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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원초적인 성숙, 이별

15.10.02 0

 

 

"내 신경이 이런 상황을 견뎌 내다니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내내 나는 그녀의 남편이 눈치 채지 않을까 하는 생각만 했다.
만약 눈치를 챈다면 그는 처음에 파랗게 질렸다가, 나중에는 활화산처럼 분노를 폭발하겠지."

- 뭉크

 

<질투> 뭉크

<질투> 뭉크

<질투> 뭉크

 

요즘은 아침바람이 시리다. 아침엔 긴팔 옷을 꺼내 입었다가 오후엔 햇살이 뜨겁고, 돌아오는 밤에는 다시 시원해진다. 환절기(換節期)라는 이름의 애매한 계절이다. 이런 날씨에는 사람의 마음도 뒤죽박죽이다. 계절이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 일은 언제나 익숙치 않다.

우리나라는 두 번의 환절기를 거친다. 겨울에서 봄으로, 여름에서 가을로. 따뜻함과 차가움이 정반대의 성질을 가지듯 따뜻한 날로 향하는 계절과 차가운 날로 향하는 계절 또한 사람 마음을 각자 다른 모양으로 흔든다. 그리고 벌써 10월이다. 우리는 겨울로 향하는 문턱에 서있다. 어쩐지 즐거움보단 슬픔이, 만남보단 이별이 더 어울리는 그런 날씨다.

10월에 어울리는 인물을 찾았다. 노르웨이의 거장 에드바르드 뭉크(Edvard Munch) 다. 일생에 걸쳐 겪었던 몇 번의 사랑은 그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고 말년엔 그로 인한 여성혐오 성향을 강하게 가진 화가다. 누구나 겪는 자신의 깊은 내면을 꺼내 보여주는 표현주의의 창시자로 평가되는 뭉크의 그림에는 그의 사랑과 이별, 그리고 상처가 모두 녹아있다.

 

<eye in eye> 뭉크

 


뭉크 이야기


오른손을 가슴위에 얹었다. 심장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 이 근육덩어리는 살갗 아래에서 조용히 두근거릴 뿐인데, 이따금씩 명치부터 그 안쪽 깊은 곳까지 사정없이 조여 오는 통증을 느낀다. 육체에 가해지는 가슴의 통증이 몸의 어떠한 부분이 고장 나 생기는 그런 병에 의한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얼마 전 겪은 이별의 슬픔으로, 감정이 일으키는 소용돌이에 날카롭게 베인 마음의 상처는 어떠한 과학적 진단 아래서 해결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손에 잡히는 듯 생생히 느껴지는 가슴. 그니까, 심장을 움켜쥐려는 아주 작은 노력뿐인데, 이런 행동이 고통을 줄이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몸으로 느낀다.

마음 안으로 쌓여만 가는 지저분한 감정을 이대로 둔다면, 금세 곪아 커다란 흉으로 남겠지. 마음을 다잡는다. 먼지 쌓인 캔버스를 이젤에 얹은 후 입으로 바람을 불었다. 먼지가 날린다. 붓을 들고 하얀 캔버스 앞에 앉았다. 카타르시스, 나는 정신적 안정을 찾을 준비가 되었다.

<이별> 뭉크



남자를 그린다.

나를 그린다. 걸친 옷을 모조리 검은색으로 칠했다. 이제야 그녀 존재의 소중함을 깨달은 지금 자신에 대한 원망과, 그녀가 나로 인해 겪어야만 했던 고통에 대한 미안함과, 그런 모든 후회와 미련들은 모조리 까맣다.

 

얼굴을 그린다.

조금 더 칙칙하게, 표정을 그릴 때에는 잠시 멈칫 하고 '내 표정이 어떨까'에 대해 생각했다. 그녀는 나에 대한 미련이나 생각이 남아있지 않을 테고, 나는 그 이유가 내 행동에 기인한 것을 안다. 때문에 그녀는 나에게 돌아올 수 없다. 돌아오지 않는다. 그저 붓 가는 데로 선을 그렸는데 다 그린 그림 속 나의 표정은 체념의 표정이다. 이게 정답이겠지.

 

여자를 그린다.

붓을 내렸다. 자꾸만 그 사람 생각이 나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감정이 올라와 이성을 마비시킨다. 제법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을 잡고 다시 붓을 들었다.

