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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低)엔트로피의 실현, 미니멀리스트

17.04.25 0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아무것도 없는 방안에 살고 싶다’, ‘궁극의 미니멀 라이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접해봤을 구문이다. 사실, 이 낯설지 않은 ‘구문’은 작년 한해 동안 출판된 도서의 제목인데, 두 가지 공통점을 갖는다. 하나는 저자가 일본인이라는 점, 또 다른 하나는 저자 모두 최소한의 것만 소유하는 ‘미니멀 라이프(minimal life)’를 추구한다는 점이다.

 

소중한 것을 위해 줄이는 사람, 미니멀리스트

미니멀리스트를 간단하게 정의하면 물건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얼마나 물건을 줄여야 미니멀리스트라고 할 수 있을까? …(중략) …

내가 생각하는 미니멀리스트는 자신에게 정말로 필요한 물건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사람이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물건을 갖고 싶어하는 사람이 아니라 무엇이 소중한지를 알고 그 외의 물건을 과감히 줄이는 사람이다.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소중한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미니멀리즘에 정답은 없다, 출처: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사사키 후미오

 

미니멀리스트의 삶은 말 그대로 단순하다. 자신에게 필요 없는 물건은 가차 없이 버리고, 꼭 필요한 물건으로 자신의 공간을 채우는 것이다. 다소 단순해 보이는 이 원리는 의외로 생활 전반에 어마어마한 위력을 발휘한다. 버리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물욕(物慾)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다시 물건을 구매할 때 과거의 경험을 되살려 ‘이 물건이 꼭 필요한 것인지’ 확인하게 되기 때문이다.

 

물건이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수납하는 것이 규칙이다. 고양이 포스케도 널찍한 공간이 마음에 드는 듯 느긋한 자세로 거실에 쉬고 있다.

 

이케비 바구니를 좋아해서 집 안 곳곳에 놓아두고 있다. 마음에 드는 바구니에 캐릭터용품 등 어질러지기 쉬운 아기용품을 넣어두었다. 

마흔 개가 되던 가방을 고르고 골라 가까스로 여덟 개로 줄이는데 성공했다.

 

전자레인지와 전기밥통은 지저분해 보이지 않도록 찬장 안에 집어 넣었다. 
싱크대에는 스펀지와 세제, 수건 외에 아무것도 꺼내놓지 않는다.

모든 사진 및 캡션 출처: <아무것도 없는 방에 살고싶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버림으로써 삶의 에너지를 얻는다는 사실이다. 저자들은 하나 같이 물건을 버리고 ‘더 행복해졌다’ 말한다. 꼭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게 되니 그간 남의 시선을 의식하던 습관 또한 사라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버림으로써 ‘진짜 소중한 물건’에 둘러싸여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미니멀리스트는 단순히 ‘물건을 버리는 사람’ 혹은 ‘최소한의 물건으로 사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기는 어렵다. 수많은 미니멀리스트가 주장하는 바대로 ‘버리는 행위’는 그저 ‘수단’일 뿐, 버리는 게 이들의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미니멀리즘: 단순함과 간결함을 추구하는 예술과 문화적인 흐름.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시각 예술 분야에 출현하고 음악, 건축, 패션, 철학 등 여러 영역으로 확대되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출처: 두산 백과사전


사실, 그간 ‘미니멀리즘’이란 용어가 디자인 업계에서나 전문적으로 사용하는 용어인 줄 알았기에 이러한 삶의 트렌드가 다소 낯설게 다가왔다. 물론, 꼭 필요한 물건으로 자신의 주변을 정돈하고, 그럼으로써 삶의 전반을 디자인한다는 측면에서 접근하면 ‘미니멀리즘’은 모두 같은 맥락에 있다. 더욱이 ‘여러 영역으로 확대되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백과사전 속 미니멀리즘의 정의가 현재의 ‘미니멀리스트’를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미니멀리스트 히지의 방, 그는 텔레비전 대신 휴대용 전자기기를 사용한다. 

