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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가치, 장 프랑수아 밀레 (Jean Francois Millet)

15.08.26 0

 

 

몇 주 전, ‘제15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에서 개막작이었던 <노동의 싱글 숏(Labour in a Single Shot)>이라는 영화를 보고 왔다.

 

이 영화의 감독 하룬 파로키는 오랫동안 함께 작업했던 작가이자 큐레이터 안트예 에만과 함께 세계 각국의 도시를 순회하며 비디오 워크숍을 진행했다. 15개 도시의 수많은 연출자들은 노동을 1-2분 이내의 한 숏으로 담으라는 과제를 수행했고 이 작품은 그 결과물의 조합이다. 도시를 이루는 수많은 가시적, 비가시적 노동을 담은 이 작품에는 도시의 특수와 그것을 관통하는 보편이 흥미로운 긴장을 이룬다. 세계를 기록하여 재생하는 데서 오는 초기 영화의 흥분이 비디오라는 매체와 집단 예술의 형태로 재현되었다.

- 출처:  네이버 영화
 

- <괭이 든 남자 (L'Homme à la houe)>, vers 1860-1862, 캔버스에 유채, 31.5 x 39 cm, Getty Center, Los Angeles.

 

 

 

"자신의 삶이나 일에 대해 단 스무 단어로 말해야 한다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시가 될 것이다."라고 말한 감독은 각 나라와 도시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담았다. 영화 초반에는 인도의 방갈로(Bungalow) 신발가게가 나온다. 아마도 신발을 정리하는 남자의 이야기인 것 같은데, 아래에서 올라오는 신발 상자들을 착착 받아내 원래 자리에 정리한다. 그리고 무한도전에서도 나왔던 빨래꾼(도비왈라)이 수동으로 기계를 사용하여 빨래를 탈수하는 장면이 나온다. 연달아 장면은 프리다 칼로(Frida Kahlo)를 연상시키는 멕시코 시티의 길거리 예술가, 어느 나라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애완동물 장의사, 솜을 꿰매는 작업을 하는 여성, 신나는 레이디 가가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모델 등 다양한 노동의 모습을 담았다. 그중에서 밀가루 반죽을 하는 남성은 뜨거운 것을 만지듯 밀가루를 몇 번 치대더니 쫀쫀해 보이는 반죽을 만들었다. 영화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일 하는 모습’을 아무 말 없이 상영한다. 사실 중간에 졸기도 했다. 아직 이런 예술 영화는 시도도 할 수 없는 내공인가 싶어 내심 우울해지기도 했다.  

- <만종 (L'Angélus)>, 1857-1859, 캔버스에 유채, 53.3 x 66 cm, musée d'Orsay, Paris.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오는 순간, 노동이란 바로 저 영화 같은 느낌이 아닐까 싶었다. 맞다, 노동은 이런 것이다. 드라마에서는 ‘직업’에 대해 수많은 로망과 환상을 갖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물론 아주 가끔 로망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로망이 매번 회사에서 실현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노동이란 단어 위로 떠오르는 색깔은 ‘잿빛’이다.

‘노동’이란 글자에 총천연색이 휘감는 역동성은 사실 많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노동을 하면 사람은 건강해지고, 강해진다. 나는 요즘 학생들이 나약한 이유는 노동을 늦게 시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직접 몸으로 부딪쳐보지 않고 우린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배운 지식과 행동을 연결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을 아는 시기가 너무 늦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본다.

- <이삭 줍는 여인들 (Des Glaneuses)>, 1857, 캔버스에 유채, 83.5 x 110 cm, musée d'Orsay, Paris.

 
- <씨 뿌리는 사람 (The Sower)>, 1850, Museum of Fine Arts, Boston.

