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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자들을 위한 안내서 :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

15.09.04 0

-영드 <한니발> 에서 프랜시스 달라하이드의 등장 신
출처: http://geekandsundry.com/


- 윌리엄 블레이크의 〈위대한 붉은 용과 태양을 입은 여자(The Great Red Dragon and the Woman Clothed in Sun)〉에게 경배하는 달라하이드 
출처: http://www.liveforfilms.com/

 



영화 역사상 가장 소름 끼치고 악랄하며, 지능까지 높은 악역을 꼽을 때 꼭 꼽히는 이가 바로 <양들의 침묵> 속 한니발 렉터 박사다. 안소니 홉킨스(Anthony Hopkins)가 렉터 박사의 역할을 맡았던 이 영화는 1992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며 스릴러물의 바이블이 되었다. 그리고 2013년 미국 NBC에서는 이 한니발 시리즈를 리메이크한 <한니발(Hannibal)>을 방영하기 시작했다. 결코 높지 않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매니아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은 이 드라마는 최근 시즌 3 방영을 시작했는데, 식인마라는 별명에 걸맞게 예의 없는 자들을 '요리해 먹는' 한니발의 열렬한 추종자이자 그와 동급의 악마가 되길 원했던 프랜시스 달라하이드(Francis Dolarhyde)가 시즌의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그는 피해자의 눈을 물어뜯고 죽이는 살인방법으로 미디어로부터 이빨요정(The Tooth Fairy, 본인은 레드 드래곤으로 불리길 원했기 때문에 이 별명을 보고 조금 분개했다.)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그의 등에는 평소 우리가 보던 어깨형님들의 용들과는 조금 다른 차원의 용이 새겨져 있는데, 바로 오늘의 이야기의 주인공인 영국 화가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 1757~1827)의 위대한 붉은 용(The Great Red Dragon)이다. 

 

<위대한 붉은 용과 태양을 입은 여자 (The Great Red Dragon and the Woman Clothed in Sun)>윌리엄 블레이크, 1805, 출처: http://www.wikiart.org


레드 드래곤이란 성경의 맨 마지막에 등장하는 예언서인 요한계시록(요한묵시록)에 등장하는 붉은 용이다. 인간의 7대 죄악(교만, 질투, 탐욕, 식탐, 분노, 나태, 색욕)을 상징하는 7개의 머리가 7개, 뿔이 10개 달린 이 용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데, 사악한 괴물들을 이끌며 인간을 타락시키고 괴롭히는 존재다. 그야말로 악의 근원인 셈이다. 이러한 용의 이미지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에게 강하고 두려운 존재로 굳어져왔다. 윌리엄 블레이크는 이 용을 차용해 <붉은 용과 태양을 입은 여인>을 그렸는데, 프랜시스 달라하이드는 본인이 여인을 제압하는 레드 드래곤처럼 강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열망과 함께 연쇄살인마가 됐다.

 


 

- 윌리엄 블레이크의 초상화.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William_Blake

 
18세기 후반 영국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윌리엄 블레이크는 낭만주의와 신비주의, 그리고 그로테스크 표현에서 대표격인 작가다. 나폴레옹의 혁명이 실패한 이후 유럽에 감돌았던 허무와 공허, 상실감(흥미로운 것은 이 장면은 몇 세기가 지나 다시 한번 정확히 같은 모습으로 반복된다는 것이다. 2차 대전이 끝나고 예술가들이 꿈과 무의식이라는 초현실의 세계로 도피한 것을 떠올려 보라)은 이 시기의 사람들에게 이성 대신 감성, 객관보다 주관, 의식적 정신보다 감정과 본능에 집중하도록 만들었다. 무엇보다 현실이 시궁창인 상황에서 사람들은 과거로의 도피를 택했는데, 세상에 대한 환멸과 함께 기사도와 기독교 정신의 회귀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기서 발생한 사조가 바로 '낭만주의'다. 인간의 깊은 내면을 보고자 했던 낭만주의 예술가들은 선(線) 대신 색(色)을 선택했다. 감정과 감각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으로써 색은 회화에 있어 최적의 수단으로 여겨졌다. 바로 직전의 시대에서 예술을 지배했던 신고전주의가 이성, 합리, 완벽함을 표현하기 위해 엄격한 선의 표현을 중시했던 것과는 완전히 반대의 길을 걷는 것이다. 인간이 가진 감정의 극한까지 표현하고자 했던 낭만주의 예술가 중 윌리엄 블레이크는 특히 환상적이고 신비주의적인 화풍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춤추는 요정들과 오베론, 티타니아와 퍽 (Oberon, Titania and Puck with Fairies Dancing)>, 1786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William_Blake


