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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시간을 꾸리는 여자들

20.09.15 0

몇 주 전, 노인을 정의하는 나이가 70세로 상향조정 될 것이라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관련 기사> 생각해보면 과거 선조들이 ‘돌’과 ‘환갑’을 축하했던 이유는 그만큼 여러 가지 이유들로 생을 일찍 마감하는 경우가 많아서였다고 한다. 그런 맥락에서 의료기술의 발전과 위생관념의 변화, 여러 사회문화적 인식의 진보는 인류의 평균수명뿐만 아니라 ‘노인’이라는 개념 역시 뒤바꿔 놓았다. 사실 요즘 소셜 미디어만 봐도 단순히 외관만으로 누군가의 나이를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A conversation with Thomas L. Friedman, 출처: https://www.brookings.edu

 

그만큼 신기술의 발전도 놀랍다. 국제분야 칼럼니스트 <늦어서 고마워(Thank You for Being Late)>의 저자 ‘토머스 프리드먼(Thomas L. Friedman)’은 본격적으로 신기술의 발달이 인류 생활 전반에 큰 이변을 가져다준 시기는 2007년부터라고 한다. 실제로 그는 인류의 미래를 결정짓는 사장 큰 요소로 ‘신기술의 발달’을 우선으로 꼽았다.사실 그 뿐만이 아니라 인류의 미래를 예측하는 세계적인 석학들은 ‘인공지능의 발달’과 ‘신기술’의 출현이 인류의 노동력을 대신할 것이고, 이를 통해 노동에서 인간이 해방될 것임을 강조한다. 그래서 앞으로는 (기술이 노동을 대신해서 발생한) ‘잉여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따라 부의 척도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즉, 각자 얼마나 재미있고 유의미하게 시간을 보내는냐에 따라 돈벌이가 달라진다는 이야기다.

 

social media, https://pixabay.com

 

사실 이러한 현상은 지금도 나타나고 있다. 단순히 TV에 등장하는 연예인들만 유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 방송 BJ나 유투버 등, 자신에게 할애된 시간을 얼마나 재미있고 유의미하게 보내는지에 따라 과거와 또 다른 방식으로 부를 축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주목할 점은 삶의 모습이 그만큼 다양해졌다는 사실이다. 이와 더불어 (경로우대 나이가 상향한만큼) 기대수명과 평균수명이 증가함에 따라 “노동 외 잉여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고민해봄직 하다. 특히 각종 제한에 쉬이 마주하는 중년, 그리고 그 이상의 여성상 역시 다양해져야 한다.

 

1. 작가 노은님 

노은님 작가, 이미지 출처: <아트 인 컬쳐> 공식 트위터

 

몇 년 전 예술잡지에서 노은님 작가를 처음 접했다. 그녀를 설명하는 몇 가지 키워드는 ‘작가’와 ‘재독 간호사’ 그리고 ‘그림’이었다. 1946년생인 그녀는 20대 초반의 나이에 독일에 가게 됐는데, 외로울 때마다 한국에서 가져온 물감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리고 우연찮게 그 그림을 본 간호장에 의해 자신의 그림을 처음 선보이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미대에 진학하게 된다. 특별한 기술이 아닌 그저 마음 내키는대로 그림을 그리던 그녀는 뜻밖의 재능을 발견하게 되어 미술교수가 되기에 이른다. 외로움을 달래려 시작했던 그림은 어느새 그녀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 낯선 타국으로 떠난 용기도 대단하지만, 자신의 재능을 받아들여 새로운 분야의 삶을 개척한 그녀의 용기 또한 멋지다.

 

<봄을 꿈꾸는 소녀> 노은님, 캔버스에 혼합재료, 100x141cm, 2009

<붓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캔버스에 혼합재료, 159 x 220 cm, 모든 작품 출처: <현대화랑>

 


2. 시니어 모델 최순화

 

시니어 모델 최순화, 출처: <티에스피모델> 공식 홈페이지 

 

몇 개월 전, 막도농 일을 하다 딸의 권유로 시니어 모델일을 시작한 김칠두가 화제였다. 젊은 남성 못지 않은 패션 센스와 분위기가 대중들을 사로잡았는데, 이에 못지 않은 여성 시니어 모델도 있다. 모델 최순화다. 백발의 머리가 눈에 띄는 그녀는 “노인”하면 떠오르는 “흰머리”의 단상을 단번에 바꿔 놓았다. 특히 그녀는 2018년에 개최한 <헤라 서울패션 위크>에서 국내 최초 70대의 나이로 모델에 섰다. 170cm의 큰 키와 타고난 감각으로 어릴 적부터 모델을 꿈꿨지만, 40년대 생인 그녀에게 모델은 꿈에 불과했다. 하지만 예순의 나이가 넘어 지인에게 빌려준 돈에 문제가 생기면서 다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앞으로 살 날이 더 많으니 일단 해보고 보자는 판단에서였다. 모델 학원에 등록한 그녀는 오전에는 간병사로, 밤에는 모델연습생으로 꿈을 키웠다. 그리고 최근에는 여성 운동복 브랜드 <안다르>의 모델로 발탁됐다.



3. MBN <오래 살고 볼일>

출처: <오래살고 볼일> 공식카페 

그리고 최근 이러한 흐름에 힘입어 노인들의 다양한 모습을 일 깨우는 프로그램 역시 만들어지고 있다. 올 10월에는 모델 한혜진을 MC로 해 시니어 모델을 발굴하는 <오래 살고 볼일>을 MBN에서 런칭한다. 그저 평범한 이웃으로 여겨지던 엄마 아빠 세대의 중년들이 모델로서 어떤 모습을 선보일지 기대된다. 

 


4. 할머니들이 만든 한글 요리서: <요리는 감이여>


미처 한글을 배우지 못했던 할머니들의 이야기 역시 흥미롭다. 자식들 다 가르치고 야간 학교에 진학하여 한글을 배우고 자신의 글과 그림으로 책을 낸 노인들이 있다. 국내외 유명학교에서 정식으로 요리를 배우지도, 특출난 그림 솜씨도 있지 않지만 이들의 서적은 충분히 매력있다. 책의 전 과정에서 그녀들의 인생과 이야기가 느껴져서다. 이상하게 할머니들의 글씨만 보면 눈물이 나고 마음이 따듯해져서 위로가 필요할 때 읽을 법도 하다. 행여나 남는 시간이 있다면, 할머니들이 제시하는 가이드 라인대로 직접 요리를 해보길 추천한다. 

<요리는 감이여> 일부, 출처: <yes24> 

사실 이들의 이야기가 ‘노동 외 잉여시간’을 특정 예술활동으로 채웠다기 보다 새로운 도전을 시도한 사례에 더 부합하는 사례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빨리 비대면 시대가 도래했듯, 우리에게 남아있을 잉여시간을 어떻게 채워야할지 한 번쯤 (이들의 경험을 토대로)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수명은 길어졌고, 시간은 많아졌다. 앞으로 어떤 다양한 모습으로 그녀들의 시간을 채울지 궁금하다. 

 

김해인

읽는 사람이 즐거운,
언제나 유쾌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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