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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만나는 시간, 렘브란트의 자화상(自畵像)

14.07.30 0

<야경 (프란스 바닝 코크 대장의 민병대), The Night Watch>
<The Militia Company of Captain Frans Banning Cocq>, 캔버스에 유채, 363 x 437 cm, 1642

 

시사 프로그램에서 몇 달간 준비한 소재가 떨어지거나 사회적인 이슈가 잠잠해질 쯤, 한번씩 방영을 하는 주제가 있다. 바로 ‘쓰레기를 치우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다. 이와 같은 방송은 대개 같은 포맷을 띈다. 이를테면 하나같이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네요!”라고 입을 모으는 성우와 심한 악취와 벌레, 그리고 쓰레기와 공존하는 사람이다. 

서커스의 코끼리도 어릴 때부터 발목을 묶으면 도망가지 않는 것처럼, 살아있는 생물은 저마다 자신의 환경에 동화하는 놀라운 적응력을 보인다. 쓰레기 더미에 사는 아이들 역시 도망가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으레 프로그램의 마지막 멘트로 “우리 주변에 대한 관심이 필요합니다. 이들은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이고, 우리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라는 말이 흘러나온다. 공감하는 바이다. 왜 우리는 우울해지면 주변을, 그리고 나 자신을 돌보려는 마음이 줄어들까?

온전히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사람이 심하게 우울하면 쓰레기보다 ‘나’자신을 치우고 싶은 것 같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쓰레기를 치우지 않는 행위’는 딱히 이상할 게 없다. 살아있으나 스스로 치울 수 없는 나의 육체와 감정 때문에 스스로 움직여 치울 수 있는 ‘생명이 없는 쓰레기’를 의미 없게 만든 것이다. 그들은 방송을 통해 “도와주세요!”라고 마지막 요청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야 비로소 자신의 몸뚱이를 치울 때가 왔다고 생각한 걸까? 때문에 ‘청소를 한다.’, ‘나와 주변을 돌본다.’, ‘육체를 깨끗이 한다.’는 것은 세상에 대한 관심이 다시금 살아났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그러지 않고서는, 자신을 가꾸고 정리하는 일처럼 소모가 큰 행위는 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의 상태를 마주하는 것은 ‘(다시) 살겠다’는 삶에 대한 의지가 있어야 가능하다.

‘명암의 화가’로 유명한 렘브란트 판 레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은 초상화도 많이 그렸지만, 자화상을 더 많이 그렸다. (맨 처음의 ‘야경’은 단체 초상화다. 그 시절의 단체 초상화는 화가에게 일정한 돈을 각자 지불하고 자신의 얼굴을 남기는 형식이었는데, 렘브란트는 명암을 사용하여 몇몇에게만 집중되는 것처럼 빛과 어둠을 그려 넣었다. 그러나 초상화 속, 자신의 얼굴이 어둡게 표현되어 있는 사람들은 크게 실망했다고 한다.)

자화상을 많이 그리는 것이 곧 나르시시즘이라 생각했을 때, 렘브란트는 유별난 사람 같았다. 하지만 자화상은 요즘 우리가 자주 찍는 ‘셀카’와는 다르다. 셀카에는 스티커나 글로써 지금의 ‘기쁜’기분을 나타내지만, 손질을 계속한 자화상은 그 사람의 ‘인상과 인생’을 한꺼번에 반영하기 때문이다.

 

 

<자화상, Self Portrait as a Young Man>, 캔버스에 유채, 22.5 x 18.6 cm, 1628


<자화상, Self Portrait with a Wide-Brimmed Hat>, 캔버스에 유채, 64.4 x 47.6 cm, 1632

 

<사스키아와 함께 있는 자화상, Self Portrait with Saskia>, 캔버스에 유채, 104 x 95mm, 1636




<자화상, Portrait of Rembrandt>, 캔버스에 유채, 102x80cm, 1640 
최고 전성기를 맞이할 때의 자화상



자화상을 그리기 위해서는, 나를 ‘나’대로 보고, ‘나’를 만나는 시간을 거쳐야 한다. 꽃을 사실적으로 그리려면 꽃을 파악하고 꽃의 모양을 관찰해야 하듯, 자화상도 ‘나’를 파악하고 ‘나’를 관찰해야 하는 것이다. 어느 부분이 예쁜지, 어느 부분이 못생겼는지 등등. 젊을 때부터 늙었을 때까지, 렘브란트는 자신의 모습을 참 잘 그렸다. 성공했을 때는 성공한 모습 그대로, 늙었을 때는 늙었던 모습 그대로를 그렸다. 그의 삶, 그의 인생 전(全)과정을 보인 것이다. 젊은 시절의 자신뿐만 아니라 인생 늘그막의 자신을 스스럼 없이 보이는 일은 참으로 대단한 용기다.

 

<자화상, Self Portrait with Beret and Turned-Up Collar>, 캔버스에 유채, 84.4 x 66 cm, 1659

 

<자화상, 렘브란트 & 쾰른 자화상Self Portrait as Zeuxis>, 캔버스에 유채, 82.5x65cm, 1662


<자화상, Self Portrait at the Age of 63>, 캔버스에 유채, 86 x 70.5 cm, 1669년
렘브란트가 자화상을 남긴 마지막 해의 렘브란트 (63세)

 

렘브란트의 자화상을 보면 인생의 순간순간들이 연속해서 보이는 것 같다. 그는 최고 전성기 이후, 사랑하는 아내도 잃고 명예도 잃었다. 하지만 자신의 색깔을 갖고 끊임없이 그림에 매진한다. 그러다 인생을 맞이하는 마지막 즈음, 아무도 없이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지금,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미래를 무서워하지 말고, 현재를 살아라.’고 말 하는 것 같다. 어차피 시간은 흐르게 돼 있고, 내가 어제 한 일이 오늘의 나를 만든다.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말한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덤덤하게 자신의 인생을 살아라. 그리고 용기를 내어 ‘내가 누구인지’를 성찰하라.”고 말이다.

 

- 제목의 공통이 모두 ‘자화상’이기에 자화상으로만 제목을 표시했다.
자세한 내용과 사진은 REMBRANDT VAN RIJN 에서 볼 수 있다.

 

십사

안녕하세요, 십사입니다.
미술, 만화영화, 춤, 피천득님, 법정스님을 좋아합니다.
살아있음을 기쁘게 여기며, 지혜롭고 성실하게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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