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Features  /  REVIEW

우주의 실현, 마츠모토 레이지 <은하철도999>展

17.03.27 1

은하철도 999 주제가

 

‘은하철도 999’하면 떠오르는 단상은 ‘기차가 어둠을 해치고 은하수를 건너면, 우주 정거장에 햇빛이 쏟아지네~’를 읊조리는 김국환 아저씨의 목소리다. 거기에 이상한 천 쪼가리를 어깨에 둘러싼 덥수룩한 ‘철이’와 어쩐지 사연이 있어 보이는 ‘메텔’까지. 어린 나이에도 두 주인공은 음울한 분위기를 풍겼댔고, 그런 둘을 보고 있으면 침울한 기분이 들곤 했다.

 

images about Galaxy Express 999 on Pinterest

 

지금 와서 보면, 당시엔 뭣 모르고 움직이는 캐릭터여서 좋았던 <아기공룡 둘리>, <두치와 뿌꾸>처럼, <은하철도 999>에 대한 정확한 스토리나 세계관 설정은 기억나지 않지만, 제목만으로도 유년시절이 떠오름은 분명하다.

 

마츠모토 레이지의 사인회와 라이브 페인팅

 

그리고 지난 3월 26일,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 <은하철도 999>의 저자 마츠모토 레이지가 내한했다. 한국방문이 최초여서 일까, 전시장은 그의 팬들로 보이는 중년층의 남자로 가득 찼다. 놀랍게도 그는 특유의 모자를 눌러쓰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그의 세계를 그려냈다.

 

은하철도 999, 출처: https://matome.naver.jp3

 

<은하철도 999>展을 통해 유년시절을 더듬다 놀란 건, <은하철도 999>가 이토록 심오한 내용의 만화였냐는 점이다. <은하철도 999>는 기계인간의 세상을 다룬, 미래의 이야기다. 기술이 점차 발달함에 따라 돈이 많은 사람들은 기계 몸을 갖게 되었지만, 빈민층의 인간은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기계의 몸을 갖지 못한 빈민층의 인간들은 어두운 소굴에 모여 살며 기계인간의 멸시와 냉대를 받는다. 철이와 그의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도중, 인간사냥을 취미로 하는 기계인간이 철이의 엄마를 죽이면서, 그리고 그 살해장면을 어린 철이가 목격하면서 기계인간이 되기 위한 철이의 여행이 시작된다.

 

인간사냥을 하는 기계집단에게 살해되어 박제된 철이 엄마 , 출처: 비트스포츠 

보통의 만화영화가 그렇듯, 철이도 엄마를 죽인 기계인간에게 복수를 하고자, 그리고 기계의 몸을 얻고자 긴 여행을 떠난다. 메텔은 철이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도움을 주는, 엄마와 같이 자상하고 따뜻한 캐릭터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메텔을 떠올려보면 어쩐지 모르게 조곤조곤하게 읊조리는 차분한 그녀의 음성부터 떠오른다. 아, 한가지 더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차장의 ‘시간 알림’이라고 해야 할까.

 

철이와 메텔, 은하철도999의 차장, 출처: 타임트리

 

다음 정차역은 화룡입니다. 정차시간은 48시간 36초.

다음 정착역은 혹성, ‘영원한 우정’입니다. 정차시간은 13시간 13분 13초입니다.

다양한 배경과 사연, 그리고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우주의 정거장들. 그렇게 메텔과 철이는 제한된 시간 속에 위치한 우주 곳곳의 정착역을 누비며 기계와 인간의 삶을 알아간다. 그곳 중에는 여름이 끝나지 않는 곳도, 자신과 똑같이 생긴 사람들이 있는 나라도, 썩은 이 때문에 괴로워하는 공룡을 만나 도움을 주는 에피소드도 있다. 만화가 진행되는 동안 늘 궁금했던 메텔의 정체가 결국에는 기계인간으로 밝혀지는 게 조금 충격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메텔은 늘 철이를 저버리지 않는다.

 

은하철도 999 극장판

 

그러나 결국, 만화는 메텔과 철이의 헤어짐으로 끝을 맺는다. 누군가는 메텔과 철이가 각자의 길을 걷는 게 슬픈 결말이라 했지만, 이러한 과정이 곧 우리 인생의 장면을 그대로 보여준 건 아닐지 생각해봤다. 그도 그럴게, 철이의 여행은 마츠모토 레이지와 삶과 너무나도 닮아있기 때문이다.

 

우주를 여행하는 은하철도 999

 

어릴 적부터 우주로 가는 꿈을 안고 천문학도를 꿈꿨던 그는, 가난한 집안 형편 탓에 18살 때 도쿄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자신의 재능을 살린 만화가가 되기 위해서였다. 당시의 증기기관차로 꼬박 하루가 걸려 도착할 수 있던 도쿄행 열차 안은, 어쩌면 지금의 철이와 메텔을 탄생시킨 배경이었을지도 모른다. 기차 속 18살의 소년은 기차 안에서 누구를 만났던 걸까. 그 후로 소년은 도쿄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며 함께 우주로 가는 꿈을 꾸던 남동생을 모델로 삼아 <우주소년 야마토>를 탄생시켰다. 그 후로 우주에 대한 환상은 <은하철도 999>로 좀 더 구체화 된다.

“도쿄로 가 기계공학자가 되고 싶었어요. 하지만 가난해 돈이 없었죠. 그때 도쿄의 편집자가 기차표를 보내줘 올 수 있었죠. 동경으로 가는 기차가 터널을 지나 밖으로 나왔을 때 우주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날아가고 싶었죠. 그때 ‘은하철도999’ 아이디어를 떠올렸어요. 그때 기차를 타지 못했다면 저도 여기 없을 겁니다.”

 

철이와 메텔

 

작가의 나이는 올해 80세로 노쇠했지만, 그가 서른 무렵의 나이 때 꿈꾸던 미래의 상상들은 지금의 시대와 견주어봐도 어색함이 없었다. 방사능에 오염된 행성을 구출하기 위한 메텔과 철이의 에피소드가 현재의 일본을 떠올리게 만들었고, 소위 ‘있는 자’들만 가질 수 있는 기계 몸과 그들이 하층민의 인간들 홀대하는 태도에서도 자본주의의 속성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심오한 메시지 외에도 어릴 적 “뭐가 되고 싶어?”라는 어른들의 질문에 가감 없이 “우주 비행사요! 대통령이요! 과학자요!”를 외쳐댔던 어린 시절의 환상까지 덤으로 말이다. 그만큼 <은하철도999>가 유년시절의 우리에게 상상을 주었던 것처럼, 철이와 메텔은 지금의 아이들에게도 상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전시정보 보기 

 

김해인

읽는 사람이 즐거운,
언제나 유쾌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1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