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인, 그리고 현대적인

21.03.25 0

이제와 생각해보면 피가 되고 살이 된 지식들이 막상 학창시절을 통해 ‘외워야 할 것’이 되었을 때 지루함을 느꼈다. <역사>와 <사회/문화>로 일컬어지던 이 과목들은 ‘왜 배워야 하는지’ 그 이유조차 몰라서 더 재미가 없었다. 특히 초등학생 시절에는 이 시간이 너무 싫었는데, 내 이름에 특정 문화재 이름이 있어서 였다. 사실 그게 뭐라고 무시할 법도 한데, 같은 반 아이들이 이름으로 놀리는 게 무척 싫었다. 어느 날은 속상한 마음에 ‘사회 시간에 내 이름이 나와서 애들이 놀리는 게 싫다. 내 이름이 싫다’고 일기장에 적었는데, 담임 선생님의 메모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선생님은 네 이름이 좋아. 국보급 이름이잖아?’

 

남대문, 출처: 픽사베이

선생님의 답은 ‘우리의 것’을 보는 시선에 변화를 주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리의 것’의 대표적인 역할을 하는, 이름이 포함된 문화재를 보는 시선이 부정적임을 깨달은 것이다. ‘문화재’, ‘한국 적인 것’ 하면 떠오르는 고루하고 오래된 느낌. 마치 내 이름이 그런 것들을 의미하는 것 같아서 무섭고 싫었다. 하지만 일기 사건 이후 ‘전통’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고, 그 후 한옥이나 인사동 거리, 전통무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2020년, 코로나19가 등장한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야말로 ‘세계화’를 이루었던 세계는가 문을 닫기 시작했고, 각자의 내면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음뿐만이 아니었다. 외부로 향해 있던 눈들이 안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 미디어는 세계화를 지속했고, 한국적인 것을 잘 녹여낸 컨텐츠는 되레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콘텐츠의 힘이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의 역사왜곡, 출처: Change.org


최근 우리나라는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왜곡으로 분통의 시간을 겪고 있다. 물론 이는 과거에서부터 지속적으로 있었던 일이지만, 미디어가 발달한 현시대에서 역사왜곡은 더 큰 위험성을 갖는다. 이와 같은 배경에서 ‘우리의 것’을 알리는 작업은 현세대의 필수 과업이 돼 버렸다. 그리고 젊은 세대의 전통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여러층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가장 많이 눈에 띄는 작업은 전통 문양과 전통 의복에서 영감을 받은 뉴트로 디자인이다.

 

고려청자 니트, 출처: 한땀한땀 생활한복

 

<한땀한땀 생활한복>은 최근 다시 유행하기 시작한 아노락과 전통 한복을 한 데 이었다. 바스락 거리는 아노락의 감촉과 젊은 세대의 감성이 양단 소재와 합쳐서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상품을 선보이는 시니어 모델마저 신선함을 더해 “한복이 이렇게 멋있는 의복이었나” 싶을 정도다. ‘힙함’이 주목받는 시대에서 그야말로 ‘힙’ 그 자체를 선보였다.

 

양단 아노락, 출처: <한땀한땀 생활한복> 

나아가 전통 도자에서 영감을 받은 작업도 있다. 고려청자의 무늬를 본 떠 만든 ‘고려청자 니트’다. 에메랄드 빛의 색감은 물론, 패턴 역시 훌륭하다. 사람들은 예쁜 디자인은 물론, 옷이 ‘전통’에서 연유한다는 점에서 더 주목하고 있다.

 

고려청자 에어팟프로 케이스, 출처: 미미달

비슷한 맥락에서 <미미달>의 고려청자 에어팟 케이스가 있다. 이들은 장수를 상징하는 ‘학’과 ‘구름’을 패턴으로 넣어 디자인을 연출했다. ‘고려청자를 매일 가지고 다닐 수 없을까’라는 생각에서 시작된 이러한 접근은 에어팟이라는 해외 신문물과 결합해 특유의 재미를 연출하고 있다. 이들은 고려청자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색감인 비색과 군청색 옵션을 추가해 다양성 또한 확보했다. 이 외에도 단청무늬로 연출한 그립톡과 캔버스 백, 단청 우산, 고려청자 키링, 그립톡 등이 있다.

 

미미달 단청 그립톡, 출처: 미미달

 

사극이나 문화재에서나 볼 수 있는 전통무늬가 현대의 신문물과 결합할 수 있어 반갑기만 하다. 물론 단순히 ‘전통의 재해석’이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해서는 안 되겠지만, 기능과 의미, 그리고 디자인 또한 갖춘 전통의 것들이 계속해서 재생산되길 바란다.

 

김해인

읽는 사람이 즐거운,
언제나 유쾌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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