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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리뷰] 모두를 위한 미술관, 개를 위한 미술관

20.10.22 0

반려견. 그것도 ‘작지 않은 개’를 반려하기 시작하면서 일상생활에 많은 제약이 생겼다. 활동량이 많은 내 강아지는 하루에 두 번의 산책도 만족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러니 한 번 산책에 나서도 기본 한 시간은 필수이니 반려견이 삶에 영입된 이후로 사계절의 변화를 오롯이 느끼고 있다. 그렇게 산책을 하며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체감한 부분들이 참 많은데, 인생 대부분을 지금 거주하는 곳에서 보냈음에도 ‘내 동네’에 대해 잘 몰랐었다는 점이다. 동네에 허름하지만 맛있는 디저트 가게가 있었고, 늘 우울한 표정으로 반찬을 파는 아줌마와 동물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부잣집 할아버지를 알게 됐다. 무엇보다 이웃과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였다. 하지만 그 반대급부로 우리나라에 이토록 (큰)개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모두를 위한 미술관, 개를 위한 미술관>

 

도둑산책.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밤 늦은 새벽이나 이른 아침에 몰래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흔히 생각하는 작고 예쁜 강아지의 범주에 들지 않는, 현재 내가 반려하고 있는 개와 비슷한 친구들을 반려하는 사람들이 그렇다. 물론 우호적인 시선이 있긴 하지만, 이유 없이 멸시하는 시선이 더 많다. 때론 정부에서 만든 공공시설(=반려견 놀이터)조차 출입에 제한이 있어 속상한 마음을 뒤로 하고 발걸음을 돌리기도 한다. 흔히 담당자들은 ‘커서, 특정 종이라 위험해서’를 그 이유로 제시한다. 공공시설조차 이러한 실정이니 일반 사업체는 말할 필요가 없다.

 

국립현대미술관 전경

 

그런 와중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하는 <모두를 위한 미술관, 개를 위한 미술관>은 한줄기 희망이었다. (*국/내외법상 맹견의 범주에 들지 않는 종은 모두 입장이 가능하지만, 견주의 컨트롤 하에 사고발생 시 모든 책임은 견주가 지는 것을 규정으로 한다) 전시는 과거에서부터 인간에게 가장 친화적인 존재로서의 ‘개’, 그만큼 예술과 작품의 주인공이 되는 ‘개’가 정작 인간이 정한 규정에 의해 특정 공간에 들어올 수 없는 데서 시작한다. 개를 반려하고 부터는 내가 속하지 않는 집단(그것이 동물이든, 인간의 집단이든, 무엇이든)을 규정하는 행위에 대한 고민이 많아져서 기획의도가 흥미로웠다.

<모두를 위한 미술관, 개를 위한 미술관>은 가족이라고 부르지만 여전히 공공장소에 오기 힘든 반려동물을 미술관에 초청합니다. 지극히 인간적인 공간이자 대표적인 공공장소인 미술관의 실질적인 손님으로 개들을 초대하면서 현대사회의 반려의 의미, 우리 사회에서의 타자들에 대한 태도, 미술관이 담보하는 공공성의 범위 그리고 공적 공간에 대한 개념 등을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모두를 위한 미술관”이란 타이틀 아래, 미술관의 접근성 향상을 위해 수년간 노력해왔습니다. 이번 <모두를 위한 미술관, 개를 위한 미술관> 역시 그 연속선상에서 ‘모두’의 범위를 고민해볼 것입니다. 한 달 정도 미술관의 몇몇 공간은 개와 개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하는 공간으로 바뀔 예정입니다. 반려동물이 공적 장소에서도 가족이자 사회 구성원으로서 인정될 수 있는지를 질문하고, 철저히 인간 위주로 구축된 미술관이 과연 타자와 비인간(non-human)을 고려할 수 있는지를 실험할 것입니다. 출처: <모두를 위한 미술관, 개를 위한 미술관> 전시 기획의도

 

 

<모두를 위한 숲> 전경

 

이러한 기획의도 하에 국립현대미술관은 그야말로 ‘개’를 관객으로 맞이하는 실험을 감행한다. 흔히 ‘미술관’하면 떠오르는 단상은 육각 화이트 큐브 속 벽면에 작품이 걸려 있는 모습이다. 때문에 ‘개’를 관객으로 설정하는 모티브가 미술관에서 어떻게 실현될지 정말 궁금했다. 전시회 방문을 앞두고서 보호자가 개를 안고 작품을 관람해야 하는지, 작품의 높이와 위치는 어떨지, 그 작품을 개가 감상할 수 있을지, 만약 그게 아니라면 이게 정말 ‘개를 위한 미술관’인지 호기심이 든 것이다.

