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 아트(Pop-art) : 당신은 뉴스를 믿습니까?

15.04.29 2

‘사람이 뉴스를 봐야지 뉴스를..’ 분명 코까지 골며 잠든 걸 확인하고 리모콘을 스틸하려던 찰나, 아버지는 어느 새 뉴스채널을 고정한다. ‘저 놈들 저거 다 사기꾼이야!’ ‘허이! 거 참!’ 등 혀 차는 소리와 나라 디스가 난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밤 아홉 시, 우리집 티비에서는 뉴스가 흘러 나온다. 그래서 항상 맞는 말인줄 알았다. 뉴스에서 하는 말이 사실이고 그게 곧 진리이니라.

 

<r(u/a)n> 이다미, 매스컴이 의도한 방향으로 사건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모습을 나타냈다, 출처 : http://www.notefolio.net/dameeyi/10462

그런데 뉴스 너머의 ‘세상’을 발견하는 날이 와 버렸다. 뉴스의 내용이 얼마든지 바뀌고, 변형되며 심지어는 새로운 각본을 창조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비단 TV 문제만이 아니다.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매스미디어는 오히려 ‘레디 메이드’에 가까웠다. 최근 우리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을 다양한 루트로 접하며 생각한다. 보이는 것만이 진실은 아니구나.


“29만원이 전 재산”이라는 그 분은 ‘3S정책’을 펼쳤다. 스포츠(sport), 스크린(screen), 섹스(sex). 정권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대표적인 우민화(愚民化) 정책이었다. 실제로 1981년, 여의도에서 대규모로 열린 문화축제 <국풍81>은 “국학에 대한 관심 고취”라는 어마어마한 취지를 내세웠으나, 실은 518 민주화 운동의 여파를 잠재우기 위한 의도에 불과했다.

 

국풍81 스케치, 출처: e-영상역사관

 

진실을 감추고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일은 생각보다 쉽다. 사실, 이런 방식은 미국에서 이미 진행됐던 이야기였다. 영국이 대중문화, 소비문화를 보수적인 영국사회를 깨우기 위한 긍정적인 방법이라 생각했던 반면, 미국은 점차 물질적으로 변해가는 사회를 비판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시대에서 태어난 장르가 ‘팝 아트(pop-art)’다.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 초에 전성기를 맞으며 등장한 이 사조는 한 남자에 의해 어마어마한 네임밸류를 가지게 된다. 영원한 파티 맨, 앤디 워홀(Andy Warhol, 1928~1987)이 그 주인공이다.

 

<Marilyn Diptych> 앤디워홀, 1962, 출처 : http://www.tate.org.uk/art/artworks/warhol-marilyn-diptych-t03093

 

한 쪽은 채색이 된, 다른 한 쪽은 흑백의 마릴린 먼로다. 작품은 마릴린 먼로가 계속해서 대중에게 노출되면서 ‘슈퍼스타’로 거듭나는 과정을 나타냈다. 이와 비슷하게 매체를 통해 메시지를 ‘보이는’ 방식은 사람들에게 자연스레 그것을 진리로 믿게 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캠벨 수프 캔> 출처 : http://www.sportsseoulusa.com

 

<Orange Car Crash Fourteen Times> 1963, 출처 : http://carcrashek.blogspot.kr

 

같은 예로 캠벨 수프 캔을 무한히 인쇄해 그 이미지를 대중에게 각인시킨 작품도 훌륭한 광고전략 중 하나다. 사고로 뒤집힌 자동차와 그 안의 사고 희생자가 촬영된 신문 사진을 실크스크린 한 <Orange Car Crush> 역시 반복되는 이미지(=사건)를 통해 점차 ‘사고’와 ‘희생자’에 무감각해지는 대중의 모습을 비판했다. 워홀이 유명해진 데는 그가 기존 작가들과 달리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이미지를 작품에 차용했다는 데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 안에 비판과 풍자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러한 그의 작업방식은 워홀이 아직까지도 (본인이 바랬던 대로) 비싸게 팔리는 유명작가로 거듭나는데 일조했다. 

