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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n Hater> 속 '선배작가들'을 소개합니다 - 벨라스케스, 밀레, 엘 그레코!

14.10.31 1

- <BORN HATER> M/V, EPIK HIGH

 

 

 

에픽하이가 신곡 <Born Hater> 를 발표했다. 스마트폰 유저들을 위해 세로로 촬영했다는 뮤직비디오에는 여러 래퍼들이 등장해 각각 7대 죄악(나태, 시기, 탐욕, 색욕, 식탐, 분노, 교만)을 연기한다. 개인적으로 힙합에 대한 관심과 지식수준이 ‘비트와 밀당하는 나~? 힙합밀당녀!’ 수준에 불과하다 보니 펀치라인이 뭐고 라임이 어떤지는 논하지 못하겠다. 그러나 뮤비 초반, 타블로가 등장하는 장면은 “굳이” 스페이스 바를 눌러야 했다. 타블로의 뒤에 위치한 피카소 초상화에 선명한 X표시 와, ‘I'm a born hater. 달리, 반, 피카소? 난 벨라스케스, 밀레, 엘 fuckin' 그레코 내 에코.’ 라는 가사 때문이다.

 

 

 

 

‘질투’를 대변하는 타블로가 언급하는 ‘달리, 반, 피카소’는 분명 빈지노의 동명 곡 (Dali, Van, Picasso)일 테다. 그러니까, “네가 달리, 고흐, 피카소라고? 그럼 난 벨라스케스, 밀레, 엘 그레코다!” 하고 전자의 세 작가들에게 선배들의 이름을 들이미는 것이다. 처음엔 타블로가 선택한 이 선배 작가들 (벨라스케스, 밀레, 엘 그레코)이 달리, 고흐, 피카소와 대립 점을 가지고 있는지 고민을 했다. 그런데 여러번 뮤직비디오를 보고 가사를 곱씹어보니 ‘네가 대통령이면 나는 대통령 할아버지다!’는 의미다.

 

더군다나 벨라스케스와 밀레는 후대의 작가들에게 굉장히 존경 받았고 오마주의 대상으로도 심심찮게 등장하는 작가들이다. 그래서 써봤다. 이들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인지. 그러나 ‘달리, 반, 피카소’ 보다 위대한 작가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독자의 판단에 맡긴다. 요즘 세상은 ‘취존’ 시대니까.

 

- <이삭 줍는 사람들 (Les glaneuses)> 장 프랑수아 밀레,1857, 오르세 미술관 소장

 

 

맨 처음으로 소개할 장 프랑수아 밀레 (Jean-François Millet) 는.. 글쎄 굳이 설명이 필요할까 싶다. <이삭 줍는 여인들>은 그 동안 여러 매체에서 수도 없이 패러디 했고 심지어 CF에도 등장한 적이 있다. 그래도 기본적인 소개를 하자면 19세기 프랑스 작가로서 바르비종파를 대표한다. 농민의 삶을 있는 그대로 화폭에 담아낸 이 그림은 당연히 당대 높으신 분들의 지탄을 받아야만 했다. “밀레는 파리의 화려한 살롱에서 상류층의 입맛에 맞는 그림을 그리는 것 보다 바르비종이라는 시골에서 편안하게 그리고 싶은 것을 그렸다.” 라고 한다면 당신은 이제 바르비종파가 무엇인지 다른 이들에게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밀레가 평생 농촌에서 농민들만 그리며 물아일체의 삶을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말자. 이 그림은 10년 후 파리 만국박람회에 소개되어 그 다음 해, 밀레는 예술계에서 최고의 훈장을 수여 받았다. 나름대로 해피엔딩. 우리가 쉽게 접하는 유명 화가들은 우리 생각만큼 힘들게 살지 않았다고 한다. 모두가 생전 한 장의 그림도 못 판 고흐처럼은 살지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 몽마르트 사창가에서 사생아로 태어난 알코올중독자 모리스 위트릴로 (Maurice Utrillo) 마저도 만년에는 훈장을 달고 부인과 행복하게 잘 살았다. 결국은 그 시절에도 예체능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나 보다.

 

- <성 요한의 소명 (The Vision of Saint John)> 엘 그레코, 1608-1614,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 <성모승천 (The Assumption of the Virgin)> 엘 그레코, 1577-1579,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소장

 

 

두 번째로 소개할 엘 그레코 (El Greco)는, 딱 한 단어만 알아두면 된다. ‘매너리즘’. “요새 매너리즘에 빠졌어요.” 할 때의 그 ‘매너리즘’이 맞다. 기본적으로 매너리즘이란 르네상스 미술이 끝나가면서 등장한 과도기적인 미술 양식을 뜻한다. 완벽한 수직과 수평의 이상미(美)를 추구했던 르네상스 시대 사람들에게 흘러내리는 듯한, 거대한 비대칭의 구도와 인체는 아마도 꽤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엘 그레코가 정신이상이 있거나 시각장애가 있을 거라고까지 이야기 했다고 하니 어느 정도의 충격과 공포였는지 대충 가늠이 된다.

