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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인간’이 가야할 길

22.01.12 0

 

흥겨운 음악을 배경으로 한 여성이 춤을 춘다. 각별히 주의해서 보지 않으면 잘 모르겠지만, 반복해서 보다 보면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모습도 눈에 띈다. 이 여성은 팔로워 11만 명을 거느린 인플루엔서다. 그녀의 이름은 ‘로지’. 수많은 팔로워를 거닌 덕분에 로지는 어느 인플루엔서 못지않은 파워를 지녔다. CF에 출현해 춤을 추고, 여러 가지 광고 협찬은 물론 패션화보도 찍는다.

 

신한 라이프 '로지', 출처: 인스타그램

 

2021년 7월에 공식 데뷔한 로지는 코로나 시국에도 거침없이 해외여행을 즐기며 마스크조차 쓰지 않는다. 코로나와 변이 바이러스로 시끄러운 이 시국에 유명인이라고 해서 질병을 피해갈 수는 없는데, 어째선지 팬들은 조용하기만 하다. 대중의 비판 또한 없이 다들 괜찮다는 분위기다. 굉장한 팬덤이 아닐까 싶지만 실은 그녀는 비판에서 열외 될 수밖에 없다. 로지가 ‘진짜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쩐지 부자연스러운 표정과 몸짓이 이해가 되는 기분이다.

 

신한 라이프 '로지', 출처: 인스타그램

 

그러나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데뷔 당시 로지가 버추얼 인간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았다는 점이다. 긴가민가한 호기심도 들었겠지만, 4개월 동안 정체를 밝히지 않았다. 되레 정체를 밝히고 나서 신선한 접근에 대중들은 흥미를 표했다. 사실 로지가 진짜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은 그녀가 가진 능력에 그다지 큰 변수는 아니었다. 그녀가 가진 파워가 실존 인물 못지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로지는 현재 100개가 넘는 국내 광고에 출현했고, 광고비만 해도 20억에 달한다.

 

협찬 받은 상품을 인스타에 게재하는 본업도 충실히 수행 중이다. 일각에서는 실제 광고모델과 달리 사고 칠 위험(?)이 적고 여타 기회비용 측면에서 이점이 강해 가상인간을 선호한다. 그만큼 여러 기업에서 다양한 버추얼 리얼리티 인간이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최초로 사이버 가수 ‘아담’이 있었지만, 한 번 제작할 때마다 수억 원이 소요되어 활동을 지속할 수 없었다고 한다)

 

imma, 출처: imma.gram

 

<삼성전자>의 ‘샘’, 일본 <이케아>의 ‘임마’, <LG> 전자 ‘김레아’, <신한카드>의 ‘로지’는 일련의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모두 가상인간이라는 점과 하나같이 ‘젊은 여성’이라는 사실이다. 심지어 이들의 나이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으로 설정되어 있다. ‘뭐, 그게 별 건가?’ 싶지만 생각해보면 어쩐지 이상하다. 물론 남자 가상인물 또한 존재하긴 하지만 여성 모델에 비해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SAM, 출처: Voicebot.ai SamMobile

 

이처럼 가상인물 대다수가 여성인 이유는 최대한 기존의 여성과 닮게 해서 예쁜 모습으로 꾸며 대중들의 소비를 유도함에 있다. 심리적으로 누군가를 ‘닮고 싶다’고 유도하는 것은 광고에서 매우 중요한 연출이다. 사실 이러한 접근은 일반적인 연예인이 대중에게 소비되는 방식과 매우 유사하다. 때문에 아무리 버추얼 인플루엔서라고 하더라도 단순히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쉽게 성적대상화가 되며 수반하는 악플 역시 연예인 못지않다. 실제로 2021년에 공개되었던 한 스타트업 회사의 AI 챗봇 ‘이루다’는 100억 건의 연인간의 데이터를 수집하여 가상 채팅이 가능한 서비스를 선보였다.

그러나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성유저들은 ‘이루다 성희롱 하는 법’, ‘이루다랑 성(性)적 대화하기’라는 방법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논란이 일면서 이루다를 개발한 회사는 연인간의 대화를 불법으로 수집한 게 아니냐는 의문이 일었고, 이러한 논란에 휩싸여 서비스를 폐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AI 챗봇 '이루다', 출처: 페이스북

 

‘로지, 레아, 샘’에게 달리는 악플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에게 달리는 악플은 일반 여성 연예인에게 게재되는 악플과 별반 다를 바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들이 ‘진짜 인간’이 아니기에 해당 악플을 읽을 수 없고, 설령 읽는다 하더라도 정신적인 타격을 입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제까지 우리가 접해온 미래를 다룬 여러 가지 영화가 떠오르기 마련이다. <AI>, <아일랜드>, <월E>와 같이 ‘진짜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가상 인간’은 인간처럼 감정을 느낄 수 없으므로 희롱의 대상이 되어도 괜찮을 것일까. 실제로 여러 가지 이미지와 영상을 이용해 이미지를 만드는 ‘딥 페이크’ 기술이 가상 인물을 이용해 음란물을 제작하는데 쓰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우려하는 바가 크다.

 

 

무엇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은 다양한데 10에서 20대, 그것도 여성, 그 중에서도 출중한 외모를 지닌 개체로만 표현되는 것이 기괴하다. 그야말로 자본주의와 외모 지상주의, 나아가 여성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메타버스와 신기술은 코로나 이후 그 필요성이 더욱 가속화되어 우리 일상 속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물론, 가상인물의 실효성이 길지 않으리라는 전망 또한 있지만 이들을 제작하는 개발자, 디자이너, 기획자들은 이들이 사회에 미칠 효과에 대해 직업적 윤리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들을 양성하는 교육기관과 관련 회사에서도 이에 관한 담론을 꼭 되짚어야 할 것이다. 영화 <매트릭스>에서나 보던 가상현실과 인물들이 점차 우리의 현실에 스며들기 시작한 것이 신기한 때이다. 앞으로 우리 세계에 어떤 가상현실과 인물들이 개입될지 궁금하고도 우려가 된다. 그만큼 가상인물을 디자인 하는데 있어서도 휴머니즘이 필요한 때다.

 

김해인

읽는 사람이 즐거운,
언제나 유쾌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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