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Column  /  십사

끊임없는 인생의 굴레, 모리츠 에셔 (Maurits Cornelis Escher)

14.08.20 0

<Encounter> Lithograph(석판화), 464mm x 342mm, 1944

 

나는 할머니 손에 컸다. 아빠와 엄마는 일을 하느라 너무 바빴고, 밤에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나의 기억력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할머니에게 많은 영향을 받으면서 자란 것 같다.

이북(以北)에서 내려오신 나의 할머니는 동네에서 굉장히 무서운 사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항상 ‘통장’이나 ‘반장’같은 동네의 장(長)을 맡으셨다. 마트 직원이 행여 조금이라도 손님 접대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골목시장이 떠나가도록 화를 내셨다. 나는 그럼 그런 할머니가 무서워서 졸졸졸 시장 입구로 나와서 할머니의 화가 풀릴 때까지 기다렸었다. 할머니는 항상 부지런하셨고, 우리 집에 있던 큰 모과나무에서 매일 떨어지는 잎사귀와 부산물들을 쓱쓱 치우면서 하루를 시작하셨다. 동네 도둑고양이들이 헤집어 놓고 간 쓰레기봉투를 욕을 하면서 치우면서도, 임신한 고양이들이 지나가면 “야옹아~”하면서 말을 걸기도 하셨다. 할머니는 동네 아주머니들과 많이 친하게 지내셨고, 할머니들은 우리 집에 와서 해가 질 때까지 화투를 치시고 대화를 나누시다가 집으로 돌아가셨다. 초등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는, 항상 동네 언덕에서 같은 시간에 할머니가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학교를 마치고 친구들과 헤어지면서 언덕배기에서 기다리고 있는 할머니를 보면 왠지 우쭐했었다.

 

 

<Development II> Woodcut(목판화) in brown & grey-green and black & printed from 3 blocks, 455mm x 455mm, 1939

 

시간이 흐르고, 할머니와 계속 함께 살다가 내가 고등학교 때 우리 가족이 이사를 했다. 할머니와 우리는 같은 동네에 살았지만, 학원을 오고 가며 헥헥 대고 살던 내게 할머니를 보러 갈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리고 대학생이 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는 어떤 의무감에 가족들과의 시간을 제대로 보내지 못하고 오로지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왔다. 할머니한테 더 좋은 손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나는 더 많은 것을 해야 하고, 할 것이 많은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실천을 잘하지는 못한 것 같다.

내 감정만 소중하고, 나만 힘들고, 나만의 생각에 젖어 들며 사회를 배운다고 돌아다니는 동안, 할머니는 금세 인생을 83년 사신 "정말 할머니"가 되어 버렸다. 정신을 차려 보니 할머니는 등이 조금 굽으셨고, 어릴 적에 비해서 조금 더 많이 웃으시고, 초등학교 아이들을 위한 ‘급식 할머니’로 일을 하시고 계셨다. 아직 친구도 많고 호탕하게 웃고 하지만, 오른 쪽 귀가 조금 안 들리기 시작하셨고, 다리도 아픈, 그런 할머니가 되고 있었다.

 

Circle Limit IV, 1960, Woodcut(목판화) in black and ocre, printed from 2 blocks

 

그래서 더 이상 대화할 수 없을 때가 오기 전에, 할머니와 ‘할머니에 대한’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싶었다. 할머니와 밥을 먹게 되면, 나는 어려서는 물어보지 않던 것들을 조금씩 물어보았다. 할머니의 가족, 인생 같은 것들을 알고 싶었다. 물론 할머니는 나의 질문에 전부 대답을 하진 않았고, 또 나 역시 무엇부터 물어봐야 할지 몰라 두서 없이 대화를 하곤 했다.

할머니는 일사후퇴 때 이북에서 남쪽으로 내려오게 되었는데, 그 때 오빠를 잃으셨다고 한다. 먹을 것이 없어서 참 힘들었고, 부산에 자리를 잡으면서 ‘안경잡이 박씨’집안의 할아버지를 만나 결혼을 하셨다. 스무 살의 할머니가 여느 때처럼 밥을 하려고 부산의 영도대교 근처에서 쌀을 씻고 있었는데, 저 위에서 빨간 물이 줄줄 내려와서 쌀 씻는 것을 멈추셨다고 한다. 그래서 주변 사람한테 “이 물에 내려 오고 있는 빨간 물이 뭐에요?”라고 묻자, 그 사람이 “죽은 사람 시체를 대교 근처에서 버려놔서 그 피가 내려오는 거에요.”라고 해서 할머니는 그 쌀을 아까워하면서 모두 버렸다고 한다.

