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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적인 MY BODY, MY CHOICE

19.06.11 0

유럽낙태여행 

다소 파격적인 책의 제목과 유럽을 연상케 하는 북 디자인으로 이목을 끌었던 <유럽낙태여행>은 여성의 임신과 낙태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서적이다. 여름휴가를 떠나며 휴가지에서 읽을 책으로 <유럽낙태여행>을 선정했던 배경에는 근 몇 년간 화두가 되었던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생명에 대한 윤리의식’이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궁금해서였다. 그리고 책의 말미에는 “여성의 재생산권(=낙태권)을 쟁취했다고 해서 안심하지는 말자. 우물쭈물 하다가는 또 퇴보할 수 있으니”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러한 문구를 실제로 반영이라도 하듯 최근 미국의 몇몇 주에서는 낙태를 금지하는 법안이 발의되어 논란을 일고 있다.

 

조금 흥미로웠던 지점은 이러한 담론에 대해 미국의 큰 기업과 연예인들이 보이는 반응이었는데, 넥플릭스를 포함한 디즈니, 소니, AMC, NBC유니버셜같은 대형 제작사들이 낙태금지법을 제정하려는 주에 해당 법이 제정될 경우 보이콧을 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리한나, 두아리파 같은 여성뮤지션의 ‘낙태 금지법’에 대한 소신 있는 발언도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샀다. 한국역시 최근 낙태죄에 대한 헌법불합치가 결정되면서 여성들의 나의 몸은 내가 결정한다(MY BODY, MY CHOICE)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류에 민감한 패션업계는 이러한 사회적 흐름을 활용하는 디자인을 선보이기도 했다. 최근 구찌(GUCCI)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패션쇼에서 신상품을 선보이며 미국 주정부의 낙태금지법안에 반대하는 컬렉션을 선보였다. ‘나의 몸은 내가 결정한다’는 슬로건이 담긴 블레이저와 양성평등을 도모하는 캠페인을 선보인 것이다.

 

 

구찌는 런웨이에서 "내 몸은 내가 선택한다"는 문구가 새겨진 블레이저와 양성평등을 지지하는 의미의 문구 "차임(Chime)"이 들어간 티셔츠를 선보였다. 차임은 구찌의 양성평등 지지 캠페인 ‘차임 포 체인지(Chime for change)’를 의미한다. ‘바뀌어야 할 때(Time for change)’를 살짝 비튼 말이다.

 

또한, 구찌는 공식 인스타그램에 꽃으로 표현한 자궁을 수놓은 원피스를 선보이기도 했는데 이를 입은 모델을 무대에 세우기도 했다. 구찌는 해당 원피스에 대해 “디렉터의 자유, 평등, 자기표현을 반영한다”고 말하며 이는 성평등을 위한 글로벌 캠페임을 밝혔다. 동시에 “해당 캠페인은 전세계 여성들과 소녀들에게 성결정권과 생식권, 산모의 건강, 개인의 자유를 지원하기 위한 프로젝트다”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이 외에 구찌는 천주교 사제와 수녀 의복이 뒤섞인 형태의 옷을 입고 나온 모델을 선보이기도 했다. 디자이너는 이러한 퍼포먼스가 낙태에 반대하는 바티칸에 항의하는 메시지가 담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알레산드로 미켈레 구찌 수석 디자이너는 패션쇼가 끝나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낙태 금지 법안 관련 논란을 언급했다. 그는 "여성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다"며 "여성은 임신 중단 여부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낙태는 여성에게 힘든 선택이고 이를 존중한다는 의사도 함께 밝혔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품브랜드에서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대해 언급했다는 점이 신선하기도 하지만, 모델들의 사이즈를 극도로 제한하는 명품업계에서 “MY BODY, MY CHOICE”를 슬로건으로 사용한 점에 모순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다. 정작 해당 문구가 적힌 옷을 작용하는 모델들은 자신의 신체 사이즈에 대한 자기 결정권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자수로 표현한 자궁 드레스에도 불편함을 토로하는 이들도 많았다. 자궁만 툭 떼다가 원피스에 수놓은 패션이 해당 기관을 가진 ‘여성’은 뒤로하고 ‘자궁’이라는 장기만 강조해 되레 ‘생식의 기능’만 강조했다는 비판이다.

 

 

 

또한, 해당 디자인을 남성 디렉터가 했다는 점에서도 “단순히 자궁의 모양을 나타냈다고 그 안에 있는 여성에 대한 모든 담론을 이해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식의 시도가 불쾌하다”는 반응도 있다. 무엇보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누구보다 여성들의 미(美)를 강조하고 조이는 명품업계에서 이런 시도를 했다는 점이 모순적이지만 신선하다는 시각도 있다. 어쩐지 매번 이러한 논란을 지켜보고 있으면, 명품도 하나의 예술작품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런웨이의 모델들이 신체사이즈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찾으면 구찌의 이러한 시도가 더욱 정당성을 얻을 것이다.

김해인

읽는 사람이 즐거운,
언제나 유쾌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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