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 기억하는 사람들

19.10.08 0

한 때 유행했던 <응답하라> 시리즈나 최근 다시 주목을 받는 '레트로 감성'은 당시 들었던 음악이나 그때 접했던 물건들을 매개로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오감을 자극하는 ‘소리’는 ‘노래’라는 아주 쉬운 방법으로 타임머신 효과를 주는데, 과거에 즐겨 듣던 노래가 흘러나오면 아주 자연스레 그때로 회귀하는 듯한 착각을 안기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마찬가지로 시각적, 청각적 자극 외에 인간에게 '각인'을 주는 감각으로 '후각'이 있다. 냄새를 맡는 기관인 '코'로 대표되는 이 감각은 최근 미술관에서도 전시를 한층 다채롭게 만드는 요소가 되어 활용되고 있다.

 

<온기> 김유정

<색놀이-북한산과 캘리포니아 해변> 노정란

 

최근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은 <The Scent of Art : 예술의 향> 전시를 통해 향의 ‘전시’를 실현했다. 미술관은 소장용으로 가지고 있는 작가의 작품 두 점에서 영감을 받아 고유의 향을 개발했다. 김유정 작가의 <온기>에서 발현된 ‘WARMTH’와 노정란 작가의 <색놀이-북한산과 캘리포니아 해변>에서 착안한 ‘BON VOYAGE’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글로는 향을 표현할 수 없지만, 이 두 타입의 향은 작가가 표현한 작품 속에 있는 산과 바다로 여행을 떠난다는 느낌을 주는 이미지로 개발되었다. 이는 ‘작품을 감상하는 또 다른 방법’이라는 부제로 작품과 함께 미술관에 전시되었으며, 굿즈로 판매하기도 했다. 아마 해당 작품을 관람한 사람들은 당장 눈앞에 작품이 없을지라도 이 향기를 통해 관람의 기억을 곱씹을 수 있을 것이다.

 

 

 

책을 다루는 공간에서도 향의 활용이 돋보인다. 대표적으로 <교보문고>는 특유의 책향을 이용한 마케팅을 통해 고객이 편히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유도했다. 흔히 책에서 나는 종이향이라고 착각할법한 이 향은 조향사들이 특별히 개발하여 만든 것으로 시트러스, 피톤치드, 천연 소나무 오일, 로즈마리를 배합해 ‘숲’의 느낌을 자아낸다. 작년부터는 해당 향을 직접 판매하고 책에 뿌릴 수 있는 종이 방향제를 개발하기도 했다. 물론, 아이디어 측면뿐만 아니라 디자인적인 요소도 놓치지 않았기에 구매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신천동에 새로 조성된 헌책방 <서울책보고>도 마찬가지다. 이곳은 교보문고처럼 책들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대나무 숲의 향을 느낄 수 있다.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동그란 프레임으로 대나무를 연상케 하는 이곳은 대나무 추출향이 책과 어우러져 마치 대나무 숲을 걷는듯한 착각을 안겨준다. 이렇듯 <교보문고>와 <서울책보고>는 향의 디자인을 통해 공간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도록 이끌고 있다. 또한, 이러한 공간이 단순히 작품을 읽는 것에 지나는 것이 아니라 책과 그 내용, 그리고 이미지를 향을 통해 더 오래 기억할 수 있도록 돕고 있는 것이다.

 

서울책보고, 출처: 한겨레 


이처럼 공간의 향기는 내재한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때문에 사람들은 계속해서 향을 찾고 기억할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앞으로 또 어떤 향이 우리의 오감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 기대된다.

 

김해인

읽는 사람이 즐거운,
언제나 유쾌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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