 

<Red Race Riots> 1964, 출처 : https://www.studyblue.com

 

<Race Riots> 속 주인공은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로 잘 알려진 마틴 루터 킹이다. 워홀은 그가 인종차별 시위 중 소방호스와 경찰견에게 무자비하게 진압당하는 사진을 작품의 소재로 삼았다. 그는 이를 통해 언론의 과도한 옐로 저널리즘을 비판하고 대중들이 언론에 의한 선정적 자극에 ‘익숙해지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Flash, LA Times> Ed Ruscha, 1963,
출처 http://www.boumbang.com/ed-ruscha/

 

그런가 하면 아예 대놓고 언론을 비꼬는 작품도 있다. 에드 루샤(Edward Joseph Ruscha, 1937~)의 작품은 특종(Flash)이라고 대서특필해 시각적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그러나 정작 신문의 내용은 만화에 불과하며 그마저 뒤집혀 있어 제대로 보기도 힘들다. 제목은 자극적으로 뽑아놓고 막상 클릭해보면 별 내용도 아닌(예를 들면 ‘드러나버린 여배우의 속살’ 이래서 눌러보면 신발이 벗겨졌다던가 하는, 이 정도면 창의력 대장이다) 아마 여러 번 경험해봤을 언론의 ‘낚시질’을 꼬집는 것으로, 당대 옐로 저널리즘을 대놓고 비판하는 것이다. 

 

<James Dean, Lucky Strike> 레이 존슨, 1957, 출처: http://arttattler.com/archiveripitup.html

 

그런가 하면 레이 존슨(Ray Johnson 1927~1995)의 <James Dean, Lucky Strike>은 워홀의 마릴린 먼로처럼 아예 슈퍼스타를 전면에 내세웠다. 팝 아트는 당대 대중문화의 아이콘을 작품 소재로 차용하는 것이 특징인데 이번에는 ‘반항아’ 이미지로 알려진 제임스 딘(James Dean)이 주인공이다. 담배를 물고 있는 제임스 딘에게 ‘럭키 스트라이크 스티커’를 붙여 마치 미키마우스처럼 만드는 것도 모자라 가슴 털을 연상시키는 붓 터치를 더했다. 누구나 한번쯤 해봤을 ‘잡지 속 연예인에게 낙서하기’인 것이다. 레이 존슨은 우리가 알고 있는 슈퍼스타는 그저 대중매체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을 상기시켰다.

 

<알통 크기가 정치 신념 좌우> mbc 뉴스출처 : https://mirror.enha.kr/wiki

 

<잔인한 게임, 난폭해진 아이들… 실제 폭력부른다>, 출처 : https://mirror.enha.kr/wiki

 

이 외에도 팝 아트는 대중매체와 언론이 더 이상 담론의 공간, 진리의 공간이 아니라 단지 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추악한 사실을 감추려는 공간임을 끊임없이 어필하고 있다. 채널 어디를 돌려봐도 이게 정말 ‘뉴스가 맞는지’ 의심될 정도의 보도가 난무한다. 뉴스에서는 지난 밤 물대포가 점령했던 광화문은 싹 사라지고 ‘기도 안 차는 내용’들이 앵커의 입을 통해 터져 나오고 있다. 인터넷은 이미 ‘이게 팩트다’를 외치는 어그로꾼으로 가득하다. 이쯤 되면 대체 진실은 어디에 있는 건지, 무엇을 믿어야 하는 건지 혼란스럽다. 그러나 이런 ‘혼돈의 카오스’는 이미 오래 전부터 존재했다. 그렇다면 팝 아트 아티스트처럼 대놓고 내가 취해야 할 자세를 정립하는 것도 괜찮아 보인다.

“정신-차렷!”

 

김월

나의 글이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영감이 되길 바랍니다.
예술과 친근한 세상을 만들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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