를 차용, 거울의 반사를 이용한 은유로써 해당 작품을 제작하였다. 거대한 불덩이 같기도 한 전구들은 거울 면에 부착되어 반사되는데, 형태의 반전이 일어나면서 글씨를 드러낸다. ‘CIVITAS SOLIS 태양의 도시’라는 글씨는 불규칙하게 점멸을 반복한다.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태양의 도시 II> 이불, 2014 (사진: 전병철)

 

이불 작가가 이처럼 유토피아를 원하고 갈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눈에 띄는 에피소드가 있다.


“이불이 지금까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어린 시절의 한 사건에는 흥미롭게도 그의 작업의 거의 모든 요소가 다 포함되어 있다. 그것은 아름다운 외제 스쿠터를 탄 연인들이 제과점 앞에서 일으킨 사고에 관한 기억으로 순간 완벽해 보이던 젊음은 처참하게 파괴되었고 특히 탐스럽게 장식된 케이크 위에 피투성이가 된 채 얼굴을 묻고 쓰러진 여성의 모습은 그에게 잊을 수 없는 이미지로 남았다.

출처: 강태희, <How Do You Wear Your Body?: 이불의 몸짓기>, <미술사학>, 2002.8, p.165 발췌 및 <Beauty and Trauma>, Art Journal (Fall 2000), p.105 원문


우리가 완벽하게 알고 있다고 믿는 현실, 그리고 완벽한 곳을 향해 나아가고 싶어 하는 우리의 유토피아는 사실 모두 ‘만들어진 이미지’다. 잡을래야 잡을 수 없고, 갈래야 갈 수 없는 유토피아의 공간을 이불 작가는 거울에 반사되는 이미지와 다양한 철제 성격의 재료들로 전달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녀의 작품을 통해 유토피아에 도달하지 못하는 차가운 현실을 마주한다. 거대한 거울에 의해 여러 개로 쪼개어지는 모습을 마주하며, 현실 또한 하나로 규정된 것이 아님을 차가운 이미지를 통해 깨닫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우리의 민낯이자 현실이며 피하고자 했던 우리의 진짜 모습이다.


왜 사람들이 인생을 살며 중요한 행위 중 하나로 ‘명상’을 꼽았는지 조금씩 알 수 있을 것 같다. 유토피아를 꿈꾸기만 하고, 내가 원하는 이상향을 꿈꾸기만 했을 때 찾아오는 현실과의 이질감. 그러나 그 이질감은 누구도 대신 없애줄 수 없을 것이다. 나 자신이 오롯이, 지금 나아가는 발걸음을 통해 마주하고 대면하며 없앨 수밖에.

 

십사

안녕하세요, 십사입니다.
미술, 만화영화, 춤, 피천득님, 법정스님을 좋아합니다.
살아있음을 기쁘게 여기며, 지혜롭고 성실하게 살고 싶습니다.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