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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전진한다!, 고갱 (Paul Gauguin)

15.03.23 0

- <Alone> Paul Gauguin, oil on canvas, 1893

 

 

 

대학원에 들어온 지 3주째, 어디에 정신이 있는지 모른 상태로 시간이 흐르고 있다. 아주 바쁘고, 공부할 것들이 많지만 어떤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어 답답하기만 하다. 대학원에 들어와서 놀란 것은, 의외로 학생들이 많다는 것과 의외로 정말 공부할 것이 많다는 점, 그리고 나의 무지(無知). 그 중에서도 나의 무지와 공부할 것이 많다는 점이 나를 복잡미묘하게 만든다. 그러다 우연히 고미숙 고전평론가의 기사를 읽게 됐다.

- <Tahitian Women on the Beach> Paul Gauguin, oil on canvas, 1891

 

 


<그리스인 조르바>에 나오는 이야기. 배경은 조르바와 두목이 갈탄광 사업을 위해 들어간 크레타 섬. 파블리라는 청년이 마을의 ‘팜므파탈’인 과부를 짝사랑하다 물에 빠져 죽었다. 파블리의 시체를 둘러싸고 마을사람들이 웅성거리자 마을 장로인 아나그노스티 영감이 바위 위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면서 말한다. “파블리 이제야 구원을 받았구나. 과부와 결혼해 봐야 좀 살다 보면 부부 싸움질이나 하다 얼굴에 똥칠이나 하지. 죽자니 청춘이요, 살자니 고생이라.”

인생이 얼마나 고달팠으면 이런 말을 할까 싶지만, 천만에! “날 봐요, 나보다 복 많은 사람이 또 있겠소? 밭이 있겠다, 돈도 있겠다, 마을 장로겠다, 착하고 정숙한 여자와 결혼해서 아들딸 낳았겠다, 나는 이 여자가 내 말에 반항하여 눈꼬리 치켜뜨는 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소이다. 거기에다 내 아들들도 모두 아이 아비가 되어 있겠다. 내겐 불만이 없어요. 허나 이놈의 인생을 또 한번 살아야 한다면 파블리처럼 목에다 돌을 매달고 물에 빠져 죽고 말겠소. 팔자가 늘어져 봐도 별 수가 없어요. 저주받아 마땅하지.”
 
– 출처 :중앙SUNDAY, [길 위의 인문학] 中
 


- <When will you marry> Paul Gauguin, oil on canvas, 1892

 

 

 

우리 할머니가 이런 말을 했다면 진짜 싫었겠지만, ‘마을 장로’ 할아버지 말은 이해가 된다. 어떤 반짝임이 있는 청춘의 시기를 보내면, 사람들은 자기 입으로 ‘나이가 많아서’ 하지 못하는 일들이 많아지고, ‘나이가 많아서’ 포기하는 것들이 많아진다고 한다. 이럴 때 요즘 아주머니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노래가 생각난다.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이 문장은 자기 자신의 권태와 노력하지 않음을 이겨낸 정말 멋진 말이다. 마을 장로 할아버지처럼 자신의 인생을 권태와 안정의 나락으로 끌고 가지 않는 말인 것이다.


대학원의 3주는 작년에 회사를 그만두고 겪은 기간 중 가장 길고 스펙터클한 시기였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어쨌거나 이미 시작했고 무엇보다 스스로 인생을 설계한 첫 걸음마기 때문이다. 대학을 다니며 전공도 내가 정하고, 회사도 내가 정하고, 수많은 것을 스스로 결정했다. 더욱이 지금은 인생의 새로운 틀이 만들어지는 시기이기 때문에 놓을 수가 없다. 무엇이든 ‘처음’만큼 쉽고 어려운 일이 없다. 시작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은 유동성과 다양함을 이해하게 된다. 더욱 많이, 더욱 빠르게 혼돈의 시기가 오더라도 삶의 큰 줄기를 놓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갖기 때문이다.