 

 

 

영화는 정말 단조롭고 조화로운, 혹은 너무나도 조용한 느낌이었지만 내가 보기에 그들은 모두 숙련자였다. 초보자에게는 나올 수 없는 전문가의 향기와 기계가 움직이는 듯한 움직임, 그리고 미동도 없는 표정이 그랬다. 이미 그들은 수많은 시간을 그 작업과 보냈고, 익숙해진 그들의 행동과 움직임이 그들의 노동을 더욱 효율적이고 생산적으로 만들었다.


-<빵 굽는 여인 (La Fournée)>, 1854, 캔버스에 유채, 55 x 46 cm, musée Kröller-Müller, Otterlo.

 

 

 

예전에 아빠가 틀어놓은 <생활의 달인> 혹은 <극한직업> 같은 프로그램을 볼 때면 왠지 안도감이 들었다. 저기에서 일하는 사람이 내가 아니라는 생각에, 너무나도 힘들어 보이는 저곳에 내가 구성원이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사람들이 흘려온 땀과 시간이 보인다. 공장에서 상자를 가장 잘 접는 사람, 떡볶이를 만들 때도 사골 육수를 넣어서 만드는 사람, 단추를 가장 잘 끼우고 구두를 가장 잘 만들고, 배달을 잘하는 그런 사람들의 모습에서 내가 편히 살고 있다는 생각을 지워버릴 수가 없다. 굳은살이 배기고, 관절에 무리가 가도 그들은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지 않았다. 

-<양 떼와 함께 있는 목동 (Bergère avec son troupeau)>, 1863 ou 1864, 캔버스에 유채, 81 x 101 cm, musée d'Orsay, Paris.

 

 

장 프랑수와 밀레(Jean Francois Millet)는 노동의 가치를 그림으로 표현했던 미술가다.

 

장 프랑수와 밀레(Jean Francois Millet)는 19세기를 대표하는 화가로, 농부였던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농촌의 고단하고 열악한 일상의 삶을 관찰자 입장에서 그린 19세기 프랑스 바르비종파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작가다. 밀레는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농촌에서 소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18살 때 쉘부르에서 그림공부를 시작한 그는 1837년 파리로 유학해 들라로슈의 제자가 됐다. 푸생, 샤르댕, 도미에 등에 영향받은 밀레는 1848년 살롱전(파리에서 해마다 열리던 미술 전람회)에 '키질하는 농부'를 출품하였는데, 이 작품은 밀레가 최초로 대중적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1849년 파리 교외의 작은 마을 바르비종으로 거처를 옮긴 밀레는 이후 농민의 고통과 노동의 신성함을 집중적으로 화폭에 옮겼다. '이삭줍기' '만종' 등의 걸작이 이 시기 작품이다. 1860년부터 명성을 얻기 시작한 밀레는, 이후 풍경화에 매료되어 고향 풍경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주로 제작한다.

-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장 프랑수아 밀레(Jean Francois Millet) 

 

 


-<나무꾼 (The Woodchopper)>, 1858-66, 캔버스에 유채, 31 7/8 x 25 9/16 in (81 x 65 cm)

 

 

 

밀레가 보여준 ‘노동의 그림’은 화려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단조롭지도 않은 일상이다. 만약, <생활의 달인>에 나오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다면 밀레의 작품과 어떤 점이 다를지 궁금하다. 힘을 들여 일하고 잠시 넋을 놓은 채 쉬고, 그래도 다시 진행하는 모습은 아마도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노동이란 이렇게 시간을 들여서 인생의 나무를 심는 것이다. 모든 과정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려면, 그만큼 노력한 시간을 지나와야 하는 것을 너무 늦게 안 건 아닐까. 아직도 모르는 게 많다는 건 내가 초보라는 것을 증명한다. 과일이 여물 듯 모든 것에는 순서가 있고, 시간이 필요한 법. 이는 모두 인생의 경력자가 되기 위한 과정이기에 오늘 하루도 최선을 다해본다.

 

 

십사

안녕하세요, 십사입니다.
미술, 만화영화, 춤, 피천득님, 법정스님을 좋아합니다.
살아있음을 기쁘게 여기며, 지혜롭고 성실하게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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