 

사사키 후미오의 방, 미니멀리스트들이 애용하는 에어리 매트리스

 

사복의 제복화를 실현한 사사키 후미오

 

물론, 왜 굳이 이런 ‘라이프 스타일’로 미니멀리즘이 해석되었냐고 하면, 동일본 지진이나 각종 정보와 물건이 넘쳐나는 물질만능(자본주의)사회에 회의감을 느껴 이를 타파하기 위한 수단으로 ‘미니멀리스트’를 택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도 저자 대부분이 미니멀리스트의 유래를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들의 삶에서 ‘엔트로피 법칙’을 읽었다. 엔트로피의 사전적 정의는 ‘자연물질이 변형되어 다시 원래의 상태로 환원할 수 없게 되는 현상’이다. 쉽게 말하면 ‘모든 에너지는 질서에서 무질서한 상태로 바뀐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칙에 의해 이미 진행된 변화를 되돌릴 수는 없으므로 ‘진행된 변화(무질서)’를 ‘원래의 상태(질서)’로 바꾸려면 ‘에너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 역시 엔트로피를 증가하게 만든다.

 

엔트로피 법칙, 출처: http://uareuni.tistory.com/16

 
엔트로피 법칙에 따르면 지구상이건 우주건, 어디서든 질서를 창조하기 위해선 더 큰 무질서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러나 질서를 창조하기 위해 사용된 수많은 에너지는 일부는 쓸 수 없는 에너지로 환경오염이란 이름으로, 실업이란 이름으로 인류에게 혼돈만 가져다 주었다. 무엇보다 우리는 지구 자원의 한계를 인식하고 저(低)엔트로피 세계관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인류의 역사가 우리 세대에서 끝나게 될지도 모른다. 출처: <엔트로피> 제레미 리프킨

 

정리 전, 사사키 후미오의 방

 

정리 후, 미니멀리스트가 된 사사키 후미오의 방

 

우리의 방도 똑같다. 우리는 흔히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네. 방 청소 자주하는데 왜 이렇게 더럽지?”라는 말을 하곤 한다. 이러한 현상은 방안의 물건을 에너지 입자로 대입해보면 이해하기 쉽다. 모든 물건은 질서에서 무질서한 상태로 바뀌기에 방이 쉽게 더러워지고, 우리는 무질서하게 널 부러진 물건들을 다시 질서의 상태로 바꾸기 위해 ‘청소’를 한다. 청소라는 행위에 에너지가 필요한 건 당연하다.


무질서한 물건들을 질서있게 만드는 청소. 청소에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미니멀리스트들이 단순히 물건을 버렸을 뿐인데 ‘삶에 에너지를 얻었어요!’라고 말하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유추해볼 수 있다. 법칙에 대입해보건대, 아마 물건이 많을수록 무질서에 이르는 시간이 빨라지고, 또 그것들을 질서 있게 만드는 데 더 많은 에너지가 들 것이다. 하지만 미니멀리스트들은 꼭 자신에게 꼭 필요한 물건만 남겨두었으니, 그만큼 무질서에 이르는 시간이 길어지고 행여 빠르게 무질서의 상태에 이른다 하더라도 물건이 많을 때보다 더 적은 에너지를 들여 정돈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간 필요했던 에너지의 절반은 오롯이 자신을 위해 쓸 수 있으니, 물건을 버림으로써 에너지를 얻는 듯한 착각이 드는 건 아닐까? 때문에 미니멀리스트의 등장이 곧 저(抵)엔트로피의 실현은 아닐지 생각해본다.

 


주부 아즈키씨의 거실.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단샤리를 실천하고 있다. 거실에는 텔레비전, 탁자, 화분만 있다. 

 

주부 아키씨의 거실. 5평의 작은 거실을 간소하게 꾸몄다. "신중하게 고른 물건들로 작은 집을 최대한 즐기며 산다"는 것이 그의 신조다. 출처: <아무것도 없는 방에 살고 싶다>, 한국일보

김해인

읽는 사람이 즐거운,
언제나 유쾌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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