 

<모두를 위한 숲> 유승종, 혼합재료, 2020,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사실 이러한 고민을 할 필요도 없이 전시는 초입부터 ‘개를 위한 공간’이었다. 전시를 관람하기 위해 입장하는 계단을 이용한 동선과 미술관 입구에 위치한 정원까지 개가 마음껏 뛰어 놀고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어질리티 공간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본격적으로 전시 관람이 시작되기 전, 중정처럼 마련된 또 다른 어질리티 공간은 관람에 앞서 ‘관객’의 흥분도를 낮춰준다. 이곳에서 ‘관객’들은 마음껏 냄새를 맡고 ‘다른 관객’들과 교류하며 긴장을 낮출 수 있다. 관객과 함께 전시에 참여하는 보호자들은 전시 입구에서 안내원들에게 관련한 유의사항을 안내받는다.

 

<토고와 발토: 인류를 구한 영웅견 군상> 애견사료, 2020,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전시공간은 오롯이 관객들이 마킹하고 냄새 맡을 수 있는 오브제로 연출되었다. 특히 전시입구부터 펼쳐지는 나무 조각더미는 관객들의 마음을 빼앗기 충분하다. 그 안쪽에는 다리가 없는 의자와 어쩐지 소인국에 온 것 같은 가구들이 가득하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인간에게 ‘영웅’일컬어 지는 개들의 동상을 ‘개’ 또한 좋아할 수 있도록 사료로 작업한 작품이다. 또한 작품 중에는 개들이 인식할 수 있는 ‘파랑’과 ‘노랑’을 이용해 연출한 작업도 있다. 시력과 색에 약한 ‘관객’을 배려한 작가의 배려가 돋보인다.


<말하자면> 엘리 허경란, 2012, 2분 54초,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매주 토요일마다 런던 햄스테드 남쪽에 있는 학교 운동장에 농산물 직거래 장터가 열린다. 이곳 상인들은 지역 주민들에게 개의 출입을 자제해달라고 정중하게 부탁하는 의미로 "No dogs in the playground"를 적은 그림판을 만들어 놓았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발적으로 그림판이 있는 곳, 시장이 하눈에 내려다보이는 시장 앞에 자신의 반려견을 기다리게 하고 시장에서 장을 본다. 지극히 일상적인 장면을 간결하게 담은 이 작품은 우리에게 '반려의 의미', '영역의 구분', '그 경계를 넘나드는 개들의 순수함' 그리고 '너그러움'이란 미묘하고도 복잡한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사실 ‘관객’을 동반한 보호자라면 작품을 오롯이 감상하는데 무리가 있을 수 있다. 때문에 전시된 작품을 즐기고 싶다면, 이에 대해 미리 공부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사실 전반적으로 관객을 위한 물리적인 공간의 범위는 작지만, 연출된 나무토막 숲이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오브제 덕분에 ‘관객’은 공간을 맴돌며 제한된 공간을 편의에 따라 크게 느낄 수도 있다.

 

<푸르고 노란> 김용관, 조화, 2020

개는 적록색맹이다. 빨간색과 녹색을 보지 못하고, 파란색과 노란색만 본다고 한다. 그렇다면 개는 꽃, 식물, 나무, 숲의 풍성하고 다채로운 녹색을 느끼지 못한다는 뜻이다. 나는 색이 있는 자연을 개에게 선보이고 싶었다. 녹색은 아니지만, 풍성하고 다채로운 파란색의 자연을, 노란색의 자연을 말이다. 

 

아직 성숙한 반려문화가 성립되지 않은 지금, 과도기의 시점에서 이러한 공공기관의 비인간(non-human) 출입허용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내가 속하지 않은 집단과 범주에 대해 쉽게 타자화 하고 혐오가 만연한 지금, 공공기관의 역할에 대해 반추해볼 수 있는 전시였다. 공인된 기관으로부터 공식적인 출입을 허용 받는다는 건 생각보다 진보적인 일이다. 작고 귀여운 종을 반려하지 않아도 보호받을 수 있는 유의미한 경험이었다.

전시기간 2020년 9월 4일 – 2020년 10월 25일   
관람료 별도 공지시까지 무료
관람형태
▲반려견을 동반한 관람객
입장 가능한 요일: 화/수/목/금/토
입장 불가능한 요일: 일요일

▲반려견을 동반하지 않는 일반 관람객
모든 요일 입장 가능(휴관일 제외)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30)
문의 국립현대미술관

김해인

읽는 사람이 즐거운,
언제나 유쾌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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