 

 

<Day and Night> Woodcut(목판화) in black and grey & printed from 2 blocks, 677mm x 391mm, 1938

 

할머니는 몇 개월 전부터 자신이 젊을 때 살던 부산에 한 번 다시 내려가보고 싶다고 했다. ‘죽기 전에 언제 부산에 가보겠냐’는 말씀을 하시면서. 그래서 저번 주에 할머니와 동생과 나, 이렇게 셋이서 부산에 다녀왔다. 쌀을 씻던 영도대교를 보고 싶으시다는 할머니를 위해서, 그리고 할머니 기억 속의 영도대교와 용두산 공원을 위해서 말이다. 할머니와 함께 늙어가는 부산의 친척들도 오랜만에 만났다. 할머니와 큰고모와 큰아버지들이 살아온 인생의 이야기를 듣자, 나의 인생에 대한 여린 태도와 얕은 책임감이 많이 부끄러웠다. 나는 과연, 할머니와 큰고모와 큰아버지들의 나이가 되어 돌아봤을 때, 후회하지 않을 삶을 살고 있는지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Drawing Hands> Lithograph(석판화), 332mm x 282mm, 1948

 

할머니의 인생을 모두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서 인생은 어떤 ‘끝없는 굴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모리츠 에셔(Maurits Cornelis Escher)’의 목판화와 석판화들을 떠올렸다. 모리츠 에셔(네덜란드어: Maurits Cornelis Escher, 1898년 6월 17일 ~ 1972년 3월 27일)는 네덜란드 출신의 판화가이다. 건축과 장식 디자인 학교에 다니면서 판화 제작의 기술을 배웠고, 이탈리아, 스위스, 벨기에 등을 다니며 작품 활동을 했다. 초기 작품은 주로 풍경을 다루고 있으나 1936년 무렵부터는 패턴과 공간의 환영을 반복한 작품을 발표하였다. 이슬람인의 모자이크에 영감을 받았으며 단순한 기하학적 무늬에서 수학적 변환을 이용한 창조적 형태의 테셀레이션 (빈틈이 없이 같은 모양으로 공간을 메우는 것) 작품 세계를 구축하였다.

 

같은 문양이 수없이 반복되는, 결국엔 그 어느 것으로도 귀결되지 못하는 에셔의 작품들이 우리들의 인생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싫다고 벗어날 수 없고, 괴롭다고 리셋(Re-set)할 수 없으며, 힘들다고 도중에 멈출 수 없는 끊임이 없는 이야기,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으며, 끝날 때까지 절대로 먼저 끝내서는 안될 ‘인생’이라는 이야기가 에셔의 작품에 들어있다.

 

Reptiles, 1943, Lithograph(석판화), 385mm x 334mm

 

“…어릴 때는 삶이 아주 길 것 같았지 / 까마득했지 이십년이 지난 뒤 /

이젠 두려울 만큼 짧다는 걸 알아 / 눈 깜박하면 이십년이 지난 뒤…”  

  -이적, 이십년이 지난 뒤

 

나도 언젠간 할머니와 같은 말을 할 텐데. ‘그 때는 너무나 정신이 없었고, 나를 온전히 책임지기엔 너무 무서웠으며, 앞이 보이지 않아서 힘든 날들이었지.’ 라고.

내가 할머니의 나이가 되면, 그래서 수 없이 이어지는 인생의 끝없는 이야기를 아주 조금이라도 이해를 하게 되면, 그럼 나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전쟁을 피해 나온 여자로, 혈혈단신(孑孑單身)으로결혼해가정을꾸린 아내가 되어 아들의 엄마로, 손주들의 할머니가 된 나의 할머니의 인생을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까? 아니, 할머니의 인생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는 있을까?

 

<Cycle>  Lithograph(석판화), 279mm x 475mm, 1938

 

나중에 내가 할머니의 나이가 되었을 때, 누군가가 ‘이 미로와 같은 삶을 어떻게 살았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할머니’의 힘을 받아 살아왔다고 말할 것이다. ‘눈 깜빡 하니 지나버린 시간’과 ‘나의 성장’과 ‘할머니의 나이’가 뒤섞이는 밤이다. 이 복잡한 세상, 나에게 따듯한 기억을 안겨준 할머니가 나를 위한 선물이었음을 많이 느낀다.

나는 그저 한 번 더 욕심을 부려, 바랄 뿐이다. 할머니의 남은 인생이, 할머니의 새로운 시간들이 평안하기를, 그리고 에셔의 작품과 같은 인생의 굴레가 더 이상 할머니를 힘들게 하지 않기를.

 

 

이미지 출처
http://www.mcescher.com

 

십사

안녕하세요, 십사입니다.
미술, 만화영화, 춤, 피천득님, 법정스님을 좋아합니다.
살아있음을 기쁘게 여기며, 지혜롭고 성실하게 살고 싶습니다.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