‘복합적 존재인 인간의 삶’을 인식하고자 했던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는 블레이크에게 무한한 영감을 주는 근원이었을 것이다. 무의식과 잠재의식에 대한 탐구가 시작되었던 당대에 블레이크가 그린 <한 여름밤의 꿈>속의 환상적인 세계는 그의 작품 중 가장 곱고 섬세한 필치가 돋보이는 작품일뿐만 아니라 낭만주의자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추구하는지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느부갓네살 (Nebuchadnezzar)> 1975
출처: http://www.artbible.info/art/large/623.html


성경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인 바빌론의 느부갓네살(네부카드네자르)2세 왕을 제목으로 내걸었지만, 실제 그림 속에 그려진 인물은 한 왕국의 위대한 왕이라기 보다 정글 속에 숨어 사는 원시적인 야수에 가깝다. 블레이크는 이 작품을 통해 원죄 이후 동물적 상태로 전락한 인간을 묘사하고자 했다. 극단적 공포와 절망을 다루고자 하는 블레이크의 화풍이 제대로 드러나는 것이다.

 

 


- 단테의 <신곡> 삽화 중 <연인들의 회오리 The Lovers' Whirlwind>, 1824~1827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William_Blake


고대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와 함께 지옥을 여행하던 중 죄를 범한 자들, 즉 불륜과 자유연애를 범한(?) 자들이 회오리를 이루며 지옥에 떨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장면을 심판자(혹은 절대자)가 고심, 후회하는 듯한 장면이다. 종교 그 자체는 긍정했으나 지나치게 구조화되고 교리화된 교회를 경멸했던 블레이크는 이 심판자에게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다. 블레이크에게 인간의 감정은 억압될 것이 아닌, 자유롭게 표현되어야 할 부분이었다. 때문에 과연 이 지옥으로의 심판이 옳은 것인 것인지, 그림 속 심판자인 블레이크는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아이작 뉴턴 (Blake's Newton)>, 1795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William_Blake


전 시대의 대표적 가치였던 합리적 이성은 블레이크에게 인간을 영혼의 세계에서 떼놓는 악의 뿌리에 불과했다. 충동과 감각, 느낌과 인상이야말로 블레이크가 주장한 최고의 가치였다. 때문에 블레이크에게 뉴턴은 인들의 혼을 수학과 과학으로 쏙 빼놓은 범죄자에 불과했다.

 

 

 

<Portrait of William Blake> Thomas Phillips, 1805 
출처: http://www.bongkim.com/bongkim

 
상당히 격렬한 사상과 그것을 그대로 반영한 작품 때문인지 블레이크는 살아생전 정신병자 혹은 미친놈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실제로 네 살 무렵부터 환영을 보기 시작했다고 하며 평생을 현실과 환상 그 중간 어드메에서 살았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지금 그에게 내려지는 평가는 당대와 다르다. 인간의 아주 깊은 곳에 숨겨진 내면과 상상력을 꾸밈없이 그대로 표현해냈다는 점에서 낭만주의의 선구자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그가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사는 동안, 현실의 그는 너무나도 비참했다. 그러나 그를 ‘미친 꿈’ 속에 살게 해 준 것은 당대의 낭만주의자와 후대의 사람들이다. 어찌 보면 현실부적응자에 불과한 블레이크지만, 그가 상상하고 구축해 간 세계는 오늘날까지 또 다른 미친 자들에게 새로운 꿈을 꾸게 하는 것이다. 자신만의 세계에서 무럭무럭 자라나는 꿈을 먹고 창작까지 해내는 것은 블레이크를 따르는 좋은 예가 될 테다. 그러나 여기에도 부작용은 있다. 철학가 헤겔의 결정론과 니체의 초월론을 지나치게 오해한 탓에 인류 최악의 실수가 된 히틀러를 떠올리면 된다. 생각이라는 것은 정말로 정말로 위험한 것이어서 그야말로 사람을 헤까닥 돌게 한다. 혼자 멀쩡한 예술작품을 이렇게 극한의 단계로 오해해버린 탓에 연쇄살인마가 되어버린 ‘나쁘게 미친 놈’ 프랜시스 달라하이드는 과연 윌리엄 블레이크에게 용서라도 빌 수 있을 지. 그러고 보면 옛 어른들 말씀 틀린 게 하나도 없다. 미쳐도, 곱게 미치라고!

 

김월

나의 글이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영감이 되길 바랍니다.
예술과 친근한 세상을 만들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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