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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미술가들을 위해, 조르조 바사리 (Giorgio Vasari)

15.04.03 0

 

 

내게 그림 그리는 재능이 없음을 깨달은 건 그림으로 받은 상이 유치원 이후로 전무하다는 사실과 동양화 수업에서 강사가 한숨을 내쉬었을 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사그러들 줄을 몰랐다. 그렇게 방향을 살짝 틀어 선택한 길은 LOL(리그 오브 레전드)의 캐릭터 ‘소나’처럼 예술을 하는 모든 이들을 따라다니며 힐(heal)해주고 서포트(support)하는 것이었다. 부르고, 연주하고, 그리는 일보다 듣고, 읽고, 쓰고, 느끼는 데 더 자신 있었기 때문이다.


-<자화상 (Self-portrait)> 조르조 바사리, 1567, 이하 사진 출처는 모두 : http://en.wikipedia.org/wiki/Giorgio_Vasari

 




아주 오래 전, 벌써 이런 재능을 깨닫고 실행에 옮긴 사람이 있다. 바로 '미술사의 아버지'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 1511~1574)다. 이탈리아 아레초 출신의 이 남자는 사실 예술가로서 영 소질이 없는 이는 아니었다. 열 여섯 살 때 피렌체에서 미술공부를 시작한 바사리는 곧 미켈란젤로의 제자이자 친구가 되어 금세 실력자 자리에 올랐다. 시대와 장소가 너무나도 완벽했던 환경에서 바사리는 곧 당대의 권력자 코시모 1세(Cosimo I de' Medici 1519–1574)의 눈에 들었고 본인 스스로도 라파엘로의 작품과 고대 로마의 유적들, 그리고 동시대에 활동했던 예술가들의 작품을 끊임없이 공부하며 실력자로서의 자리를 지켰다. 특히, ‘메디치 가문을 위해 일한다’는 것은 예술가로서 이미 최고로 인정받았다는 뜻이었다. 우피치 궁과 베키오 궁에는 이미 바사리의 손길로 가득했다. 또한, 피렌체의 대표 건축물인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Florence Cathedral)과 본인의 이름을 딴 바사리 화랑, 더 나아가 로마 바티칸의 프레스코화에 이르기까지 바사리 본인이 곧 피렌체와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조각가, 건축가였다.

- 우측의 바사리 회랑, 좌측의 우피치 회랑 모두 바사리의 작품이다. 바사리는 회화뿐 아니라 건축에도 상당한 실력을 가진 진정한 ‘르네상스인’ 이었다.

 

- (좌)<수태고지 (The Annunciation)>, 1564-1567, 루브르 박물관 소장, (우)<예언자 엘리야 (The Prophet Elisha)> 1566, 우피치 갤러리 소장

 

 


그러나 오늘날 바사리가 미술사의 아버지로서 인정받는 것은 바로 <미술가 열전 “Le Vite” (The Lives of the Most Excellent Painters, Sculptors, and Architects)>의 집필자기 때문이다. 그가 20여 년간에 걸쳐 이탈리아 전역을 돌아다니며 수집한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 200인의 기록은 미술계 최초의 자취이자 미술사(美術史)와 미술사가(美術史家)를 탄생시킨 '기원'이라고 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로마 조각의 아름다움을 찬양했던 빙켈만(Johann Joachim Winckelmann, 1717~1768), <서양미술사>하면 자동으로 따라오는 이름인 곰 브리치(Ernst Gombrich, 1909~2001)에 이르기까지. 미술사에서 큰 족적을 남긴 미술사가들 역시 바사리의 뿌리 아래 태어날 수 있던 것이다.

 

 


-<미술가 열전> 1550년 초판의 표지. 일명 ‘Vite’ 라고 불린다.

 

 

 

예술가로서의 자질도 이미 넘치도록 가지고 있었지만 바사리가 가진 또 하나의 재능은 바로 수집하고 기록하며 공부하는 지적인 면모였다. 이를 십분 발휘해 집필한 <미술가 열전>은 최초로 고딕, 르네상스, 매너리즘 같은 시대적 구분과 개념을 정리해놓았다는 점,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전기적 방식으로 나열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예술 역시 체계적으로 기록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바사리 스스로 유명한 예술가로서 다른 작가들과 직간접적으로 교류할 수 있었다는 것도 <미술가 열전>이 오늘날까지 그 가치를 유지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바사리가 오늘날 ‘미술사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데는 바로 그가 예술가와 예술, 그 자체를 너무나도 아끼고 사랑했기 때문이다. 바사리의 미술사랑을 보여주는 일화로 2012년 발견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앙기아리 전투 (The Battle of Anghiari)>가 바사리의 <마르치아노 전투 (Battle of Marciano in Val di Chiana)> 바로 밑에 숨겨져 있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차마 다 빈치의 그림을 지워버릴 수 없었던 바사리는 그 위에 조심스레 덧칠한 자신의 그림 속에 '찾으면 보일 것이다 (Cerca trova)'라는 메시지를 남겨놓았다. 비록 원작을 바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이로써 다 빈치의 작품이 숨어있는 것이 세간에 알려지게 됐다. 이는 미술사가가 가져야 할 예술품에 대한 존중과 사랑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 바사리가 제작한 베키오 궁 대연회장의 벽화들. 그리고 이 뒤에 다 빈치의 작품이 숨겨져 있다는 이야기인데, 바사리의 작품 역시도 매우 가치 있는 르네상스 문화유산이기에 이탈리아 문화재청에서는 <앙기아리 전투>연구 허가를 보류하고 있다고 한다. 

 

 

- 루벤스가 보고 모사한 <앙기아리 전투>의 모습. 실제 작품 보존이 얼마나 되어있는지 확실치 않은 상황이기에 우선은 바사리의 작품을 더 이상 훼손하지 않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다시 한 번 예술을 대하는 자세를 생각해본다. 그렇게 치열하게 아끼고 연구할 수 있는 지. 그리고 이 치열함이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을 지. 비록 나의 손으로 그리고 조각하고 이어 붙일 순 없더라도 수많은 창조자들에게서 태어난 하나 하나의 생명들을 최선을 다 해 지켜보고 닦아주어야겠다. 그러면 그것이 곧 나의 '창조의 예술'이 될 테니. 그래서, 오늘도 스스로를 깎아내는 심정으로 작품을 만들어내는 여러분들에게 무한한 박수를 보낸다.

 

 

김월

나의 글이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영감이 되길 바랍니다.
예술과 친근한 세상을 만들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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