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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성이 있는 삶에 대하여, 빈센트 반 고흐

14.12.01 2

<별이 빛나는 밤에> 빈센트 반 고흐, 캔버스에 유채,  73.7 x 92.1 cm, 1853

 

 

 

 

며칠 동안 감기가 낫지 않아 괴로운 날들이다. 수업을 하는 도중, 나도 모르게 마른기침이 계속 나자 아이들의 반응이 엇갈린다. 계속 수업하기 싫다고 이야기를 하던 남자아이는 내게 “그래서 하기 싫었던 거에요.”라며 눈을 동그랗게 뜬다. 어떤 아이는 괜찮은지 물으며 물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참, 몸이 아픈 것도 내 맘대로 아픈 것이 아닌데 왠지 서럽다. 하지만 ‘내가 조금 더 조심했으면 괜찮지 않았을까’ 하고 스스로에게 잘못을 돌려본다. ‘매번 기초체력을 키운다고 생각만 하고 안 한 내 잘못이지 뭐’라는 자책으로 애써 서러움을 다독인다. 생각을 접자니 조금 우울해진다. 생각이 쭉쭉 뻗어 나가도록 길을 터주는 것이 주인이 해야 할 몫인데 아직 수련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를의 방> 캔버스에 유채, 72 x 90cm, 1888

 

<아이리스> 캔버스에 유채,  71 x 93cm, 1889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하루 종일 여러 가지 생각에 사로잡힌다. 머릿속에 나만의 휴지통을 만들어 놓고 불필요한 생각들은 버리려고 하지만 좀처럼 쉽지 않다. 한 생각을 하면 다른 생각이 들고, 그 생각을 휴지통에 넣으면 또 다른 생각이 떠오른다. 명상을 하면 조금 나아진다는 말을 듣고 명상을 시작했지만 명상을 하는 10분 동안 끊임없이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온천에서 나올 때 몸에서 김이 나오는 것처럼, 다른 생각은 또 다른 생각에 꼬리를 문다. ‘우울하다’는 단어를 생각하고 입 밖으로 말하는 순간, 정말 우울해질 것 같아서 내 자신을 다독이고 또 다독인다. 가끔은, 아주 가끔은 두 다리로 서있는 것조차 힘이 든다.

 

‘우울하다.’는 말은 이제 너무 쉬운 말이 됐다. 다들 우울할 수 있다. 행복전도사를 하시던 분의 죽음이나 유명 연예인들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지 못한다. 정신과 의사가 텔레비전에 나와서 사주를 보지 말고 정신과에 와서 의사와 한 번 이야기하는 것이 더 낫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텔레비전에 나오는 저 사람에게 나의 우울함을 이야기할 수 없다. 깃털같이 가벼워 보이는 사람이기에.

 

<울고 있는 노인> 캔버스에 유채, 80 x 64 cm, 1890

 

 

 

 

네덜란드의 철학자 스피노자는 “자기가 사랑하는 것이 파괴되는 것을 표상하는 사람은 슬퍼할 것이다. 그러나 자기가 사랑하는 것이 유지되는 것을 표상한다면 기뻐할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 자신이 사랑하는 것이 파괴되는 상황 속에서 슬픔이 발생한다고 할 때, 그 대상은 친구나 연인 같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어떤 활동이나 이상(理想)이될수도있다. 즉자신의활동능력을촉진하고증대시키는것은기쁨이겠지만, 자신의활동능력을감소시키고억제시키는것은슬픔이라는이야기다.

 

자신이 목적한 대상을 얻기 위해 사람들은 활동 능력을 촉진해 기쁨을 얻지만, 좌절이나 실패를 겪게 되면 자신의 활동 능력을 감소시켜 억제할 수도 있다. 아마 목적을 너무 크게 잡고는 그것을 이뤄내지 못하면 채찍질부터 하는 이 시대의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목적이 작은 사람에게는 “넌 왜 이렇게 욕심이 없니?”라고 이야기를 하고, 야망이 큰 사람이 필요한 과정을 간과한 채 결과만을 향해 달려가면 ‘꿈을 이루려면 저럴 수도 있지.’라고 쉽게 말하는 사회다. 우리는 멈출 수 없는 욕망에 사로잡힌 사회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니 쉽게 지치고, 쉽게 우울해지고, 쉽게 피로해지는지도 모른다.


출처 : 신승철 저, 『눈물닦고 스피노자』, p58, 동녘, 2012

 

<밤의카페> 캔버스에 유채, 70 x 89cm, 1888

 

 

 

 

매일 매일의 ‘생산성’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나는 반 고흐의 그림이 떠올랐다. ‘우리는 반드시 생산적인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걸까? 가끔은 휴면상태로 들어갈 수 있다면 어떨까’라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쉴 새 없는 텔레비전 소리와 사람들의 평가 속, 해야 할 일들 사이에서 자유롭게 아주 고요히 쉴 수 있다면. 생산성 없이도 그래도 사람으로서 살아가는데 전혀 나쁜 일이 생기지 않을 수도 있다는, 그런 마음을 하루라도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


빈센트 반 고흐는 자신의 정신적인 슬픔들과 우울함을 그림으로 녹여냈다. 자살을 하기 위해 총으로 심장을 쏘았지만, 바로 죽지는 않았고 이틀간 심하게 앓다가 동생인 테오 옆에서 마지막 순간을 보냈다. <울고 있는 노인>은 노인의 초상화가 아닌 반 고흐가 자신의 비참하고 슬픈 상황을 녹여낸 그림이다. 아래의 <까마귀가 있는 밀밭>은 반 고흐가 1890년 7월 27일에 자살하기 직전 그린 그림이다. 그의 운명을 보여주듯 검은 까마귀들이 밀밭 위를 훨훨 날고 있고, 밀밭은 좌우로 요동치며 불안한 모습을 내비친다.

 

<까마귀가 있는 밀밭> 캔버스에 유채,  50.5 x 103cm, 1890

 

 

 

 

그림을 보면 사람의 인생은 모두 비슷할 거란 생각이 든다. 모두들 각자 외로운 인생의 그림자를 붙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위대한 예술가가 남긴 작품들도 다 자신의 사랑, 꿈을 이루기 위한 야망, 꿈을 이루지 못했을 때의 좌절, 그리고 그 좌절을 딛고 일어나기 위한 노력으로 이루어졌다. 한 길로만 갈 수는 없지만 원래 처음 생각한 길을 잊지 않으면서 한 발자국씩 내딛는 인생. 지금까지 작품과 이름을 남긴 그들의 이야기는 아마도 지금의 우리와 비슷하기 때문에, 비슷한 길을 걸어나갔던 ‘인생선배들’의 이야기라서 사랑 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를르의 포룸 광장의 카페 테라스> 캔버스에 유채, 81 x 65.5cm,1888

 

 

 


언젠가 어떤 노인이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했는데, 살면서 그 말이 가장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는 요즘이다. 누구를 위한 생산성을 생각하기 전에, 나 스스로의 삶에 자신감을 갖고 뿌리를 깊이 내리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시대다. ‘가장 단순하게 사는 것,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사는 것,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을 마치며 사는 것’이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우울한 감정이 나를 지배하는 것을 막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십사

안녕하세요, 십사입니다.
미술, 만화영화, 춤, 피천득님, 법정스님을 좋아합니다.
살아있음을 기쁘게 여기며, 지혜롭고 성실하게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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