-<Night Café at Arles>Paul Gauguin, oil on canvas, 1888

 

-<Arearea>Paul Gauguin, oil on canvas, 1892

 

 


나는 언제나 어렵고, 언제나 힘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10년 전의 나도, 5년 전의 나도 시덥지 않은, 혹은 정말 중요한 문제들 때문에 힘들었을 것이다. 시간은 모든 것을 잊게 만든다. As time goes by, 내가 스쳐온 과거를 더욱 빛나게 만들려면 지금 시작한 이 모든 것들을 놓을 수가 없다. 10년 뒤의 나를 만나게 되었을 때 창피하지 않기 위해 지금을 손에 잡고 살아야 한다.

 

 


고갱은 1848년 6월 7일 프랑스 파리에서 출생했다. 그의 아버지 클로비 고갱은 《르 나시오날》이라는 신문의 정치부 기자였다. 1848년 2월 프랑스혁명이 일어나 공화정이 되면서 프랑스는 정치적 혼란기를 겪게 된다. 클로비 고갱은 이때 페루의 수도인 리마로 이주해서 신문사를 차리기로 계획하고 가족을 데리고 페루로 이주한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페루로 가는 여객선에서 심장병으로 사망한다. 폴 고갱의 어린 시절은 이렇게 페루 리마에서 불행하게 시작되었다. 그가 리마에서 보낸 시기는 1849~1854년까지 였으며 리마에서 생활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1854년 고갱의 가족은 다시 프랑스로 돌아와 오를레앙에 정착하게 된다. 오를레앙에는 할아버지가 남긴 유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프랑스로 돌아온 그의 가족은 가난하였으며 그의 어머니는 삯바느질로 생계를 꾸렸다. 1865년 12월 고갱은 선박의 항로를 담당하는 견습 도선사(사관후보생)가 되어 상선(商船)을 타고 라틴아메리카와 북극 등 지구촌 여러 곳을 여행하였다. 1871년 그가 인도에 있을 때 어머니 알린 고갱의 사망소식을 듣게 된다. 1872년 선원생활을 그만두고 파리로 돌아와 증권거래점의 점원이 되어 점원생활을 하였다. 그의 일자리는 어머니의 친구인 구스타브 아로자라는 여인이 마련해준 것이었다.


-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폴 고갱 [Paul Gauguin]

- <Manao tupapau> Paul Gauguin, oil on canvas, 1892

 


- <Self-portrait> Paul Gauguin, oil on canvas, 1893

 

 


파리에 돌아온 고갱은 가정을 꾸려 점점 윤택한 생활을 즐겼다. 그리고 취미로 일요일마다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10년이 지난 후, 직업화가가 되겠다고 결심하며 가족들과 멀어진다.


시대가 좋든 어렵든, 사람 사는 건 다 비슷하다. 결국 ‘열정’을 따른 고갱은 당대의 우울함과 불안함을 이겨내 현 시대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작가가 됐다. 물론 모두가 고갱처럼 살수는 없다. 근원적인 불안을 견디며 내일을 생각하는 인간이라면 항상 현실과 꿈 사이에서 고민을 하기 마련이다. 어느 쪽으로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는가의 선택이 그 사람의 인생을 좌우한다. 고갱의 선택도 쉽지 만은 않았을 것이다. 이렇듯 무엇이든, 누구에게나 확실치 않은 인생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진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전진하면 길이 보일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의 내 생활이 대학원이라는 외국(外國)에 온 것이라 생각한다. 현실이 아니라면 현실이 아닐 수 있는 이 곳에서, 새로운 터전을 만들어 나간다. 이 곳에서는 쓰는 말도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르고, 할 수 있는 것은 아직 아무 것도 없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 진지한 타국(他國)을 만난 느낌이다.


요즘 들어, 나를 짓누르는 무기력, 권태, 많은 감정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방법을 체득하고 있다. 불안정한 감정의 홍수를 ‘희망’과 ‘노력’이라는 순풍을 빌려 조금씩 전진하고 있는 것이다. 아주 조금씩, 나의 내국(內國)과 외국(外國)을 합치면서. 그리고 ‘내 나이가 어때서~ 변화하기에 딱 좋은 나이인데~!!’라고 흥얼대면서 말이다.

 

 

 

십사

안녕하세요, 십사입니다.
미술, 만화영화, 춤, 피천득님, 법정스님을 좋아합니다.
살아있음을 기쁘게 여기며, 지혜롭고 성실하게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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