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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치유하는 저마다의 방법, 이시대의 ‘프리다 칼로’

20.08.13 0

1990년대 명동거리, 출처: <대한민국 정부>

 

MBC의 <놀면 뭐하니>의 이효리와 유재석, 비(Rain)로 구성된 프로젝트 그룹 '싹쓰리'가 전례 없는 음원차트 고공행진을 그리고 있다. 단순히 음악뿐만 아니라 이들의 조합이 사회적으로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전문가들은 이를 풍요로웠던 90년대에 대한 향수의 대표적인 증세로 꼽고 있다. 사회가 고도화될수록 팍팍함 속에서 풍요로웠던 과거를 그리워 하는 것이다. 외환위기를 마주하기 전의 한국은 전례 없는 성장과 자본주의의 발달로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열심히 노력하면 일한만큼 대가를 얻을 수 있는 시대. 그만큼 사회/문화 전반적으로 즐길 거리와 향유시설이 증가하고 정신도 풍요로웠던 때 였다. 되돌아 보면 학교에 다녀와 부모님이 계시지 않더라도 쉽게 옆집 문을 두드려 이웃과 저녁을 나눠먹고 잠들어도 이상하지 않았던 시기였다. 그런 맥락에서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를 휩쓸었던 이효리와 비, 그리고 유재석이 다시 반추가 되는 '싹쓰리'의 등장은 향수를 자극해서 유의미하기도 하지만, 그 중에서도 '이효리'라는 여성캐릭터의 등장이 여러 맥락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90년대의 핑클, 구글 이미지

전 세대를 아울러도 각 계층의 뇌리에 '톱스타'로 각인되었을 거라는 이효리는 '핑클'로 활동하던 90년대와 솔로로 활동하던 그 이후의 행보 모두 전 세대의 기억 속에 자리잡고 있다. 그간 사회적으로 여성, 특히 '아이돌'을 직업으로 삼는 여성에게 '어린 나이'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였다. 그래서 언젠가 한 예능에 출연한 29살의 이효리가 자신의 나이를 두고 ‘나이가 너무 많아 걱정’이라며 고민하던 모습을 본적이 있다. 당시에는 29살이 너무나 많은 나이 같아서 그 고민이 얼추 이해가 됐는데, 마흔 살이 훌쩍 넘어 또 다시 전성기를 맞이한 그녀를 보니 새삼 나이가 문제가 아니구나 싶다.

이효리, 출처: 이효리 인스타그램

나이가 사십이 넘었어도 과감한 스타일을 무리 없이 소화하고 '역시 이효리'라는 찬사가 쏟아지는 걸 보면, 그녀가 참 대단하다. 그와 동시에 그 나이대의 또 다른 여성들이 '왜 나는 이효리 같지 않지'라고 자괴감과 열등감에 빠지진 않을까 조금 걱정이 되었다. 이러한 우려를 알아서일까. 일전에 그녀의 화보를 담당했던 사진작가는 이효리가 자신의 사진에 포토샵을 하지 말 것을 제안했다는 것을 밝혔다. 자기 나이대의 여성들이 포토샵을 한 자신의 몸을 보고 혹시 자괴감에 빠질까 우려가 되어서라는 이유와 함께 말이다. 이 외에도 남편 이상순과 한적하게 즐기는 제주도 생활에 대해 "우리는 경제적으로 풍요롭기 때문에 행복할 수 있는 거다"라고 말 하는 것을 보며 그녀가 참 대단한 사람이라고 느꼈다.

JTBC 이효리 문화초대석

 

그러한 맥락에서 이효리를 중심으로 한 일상 컨텐츠가 제작되고 그녀의 생활 속에서 위로를 받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아마 <효리네 민박>같은 힐링 예능에 등장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위로를 받은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종종 나는 티비 브라운관의 그녀가 스물 아홉 살의 나이를 '많다'고 걱정하던 때를 떠올린다. 대중들의 시선 속에서 늘 어떤 평가를 받을지를 걱정하던 그녀가 화보 속 사진을 '포토샵하지 말라'고 말하기 까지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을까. 그리고 스스로 무너지지 않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동안 마음 속 갈무리를 해왔던 걸까. 이효리가 그러한 아픔을 '요가'와 '명상'을 통해 해결했다면, 같은 여성가수의 범주에 있는 '솔비'는 예술작품으로, 또 '아이유'는 음악으로 자신의 상처와 내면을 다스렸을 것이다.
 

<부서진 기둥> 프리다 칼로 

 

그런 그녀들의 모습에서 종종 '프리다 칼로'가 떠오른다. 유년시절에 질병으로 인한 소아바미와 교통사고, 남편의 여성편력 등, 여성으로서 평탄하지 않은 삶을 살았지만 프리다 칼로는 자신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그림'을 택했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작품 대부분은 '프리다 칼로' 자신과 관련된 소재가 많다. 그중에서도 '자화상'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져있는데, 이는 프리다 칼로가 거울에 비춰진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끊임 없이 자신의 내면과 마주했기 때문이란다. 개인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작품은 <부서진 기둥>이다. 이 작품은 전반적으로 그림을 압도하는 기계 같은 척추와 조잡스러운 모양새의 코르셋이 주 포인트다. 이 조악한 장치들은 어떻게든 온전치 않은 그녀의 몸 뚱아리를 '겨우' 유지하고 있다. 사실 이러한 구조물만으로 충분히 기괴한데, 그녀의 온몸에는 구석구석 못이 박혀있으며 (심지어) 울고 있는 얼굴이다. 이렇게 괴로운 그녀의 모습은 작품을 바라보는 나 자신마저도 그녀의 고통을 가늠할 수 있게 한다. 그래서 이 작품은 겉으로는 강인한 것 같지만 수도 없이 무너지는 아픈 그녀의 내면을 잘 드러낸 듯 하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우리는 많은 여성들을 떠올린다.

 

<짧은 머리의 자화상> 프리다 칼로

자신의 상처를 마주하고 타인에게 드러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특히 그림과 같은 특정한 활동(내지는 작품)을 통해 나타낸다는 건, 자신이 상처받았을 당시에 느꼈던 날것의 감정을 정리한다는 측면에서 고통스럽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성숙한 인간이 되어간다는 건 충분히 매력적인 일이다. 긔로 근래들어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상처 갈무리'가 미디어에 자주 노출되는 듯 하다. 그런 맥락에서 한 세대 전의 프라다 칼로든, 성숙한 인간이 되어가는 여성 연예인이든, 모든 사람들(특히 여성들)이 자신의 상처를 마주하고 이를 치유할 수 있길 기원한다. 그게 예술적인 측면에서 좋은 작품으로 승화되어 타인을 위로하면 더 좋은 일이니 말이다. 앞으로 더 많은 형식의 프리다 칼로를 기대해본다. 

 

김해인

읽는 사람이 즐거운,
언제나 유쾌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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