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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나답게 사는 방법, 앙리 루소(Henri Rousseau)

14.04.15 2

<꿈, The Dream>, 1910, 캔버스에 유채, 298 x 204 cm

 

하고 싶은 분야에 뛰어든다는 것은 중요한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해볼걸!’ 혹은 ‘했어야 했는데’ 등의 후회를 넘어 새로운 문화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처음이기에 내가 가진 많은 것들을 그 문화에 맞춰야 하고 또한 부딪쳐야 한다.

대학교 학생회를 하던 스무 살, 학생회의 새로운 문화가 버거워 활동을 중도 포기하려 했던 나에게 총 학생회장 언니는 이런 말을 해주었다. “두 발을 다 담가보고 결정을 해야 한다. 한 발만 담가보면 절대로 알 수 없어.” 그래서 두 발을 담갔을 때의 기분을 알기 위해서 정말 열심히 했고, 그 다음 해에 미련 없이 학생회를 나왔다.

그리고 어느덧 시간이 흘러 두 발을 담가보는 기간이 점점 짧아지고, 여러 경험을 해보면서 눈치로라도 두 발을 담근 느낌을 어렴풋이 알 것 같은 자만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두 발을 담그기 전에 ‘이 물이 찰까, 뜨거울까, 더러울까, 깊지는 않을까’ 등등의 여러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자꾸 많은 것을 재려고 하는 나를 보면서 뇌가 늙었나 싶어 억울했다. 지구를 구할 것 같던 패기는 어디론가 가버리고, 현실과 이상의 차이가 보인다는 변명만 늘어놓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원한다면 내가 먹는 점심밥 메뉴마저 누구의 탓으로 돌릴 수 있는, 어쨌든 모든 일이 변명을 하자면 끝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주변의 관심이라는 소음공해와 내적 갈등으로 인해 힘이 빠져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갈피조차 잡기가 힘이 들 때, 자신의 독자적인 길을 걸었던 ‘앙리 루소 Henri Rousseau’의 그림을 보며 힘을 얻곤 한다.

 

<잠자는 집시, The Sleeping Gypsy>, 1897, 캔버스에 유채, 129.5 x 200.7 cm


루소(Henri Rousseau, 1844년 5월 21일 ~ 1910년 9월 2일)는 가난한 배관공의 자제로, 프랑스 마옌 데파르트망(Department) 라발에서 태어났다. 전문적인 미술 교육 없이, 파리 세관에서 25년간 세관원으로 근무하며 49세가 되어서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독학으로 주말마다 그림을 그렸기에 ‘일요화가’의 대명사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가 미술을 시작한 이 시기에 르 두아니에(Le Douanier:세관원)란 애칭을 얻게 되었다.

그의 작품은 초기에는 그가 독학으로 미술을 시작했다는 것과 어색한 인체 비례, 환상과 사실의 색다른 조합 등의 이유로 조소와 비난의 대상이 되었지만, 사후에 그의 그림은 참신성과 원시적인 자연스러움을 근거로 높이 평가되었다. 그의 원시림과 같은 원초적인 세계에 대한 동경과 환상성, 강렬한 색채는 현대예술의 거장 피카소, 아폴리네르 등에 영향을 크게 미쳤다고 알려져 있다.

(위키피디아, 앙리 루소)

 

<뱀을 부리는 주술사, The Snake Charmer>, 1907, 캔버스에 유채, 169 x 189.3 cm


루소는 입체파, 야수파 등 어느 ‘파’에 속하지 않은 독자적인 길을 간 화가이다. 아무런 편견에 휩싸이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실험적인 그림들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프랑스 밖을 한 번도 나가보지 않는 루소는 자신이 생각한 꿈의 세계를 그림으로 표현했다. 루소의 그림에 나오는 식물들은 루소의 근처에 있는 식물들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약 20개의 정글그림을 통해서 초현실적이면서도 몽환적인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만들어 냈다.  

(이번 5월 3일부터 8월 31일까지 열리는 <근대 도시 파리의 삶과 예술, 오르세미술관展>에 위의 ‘뱀을 부리는 주술사’ 그림이 올 예정이니 꼭 가서 보시면 좋겠다.)

 

<독립 100주년, Centennial of Independence>, 1892, 캔버스에 유채, 57 x 110 cm

 

루소가 멋있다고 생각이 되는 점은 50살이 되어도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영업을 할 때 어떤 의사선생님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40대까지는 자기가 가진 힘을 가지고 움직일 수가 있지. 그렇지만 50대가 되면 무엇인가를 시작할 힘을 잃어버려 아무 것도 시작하지 못하는 시기를 맞는다.”

지금을 사는 사람들도 50대는 인생이 안정기에 들어서는 시기라고 생각을 하는데, 루소가 살던 때는 더 하지 않았을까? 삶의 끈을 놓자면 너무 쉽게 놓아버릴 수 있는 공황의 시대,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는 꿈과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루소처럼 이루고픈 꿈이 있는 사람들은 인생을 쉽게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죽기 전에 나만이 꼭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직은 ‘젊은 것들’에 속하는 내가 무서운 것은, 열정을 사용하지 않으며 눈곱 낀 것처럼 내가 보고 싶은 시야로만 세상을 보는 사람으로 늙는 것이다.

하지만 점점 나이가 들수록 나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을 무서워하게 될 것 같다는 두려움도 있다. 자꾸 보이는 것과 가진 것이 많아지고, 하지 않아도 되는 비교를 하다 보면 사람은 점점 작아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발을 담그려는 물이 깊든 얕든, 멀리서 바라보고 ‘저 곳은 내게 맞지 않을 것 같구나.’ 라고 생각해버리고 말 것 같다. 참 많은 것을 거쳐야 하는 인생. 조금만 더 지혜로워 지면 좋으련만, 이렇게 순차적으로 배울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조금은 속상하다.

루소처럼 죽을 때까지 꿈을 갖고 하고 싶은 것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 그리고 나답게 살아가는 방법을 찾으며 매일 새롭게 태어나고 싶다.

 

<호랑이와 물소의 싸움, Tropical Forest: Battling Tiger and Buffalo>, 1908, 캔버스에 유채, 55 x 46 cm

 

<숲가에서, The Walk in the Forest>, 1886-1890, 캔버스에 유채, 60.5 x 70 cm

 

<에펠탑, The Eiffel Tower>, 1898, 캔버스에 유채, 77.2 x 52.4 cm

 

<들판에서, In the Fields>, 1910, 캔버스에 유채, 55 x 46 cm

 

십사

안녕하세요, 십사입니다.
미술, 만화영화, 춤, 피천득님, 법정스님을 좋아합니다.
살아있음을 기쁘게 여기며, 지혜롭고 성실하게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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