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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구멍가게, 이미경 작가

20.11.16 0

처음 회사를 취직하고서 유일하게 위안을 얻었던 시간은 광화문 일대를 산책하는 일이었다. 선배와 조금 이른 점심을 먹고 날이 궂으면 근처의 카페로, 날이 좋으면 삼청동 일대를 돌며 수다를 떠는 일이 유일한 낙이었다. 유명한 회사들이 자리 잡은 일대에 대한민국의 주 여론을 이끌었던 광화문은 그만큼 트렌디하기도 했지만, 한쪽 구석에 오래된 건축물을 품은 매력적인 공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세월의 흐름을 몸소 보여주는 오래된 건축물은 보는 이에게 고즈넉함을 선사해주었고, 개인적으로 광화문과 삼청동 일대의 이러한 상반된 분위기를 좋아했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가을의 광화문을 유독 좋아하게 된 것도, 지하철 계단을 오르며 마주했던 푸른색 하늘과 노란빛의 은행잎의 조화를 쉬이 잊을 수 없어서다. 그만큼 이 일대의 분위기는 바쁨과 여유로움, 트렌디함과 올드함이 뒤섞인 ‘모순의 공간’이었다.

 

신광수퍼 70cm x 120cm 2008

 

청송수퍼 70cm x 140cm, 2008

 

곡성죽정정유소 80cm x 150cm 2008

 

그러던 어느 날, 선배와 점심식사를 하고 걸었던 삼청동 일대에서 ‘서울 도심에 이런 주택이 있다고?’ 싶은 건물을 마주한 적이 있었다. 노후 된 주택의 외관은 세월의 흐름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었고, 그 전경은 마치 나홀로 타임머신에서 톡 떨궈진 인상을 주었던 동네였다. 마치 ‘70년대 서울이 이런 분위기였을까?’를 짐작케 하던 곳. 동시에 눈에 띄는 장면은 그러한 주택과 딱 어울리는 분위기의 구멍가게가 주택가로 빠지는 양 갈래의 길을 등지고 동네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다. 왠지 나이 지긋한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가게 주인으로 있을 법한 그 구멍가게는 어느새 익숙해진 대형마트와 다른 세팅을 가지고 있었다. 한 줄로 규칙 없이 늘어선 과자와 빵, 라면 같은 식료품과 ‘정말 이곳에서 장사는 될까’ 싶은 연식이 물씬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왠지 모를 안정감을 느낀 건, 유년시절 자주 방문했던 동네 구멍가게의 이미지가 쉬이 떠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형제상회 60cm x 100cm 2010

 

도당상회 97cm x 180cm 2014

 

 

호반슈퍼 45cm x 80cm 2016

 

복희슈퍼 45cm x 80cm 2015

 

하동나루터길가게 45cm x 80cm 2018

 

엄마슈퍼 45cm x 80cm 2017

 

그리고 이미경 작가는 이러한 동네 구멍가게를 예쁜 색감과 함께 그림으로 담아냈다. 따스한 색감도 색감이지만, 그림을 볼 때마다 따스함과 안정감이 느껴지는 이유는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우리네 기억 어딘가에 자주 찾곤 했던 동네 구멍가게의 이미지가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의 그림 속 노란 은행잎과 오래된 구멍가게의 풍경은 사회 초년생 무렵에 마주했던 삼청동의 한 구멍가게를 소환한 기분이었다.

 

오목슈퍼 70cm x 131cm 2017

 

제씨상회 75cm x 135cm 2018

부광상회 60cm x 73cm 2019

 

화엄사 가는길 45cm x 80cm 2019

 

지금도 여전히 반려견과 함께 동네 어귀를 돌다보면,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커다랗고 두터운 철문으로 가려둔 동네 구멍가게를 마주하곤 한다. 어떤 곳은 너무 오래되어 더 이상 운영하지 않기도 하고, 운영하기는 하되 이제는 대형마트에 익숙해져 ‘낯선 장면’이 된 구멍가게를 마주하곤 한다. 그리고 마치 기억 속의 장면처럼 늙은 할아버지, 또는 할머니가 파리채를 들고 식료품 포장지에 붙은 파리를 내쫓으며 야구나 뉴스를 관람하는 장면을 마주하곤 한다.

 

진영슈퍼 49cm x 86cm 2019

 

당리가게 45cm x 80cm 2019

 

해남 우리슈퍼 56cm x 115cm 2019

 

하송상회 49cm x 86cm 2019, 모든 사진 출처: 이미경의 그림 이야기

 

오늘따라 이미경 작가의 동네 구멍가게 그림이 떠오르는 건 척박한 현재를 살고 있기 때문일까. 언제부터인가 삭막해진 도시 속에서 전염병 예방을 명목으로 서로에게 거리를 두고, 손과 손으로, 눈과 눈으로 전하던 온정마저 마스크로 가려 없어진 것만 같아 그 시절이 그리워서 일지도 모른다. 예술과 작품이 좋은 이유는, 그런 맥락에서 사람들에게 각자의 추억과 감상을 소환하여 위로를 전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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