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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li, Van, Picasso> 3 - 1. 스트라이프 성애자, 파블로 피카소

14.08.13 0

* 지금 내 옷장에 스트라이프 무늬의 옷이 한 개도 없다. 하는 독자는 '뒤로' 버튼을 클릭해도 좋다. 단언컨대 당신은 지금 이 글을 끝까지 읽게 될 것이다.

 

인터넷에서 '난감한 상황' 이라는 제목을 달고 올라오는 사진이 있다. 대부분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발견한, 혹은 유니폼이 아닌 지 의심 될 정도로 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의 모습이다.

 

 

사진 속의 여대생들이 혹시 본인은 아닌 지 잘 살펴 보라. 댓글에는 'ㅋㅋㅋ' 뿐만 아니라 '사실 나도 저거 가지고 있음.' 같은 반응이 의외로 많다. “아, 나는 저 옷은 사지 말아야지!” 하며 간격과 색상만 다른 스트라이프 원피스를 개어 정리하던 중 문득 어떤 남자가 스친다. 바로 ‘스트라이프 성애자’ 파블로 피카소다.

 

 


피카소의 사진이라고 하면 가장 많이 떠올리는 모습이다. 빵이 마치 자신의 손 인양 천연덕스럽게 앉아있는 피카소의 눈에 장난기가 가득하다. 내친 김에 피카소의 사진을 더 찾아봤다. 그런데 여기도 스트라이프. 저기도 스트라이프다. 스트라이프 유행의 선두주자가 바로 여기 계셨다.

 

 


하필 왜 스트라이프였을까? 스트라이프 무늬는 이슬람 문화권에서 시작한다. 이슬람 교도들은 이 옷을 입고 중세 유럽을 찾았다. 십자군 실패와 동방 침략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던 유럽인들은 당연히 이 무늬를 꺼렸다. 그래서 스트라이프는 이교도의 표식으로써 죄수나 집시, 매춘부같은 사회 하층민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성공하며 신교도들은 스트라이프를 기존 가톨릭에 대한 반항의 표식으로 역이용했다. 신생국가 미국은 스트라이프를 국기에 그려 넣었고 그제서야 일자무늬는 세련되고, 깔끔하며, '다른 것과 구별되는 독특함' 이라는 수식어를 획득했다.

'식별 가능함' 이라는 속성은 스트라이프 대 유행의 서막을 알렸다! 19세기 프랑스는 해군 제복의 무늬로 쉽게 눈에 띄는 스트라이프를 택했고 그때부터 스트라이프는 바다 하면 떠오르는 자유, 여행, 낭만의 이미지와 함께 '마린 룩'의 대표가 됐다.

 


자유분방함과 낭만, 모험. 이러한 속성을 가진 사람은 대개 예술을 하는 부류에서 찾아보기 쉽다. 피카소가 스트라이프 성애자가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피카소는 자그마치 7명의 여자와 결혼 혹은 동거를 하며(게다가 한 명을 빼고 모두 피카소와의 이별을 견디지 못했다!)  한 사람에게 정착하지 못했다. 정착해서 안정된 삶을 사는 것은 예술가이자 '태양의 해안' 이라고 불리는 스페인 말라가(Malaga)에서 태어난, 지극히 남유럽의 기질인 피카소에게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나는 8살 때 이미 라파엘로처럼 그렸다' 라고 스스로 말할 정도로 (거만한 예술가의 허풍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는 피카소의 '첫 영성체' 라는 그림을 찾아보길 바란다. 중학교 2학년의 피카소 군이 그린 그림이다.) 천재였던 피카소는 큐비즘(입체파)과 콜라주를 도입함으로써 주춤했던 현대미술에 심폐소생술을 시도했다. 그리고 멋지게 성공했다.

 

 

< Bather With Beach Ball> Picasso, 1928


돈, 명예 그리고 여자까지 모두 얻은 피카소는 결국 어릴 적 뛰놀던 말라가의 바닷가로 회귀한다. 대성공을 거둔 예술가가 된 만년의 피카소 작품에는 어딘가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평생을 통틀어 피카소가 가장 자유롭게 뛰놀았던 시절은 아마 유년기였을 것이다. 그리고 스트라이프 무늬는 그토록 자유를 갈망했던 그에게 걸맞은 아이템이었을 테다. 이렇게 놓고 보니 피카소의 스트라이프 사랑이 수긍이 된다.



옷장에 하나쯤 있으면 좋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세련된 아이템이 스트라이프라고들 말하지만 글쎄, 한번쯤 생각해보길 바란다. 그게 또 얼핏 보면.. 카운트를 세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을 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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