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욕(性慾) 야릇한 부끄러움

15.04.24 2

 

 

인간을 동물로서 존재하게 하는 가장 원초적인 본능이 있다. 종족번식의 위대한 과업을 진행하라는 정언명령! 인간세상을 굴리는 가장 강력한 힘이지만 표현하기에는 왠지 모르게 부끄러운, ‘성욕(性慾)’이다.

 

늦은 밤, 유흥가로 나왔다. 지인들과 소량의 알콜을 섭취한 뒤 다시 나온 거리는 요지경, 스치는 여자들의 뒷모습에 시선이 냅다 꽂혀 박힌다. 얼씨구, 예쁜 엉덩이다. 왼쪽으로 한번, 오른쪽으로 한번, 살랑살랑 흔들리는 뽄새가 꽤나 야릇하다. 나는 설레는 마음에 눈으로 취한다. “앞에 여자 봐요! 엉덩이 개 쩌ㄹ..” 아차, 평소 친분이 두텁지 않은 누나에게 무심코 내뱉어버렸다. 나를 보는 눈이 동그랗게 커지더니 이내 장난기를 머금은 눈으로 변한다. “동생, 그렇게 안 봤는데 변태네?”



부끄러웠다. 나는 그저 나의 원초적인 본능에 충실했을 뿐인데! 태초에 에덴동산이 있었다. 현 인류의 조상이라는 아담과 이브는 헐벗은 채로 덜렁거리며 풀밭을 뛰어다녔을 테고, 자신들이 가진 성적인 아름다움과 욕구 앞에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었을 것이다. 창조주가 우리를 만든 설계도 안에 ‘성에 대한 부끄러움’은 들어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브의 사과가 문제구나! 우리가 부끄러움으로 순수한 본능을 감추기 시작한 것이, 아니다! 세상이 문제다!

 

 
-<다이어트 대 실패> YOURA, 2015



 

그림. 하릴 없이 페이스 북 스크롤을 긁어내리던 중 그림을 발견했다. 남자의 본능을 자극한 죄로 강제 연행한 이 그림은 철저히 내 취향이다. 파스텔 톤의 연한 색감이 예쁘다, 선의 강약이 인체의 미를 잘 표현 한다 따위의 예쁜 변명도 많겠지만, 나는 그림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어려운 미학용어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변명하지 않겠다, 발칙하다! <다이어트 대 실패>라는 제목을 가지고는 응큼하게 속살을 반쯤이나 드러내놓고 의도하지 않은 노출이라는 듯 부끄러워하는 표정이라니! 심지어 발가락 끝마저 야릇하게 부끄럽다. 그런데, 여자는 왜 부끄러울까? 다이어트에 실패해서? 엉덩이의 크기 때문에 줄어든 치마의 길이 때문에?

 


- Araki Nobuyoshi

 

 

여기 한 장의 사진이 더 있다. 사진작가 아라키의 작품이다. 여자가 깨진 수박을 먹고 있는, 단순하지만 야한 사진. 아라키의 작품에는 서정적이고 시 같은 사진과 자극적인 포르노그래피가 섞여있다. 그의 전시는 일상의 사진과 성적인 사진들을 반복하는데, 서로 단절되어 보이는 이미지들을 차분하게 바라보고 있으면, 이내 폭력적인 성(性)은 희미해지고 서정적이어야 할 일상은 한없이 음란해진다. 그의 사진은 우리의 하루가 함축성을 가진 성(性)적 코드들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한다.

 

 

 

너의 의식은 숨겨진 성욕과 무의식의 산물이다.
-Freud, Sigmund

 

 


아라키의 사진을 통해 우리의 일상과 성(性)의 밀착성을 이야기했다. 다시 부끄러워하는 여자의 그림 이야기로 돌아가자. 그녀가 부끄러운 이유, 다이어트를 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모두 그 바탕에 ‘남성’이 있다. 남성의 존재와 그로 인한 성욕의 발현은 곧 아름다움을 향한 맹목적인 추종을 이끌어낸다. 자, 이제 그녀는 다이어트를 시작한다!


여자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성이 능력을 높이려 아등바등하는 이유 또한 성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원시사회에는 의식주의 거의 모든 부분이 육체적인 노동의 산물이었다. 당연히 신체적 능력이 탁월할수록 생존에 유리했고, 힘이 센 남성들이 모든 여성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자, 현대사회는 자본주의 사회다. 능력은 곧 돈이고, 돈이 많은 사람이 생존에 유리하다. 그런 이유로 돈(능력)이 많은 남성은 많은 여성들의 선망의 대상이 된다. 이를 종족번식의 측면에서 해석하면, 능력이 높은 남성이 더 아름다운 여성과 만날 수 있음과 동시에 우수한 유전자를 2세에게 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이제 남성이 능력을 높이려 노력하는 것 또한 성욕의 발현이라는 말에 약간은 동의할 수 있겠지?



쉽게 말하자면 이거다. 인간사의 꽤나 많은 부분이 ‘성’이라는 본능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이는 굉장히 순수한 본능이라는 것! 그러므로 자신의 성욕과 성적 취향 표현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니가 고통 받는 표정이 가장 아름다운 건 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
가까이와. 예뻐해 줄게. - 이하민, 2014

 

 

 

여기 자신의 성욕을 아주 대범하게 싸질러 내놓는 젊은 처자의 그림이 있다. 멋있지? 본디 예술이란 (내가 감히 어찌 예술을 논하겠냐마는) 보는 사람들에게 ‘이 작품은 이렇게 해석되어야해!’와 같은 정해진 결론을 내놓기보다 그저 작가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툭’ 하고 던져놓는 것이라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아주 훌륭하다.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 별다른 고민도, 생각도 필요 없으니까. 그녀는 일말의 부끄럼 없이 아주 원초적인 동물로서의 인간을 말하고 있다.


자, 성욕은 이렇게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표현하자. 언젠가는 이 아름다운 본능이 부끄러움으로부터 해방될 세상이 올 것을 기대하며.


ps. 나는 엉덩이와 다리가 예쁜 여자를 미친놈처럼 좋아한다.

 

 

 

 

박차

반가워요, 박차입니다.
뇌가 섹시해지는 것을 인생의 과업으로 삼은 애정결핍증 환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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