나는 그 사람과의 결혼을 꿈꿨다. 어린 나는 내가 가진 '나의 신부'의 기준에 그 사람을 맞추려고 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건 굉장한 욕심이었구나, 내 욕심이 커져 그녀의 자릴 밀어냈다. 그녀의 머리카락 중 몇 가닥을 내 쪽을 향해 그렸다. 나에게 남은 그 사람의 흔적이고 나의 추한 미련이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그녀를 상상한다. 내가 이처럼 아름다운 여자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절대 그럴 수 없겠지. 그림 속 그녀에게 웨딩드레스를 입힌다. 하얀 드레스, 마음씨 착한 그녀에게 너무나 잘 어울리는 옷이다. 여리고 긴 팔다리가 하늘거리고 도톰하고 예쁜 입술이 시원스럽게 미소 짓는다. 웃음소리가 머릿속에 울린다. 천사가 분명하다. 너무나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을 그린다.

떠나는 그 사람의 표정을 그리려 했으나, 나는 그 사람의 표정을 알지 못한다. 이별하는 순간마저 얼굴을 보지 못했고 대화조차 나누지 못했다. 그녀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나와 이별하고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지금은 무슨 얼굴로 하루를 보낼까? 아프기는 했을까? 볼 수 없으니, 알 수 없다. 알 수 없으니, 그릴 수 없다. 상상해본다. 지금의 표정은 아마 무관심과 아니면 오히려 즐거운 표정에 가까울 거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행복한 표정으로 그리지는 않았다. 그러기엔 지금의 내가 너무 불쌍하니까. 결국 아무 표정도 그리지 못했다. 이게 맞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손을 그렸다. 나의 아픔을, 가장 밝게, 무엇보다도 먼저 눈에 띄게.

 


"나는 내가 보고 있는 것을 그리지 않고
이미 본 적이 있는 것만을 그리네."

-뭉크

 

<이별> 뭉크

 

 

 

"내 병이 치유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나의 그림에는 그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교회에서처럼 경외감에 모자를 벗을 수 있는,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다."

-뭉크

 

<멜랑꼴리> 뭉크

 

뭉크의 <멜랑꼴리>에는 저 멀리 조그맣게 보이는 남녀와 수심에 잠긴 남자가 있다. 이별을 겪은 남자의 마음을 너무나도 잘 나타낸 그림이다. 뭉크는 이처럼 그림 안에서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여과 없이 표현한다. 그래서 그의 그림들을 보고 있자면, 그림동화처럼 한 장 한 장에 이야기가 녹아있는 걸 느낀다. 그의 이야기는 보는 이로 하여금 각자의 추억을 되새김질 하게 하는 힘이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을, 그림이 가진 감정의 크기가 뭉크를 오늘날 사람들에게까지 훌륭한 화가로 기억되게 하는 큰 이유이지 않을까.

나도 얼마 전 이별을 했다. 서로에게 상처만 남긴 연애였지만, 이별 후 미련이 남은 쪽은 나였기 때문에 참 찌질하게도 매달렸다. 옆에 있을 땐 그렇게 상처만 줘놓고서는 뒤늦게 매달리는 꼴이라니. 내가 생각해도 참 어이가 없다. 매번 익숙해지지 않는 이별이지만, 지금껏 나를 만나주었던 친구들에게 너무나 감사한다. 그녀들에게 행했던 나의 못난 행동과 실수를 되새기고 다시 곱씹으며 먼 훗날 만나게 될 나의 인연에게 상처 주지 않도록, 나로 인해 상처받고 슬퍼하지 않도록 항상 배우고 성숙해진다. ‘님’에서 점하나 찍어 ‘남’보다도 못한 관계가 된다는 건 가슴 시린 일이지만 고맙다고,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지금의 솔직한 심정이다.

자! 뭉크도 이별을 통해 성숙했다. 그리고 나도 성숙해져 간다. 그런 의미에 이별은 좋은 것이다. 힘껏 사랑하고 이별하자. 아파하고 찌질해지고, 부끄러워도 봤다가 미워도 하고, 화도 내 보자. 모든 것이 내 성장의 자양분이다. 힘껏 사랑하고 힘껏 이별하자.

 

 


Only in the agony of parting do we look into the depths of love.
이별의 아픔 속에서만 사랑의 깊이를 알게 된다.

-조지 앨리엇

 

 

 

박차

반가워요, 박차입니다.
뇌가 섹시해지는 것을 인생의 과업으로 삼은 애정결핍증 환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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