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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배도’로 코로나 쫓기

21.07.13 0

생각처럼 일이 풀리지 않거나 무언가를 간절히 바랄 때, 인간은 바보 같은 생각임을 알면서도 미신적인 행동을 한다. 일명 ‘끌어당김의 법칙’이라 불리는 시크릿에 의존하거나, 절대적인 신(神)에게 비는 일이 그렇다. 사실 내면 깊숙한 곳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럴듯한 미신 행동이 때때로 위안을 줄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혹세무민에 빠지면 쉽게 종교에 의지하거나 자신을 구원해줄 유일신에 매료되기 쉽다.

 

문배도, 45 x 34cm,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코로나가 시작된 지 어느새 일 년 반, 백신 접종으로 일단락 될 줄 알았던 바이러스가 스물스물 재창궐 하기 시작했다. ‘코로나가 끝나는 언젠가’를 기약했던 사람들은 거의 눈 앞에 왔던 바이러스의 종말에 아쉬움을 감출 새 없다. 2021년이 되면 끝날 줄 았는데, 또 다시 시작이라니. 인류와 바이러스의 지겨운 싸움의 끝이 어딜까 예측하기도 더욱 어려워졌다. 인류가 어느새 코로나와 함께하는 일상에 익숙해졌듯, 코로나 또한 제 나름대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정말 국가적인 차원에서 부적이라도 써야 하는 게 아닐까.

 


그리고 재미있게도 올해 초 경복궁과 광화문 앞에 코로나를 쫓기위한 ‘문배도’ 가 내걸렸다. ‘문배’란 과거 우리 조상들이 새해에 수행했던 의식으로, 외부세계와 이어지는 ‘문’에 온갖 잡귀를 물리친다는 그림을 내거는 행위를 말한다. 일종의 부적 역할을 하는 ‘문배’에는 여러 가지 형상이 등장하는데, 인간에게 친숙한 강아지와 닭 뿐만 아니라 다소 무섭고 낯선 호랑이와 해태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 ‘문배’는 궁중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도 널리 행해지던 풍속이었는데, 어느 순간 사라졌다고 한다.

 

문배도, 수묵채색화, 35x45cm,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특히 ‘개’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문배도는 그만큼 ‘개’라는 개체가 우리 조상에 친숙한 존재임을 시사한다. 사실 생각해보면, 잡귀신과 같은 액운을 물리치는 <문배도>에 호랑이나 사자, 늑대같은 카리스마 있는 동물이 등장할 법도 하다. 그러나 외부 침입자로부터 집안을 지키고 가족들과 유대감을 나누는 ‘개’의 전통적 역할을 반추해보면, <문배도>의 메인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이유가 타당하다. 물론 기술이 발전한 현대사회에서 외부 침입자를 막는 개의 역할은 보안업체로 변화되었지만 말이다.

 

광화문의 <금갑장군> 문배도, 이미지 출처: YTN


그래서일까. 이번에 광화문과 경복궁에 실린 문배는 동물대신 ‘금갑장군’이 등장한다. 금갑장군은 말 그대로 금으로 된 갑옷을 입은 장군을 말한다. 이들은 다소 험악한 인상으로 한 쪽 손에 각각 ‘도끼’와 ‘절’을 들고 방문객을 맞이하는데, 그만큼 강렬한 인상 탓에 코로나도 지레 겁먹을 듯 하다.

 

19C 광화문에 걸린 <금갑장군> 문배도, 출처: 문화재청

 

<금갑장군 문배도>가 더욱 특별한 건 구한말 시대 광화문에 실제로 걸린 문배도를 복원한 데 있다. 해당 문배도는 1800년 대 후반, 미국에서 발행한 가정잡지에 실린 광화문의 문배도를 모티브로 한다. 사실 잡지에 게재된 문배도는 그림 절반 이상이 뜯겨져 있었는데, 문화재청 산하 기관인 국외소재문화재 재단의 조사로 원본을 복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시대의 흐름을 좇아 2021년의 <금갑장군 문배도>는 종이가 아닌 현수막으로 제작되었다.

 

‘문배’에 관한 기록은 그동안 조선 시대 문헌 자료인『열양세시기(冽陽歲時記)』,『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를 비롯하여 조선 후기 행정법규와 관례 등을 정리한 『육전조례(六典條例)』에도 수록되어 있었지만, 그 도상의 실체에 대해서는 뚜렷이 확인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최응천)이 2015년 주미대한제국공사관(미국 워싱턴 D.C. 소재) 복원·재현 과정 중 미국 의회도서관 이 소장한 경복궁 광화문 사진을 발굴함에 따라 광화문에 붙인 문배도의 구체적인 도상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이 사진을 통해 19세기 말 경복궁 광화문에 금갑장군이 그려진 문배도가 붙여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출처: <문화재청> 

 

복원한 문배도, 출처: <문화재청>

 

잡귀와 액운을 쫓는다는 문배도의 부활은 코로나 시국에 시의 적절한 시도이다. 문 앞에 그림 하나 붙였다고 ‘뭐가 달라질까’ 싶지만, 일종의 부적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지겨운 코로나가 문배도를 보고 썩 이 땅에서 사라지길 기원해본다.

 

김해인

읽는 사람이 즐거운,
언제나 유쾌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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