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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눈썹의 그녀 by. 프리다 칼로(Frida Kahlo)

15.07.17 0

 

서울 곳곳에 일자 눈썹을 가진 여인의 초상화가 내걸렸다. 미묘한 인상의 그녀는 프리다 칼로(Frida Kahlo). 그녀의 전시가 송파구 한 켠에 위치한 소마 미술관에서 2015년 9월 4일까지 개최된다. 한 번쯤 그녀의 일자 눈썹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그녀를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중학교 시절 미술 선생님께서 우연찮게 보여주신 프리다 칼로를 지금까지 잊지 못하고 있으니. 

 



그녀의 작품에는 모두 자신의 삶이 녹아있다. 불운한 사고를 당하고 거동이 불편해서 그리기 시작한 그림이 일기처럼 그녀의 일대기를 담았다. 프리다 칼로의 작품과 그녀의 인생을 접하고 나면 더욱더 그녀를 알고 싶어진다. 영화 <프리다(Frida)>는 그런 그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재구성해냈다.



-영화 <프리다>, 출처: http://www.idatapix.com/frida-movie-2002.html

 

 


영화 <프리다>를 관람한 직후의 느낌은 강렬 그 자체였다. 또한, 그녀에게서 그림이 곧 예술이며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가 프리다의 전부였음을 알 수 있었다. 앞서 말했듯, 그녀는 6살 때 소아마비로 오른쪽 다리가 쇠약해서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두 팔이라도 사용할 수 있음에 감사해하며 한 폭의 그림을 하루 하루 그려나갔다. 프리다는 그녀와 가까이 있는 가족을 그리거나 자신의 모습을 재현하면서 그림에 비친 모습을 캔버스로 옮겨 나갔다.



- <두명의 칼로> 1939


-<우주와 지구, 그리고 멕시코에서 나와 디에고, 솔로틀이 하는 사랑의 포옹> 1949

 



그림으로 자신의 일생을 채워나가던 프리다는 몸의 상태가 호전되면서 당시 최고의 화가인 디에고를 찾아가 자신의 작품을 평가해주길 요구한다. 당돌한 프리다의 요구에 디에고는 어이 없어 하면서도 그런 그녀의 모습에 매료된다. 이 사건은 프리다에게 하나의 계기가 됐을까, 아니면 또 다른 불행의 시작이었을까. 이제와 생각해보면 프리다와 디에고의 만남은 서로에게 축복이자 가장 큰 불행이었다.


-<물이 나에게 준 것> 1938


-<뿌리> 1943

 

 


수 차례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하는 그들의 굴레에서 둘은 서로에게 가장 큰 존재였다. 살아 생전 디에고에 관해 언급했던 그녀의 이야기 에서도 “디에고는 내게 모든 것이었다. 나의 아이, 나의 애인, 나의 우주”라고 말했다. 생물학적으로 임신이 어렵고 그것이 곧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일이지만, 프리다는 수없이 디에고의 아이를 갈망하면서 유산을 하길 반복한다. 결국 임신에 이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서 프리다는 유산된 아이의 모습을 그림으로 출산했다. 

-<헨리 포트 병원> 1932

 

 

 

그림이 그녀의 전부이기도 했지만, 그림을 제외한 모든 것은 디에고 였다. 그녀는 디에고와 함께하면서 하루하루 롤러코스터를 타는듯한 감정 기복을 겪었고, 그렇게 받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더욱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이런 과정을 통해 완성된 한 폭 한 폭의 그림이 지금 우리가 기억하는 프리다가 됐다. 그리고 자신의 당당한 여성성과 섹슈얼리티를 자화상에 담아내면서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한 일물로 기억하고 평가되고 있다.


-<나의 탄생> 1932

-<상처 입은 사슴> 1946

 



어쩐지 괴기한 그림과 그녀의 기구한 인생을 들여다 보면 ‘불행하다.’는 생각과 동시에 ‘어쩔 수 없는 운명이거나 필연일 것이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불행에 낙담하지 않고 되레 당당하게 자신의 하루하루를 세세하게 그려나갔다. 그리고 그녀의 하루는 프리다 칼로를 대표하는 작품이 됐다. 그녀에게 그림은 이루지 못한 자신을 담은 또 다른 분신이자 간직하고 싶은 순간들일 것이다.


-<부서진 기둥> 1944

 

 

배앓이

꿈을 꿀 수 있다면, 이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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