 

엘 그레코는 원래 그리스 출신으로 당시의 작가들이 출생한 지역에 따라 이름이 붙여졌듯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빈치’ 출신인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리스 사람’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후에는 스페인의 톨레도에서 활동했는데, 특이한 것은 자신이 그리스인임을 항상 인식하고 자랑스러웠는지 항상 그림 한 구석에 자신의 그리스 본명, ‘도메니코스 테오토코풀로스 (Doménikos Theotokópoulos)’를 그리스 어로 자랑스럽게 적어놓았다. 이 정도의 자존감으로 볼 때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에 보인 경악은 엘 그레코에게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매너리즘이라는 단어 자체는 보통 과거로 역행하는 상태나 더 이상 발전이 없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곤 한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해보면 엘 그레코의 매너리즘 양식은 지나치게 완벽을 추구했던 르네상스의 작품들에게 일종의 돌파구였다. 완전히 새로운 ‘시대양식’이었던 것이다. 엘 그레코는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사람들의 지탄과 경악 속에서도 자신의 길을 꿋꿋이 걸어갔을 것이다. 원래 선구자가 된다는 것은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 아닌가.

- <시녀들 (Las Meninas)> 디에고 벨라스케스, 1656, 프라도 박물관 소장

 

 

위의 그림을 어디선가 한번쯤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바로 스페인의 궁정화가로서 펠리페 4세의 초상화를 독점해 그릴 수 있었던 디에고 벨라스케스 (Diego Velazquez)의 <시녀들>이다. 중앙의 마르가리타 공주를 둘러싸고 있는 인물들의 움직임과 구도, 그리고 캔버스 밖의 인물들(뒤편의 그림에 비친 한 쌍의 남녀는 스페인 왕과 왕비다)까지. 마치 사진처럼 담아낸 이 그림은 단연 벨라스케스의 명작으로 꼽힌다. 자연스러우면서도 사실적인 인물표현 외에 우리가 이 작품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화가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고 중요한 인물로 그리고자 했다는 점이다. 거대한 캔버스 앞에서 관객과 똑바로 눈을 맞추고 있는 남자가 있다. 스물 넷에 궁정화가 자리에 올라 귀족이 되고, 결국 궁정 의전관에까지 오른 이 남자는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을 자화상으로 표현했다. 시간이 지나고 스페인 궁정은 저물었지만 벨라스케스는 무려 ‘화가들의 멘토’ 라는 명성을 얻었다. 증거도 있다.

- 왼쪽부터 차례대로 피카소의 <시녀들> #1, #33, #31, #34, 모두 1957년에 제작되었다.

 

 

피카소는 이 <시녀들>을 주제로 58점의 연작을 그려냈다. 근 1년간 스튜디오에 박혀 쏟아낸 작품은 처음에는 원작의 느낌을 주지만 점차 형태와 색감, 전체적인 방향이 그만의 방식으로 변형된다. 1년 동안 58점이라는 것은 거의 1주일에 하나씩 그렸단 것이다. 벨라스케스가 보기엔 상당히 무섭고도(?) 기특한 후배일 것 같다. 피카소 외에도 여러 작가들이 자신만의 <시녀들>을 재창조했다. 그리고 현대에서도 벨라스케스의 작품은 여러 곳에서 패러디가 이루어지고 있다. 아래의 심슨의 시녀들과 디즈니의 시녀들(에 숨겨진 뱅크시의 현실풍자를 찾아내길!)를 보면 깨알 같은 요소들이 보는 이를 웃음짓게 한다.

 

 

 

이렇게 세 작가들을 쭉 둘러보고 나니 타블로의 선택에 수긍이 간다. 물론 달리, 고흐, 피카소도 한 시대를 풍미한 위대한 화가가 맞지만 그들의 할아버지 격인 벨라스케스, 밀레, 엘 그레코 역시도 엄청난 대가들이니 말이다. 처음에도 말했듯 누가 누가 더 잘난 화가인지는 철저히 개인 취향에 따르도록 하자. 이들 모두에게도 hater는 있을 테니 말이다. <Born Hater>를 몇 번이고 돌려 들어도 이게 좋은 힙합인지 나쁜 힙합인지 솔직히 필자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하, 이 작가들을 언급하다니!” 하면서 살짝 잘난 척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힙합 공부를 조금 더 하면 완벽하게 양 손을 피-쓰 모양으로 만들 수 있을 텐데 여전히 비트와 밀땅하는 나↗라니, 슬프다.

 

 

 

이미지 출처
http://www.sportsseoul.com/?c=v&m=n&i=124715

http://en.wikipedia.org/wiki/File:Jean-Fran%C3%A7ois_Millet_-_Gleaners_-_Google_Art_Project_2.jpg
http://en.wikipedia.org/wiki/Las_Meninas

http://ingridfugelliegezan.wordpress.com/textos-2/las-meninas-de-picasso
http://imgkid.com/las-meninas-detail.shtml



김월

나의 글이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영감이 되길 바랍니다.
예술과 친근한 세상을 만들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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