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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북 리뷰] 서적의 시퀀스

15.11.20 9


크리에이티브 네트워크 <노트폴리오 매거진>에서는 디자인에 관한 다양한 시선을 비추기 위해 디자인 북 리뷰를 기획했습니다. 책을 통해 낯선 디자인을, 세상을 보는 다양한 시선을 접해보세요.

 

 

# 03. 편집자를 위한 북디자인 

글: 김재웃

 


과연 종이로 된 책이 사라질까? 기술이 발전하면서 세상의 대부분이 디지털화 됐고, 그 흐름을 따라 종이 책 역시 E-book화 되어 쉽고 싸게 보급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신문·출판산업을 사양산업으로 치부하고 있고 그에 대한 대안으로 디지털 콘텐츠를 꼽는다. 그러나 종이 책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책은 그저 종이에 인쇄된 잉크 자국들의 모음집이 아니다. 책은 인간의 본능과 감성이 끊임 없이 축적된,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발전할 인류의 공생물(共生物)이기 때문이다. 과장을 조금 더 보태자면, 종이 책이 사라진다는 건 곧 우리가 살고 있는 건축물이 사라지는 것과 같은 의미일 것이다.



“독서는 정보 입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보다 확장된 경험이고, 고유한 경험이며, 따라서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경험이다.
책의 물징성을 오감으로 느끼는 독서는 디지털 기술에 의해 대체할 수 없는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지하철이나 카페에 앉아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는 일,
인상적인 글귀에 밑줄을 긋거나 페이지를 접는 행위,
다 읽은 책을 뿌듯함과 함께 책장에 꽂아 놓는 일,
그리고 꼽힌 책 등을 보며 간간이 내용을 떠올리는 일이 어떻게 무의미한 낭비일 수 있겠는가?”

-오창섭, “'책맹'들의 착각” (경향신문, 2014.10.29자) 

 

 

책은 건축과 닮았다.


책은 2D로 된 종이가 겹겹이 쌓여 3D가 된 모습이다. 종이가 쌓이면 자연히 그 안에 구조가 형성되고 동시에 책 속에 다양한 공간이 생긴다. 각 공간은 그에 맞는 내용으로 채워지고 출판되어 독자들을 맞이한다. 독자는 책을 집어 들어 공간의 무게를 느낀다. 그리고 종이에 깃든 냄새를 맡는다. 독자는 이윽고 시선을 책에 둔 채 종이의 대지 위를 한 걷는다. 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서적의 시퀀스들이 생긴다. 책과 마주한 독자는 시퀀스에 따라 자신만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분명 다 똑같은 책인데 똑같이 느끼는 사람이 없다. 이는 한 사람이 마주한 건축과 다를 게 없다. 우리가 건축을 경험할 때, 파사드(표지)를 마주하고 그 안의 공간(내지)과 공간을 넘나 들며(책장 넘김) 동선을 따라 평면 위를 거니는 것(시선의 흐름)처럼, 책도 그렇게 닮았다. 

 

“책은 여러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 그림 출처: http://www.tofugu.com/


“건축에서 시퀀스는 사람에게 다양한 경험을 가능케 한다” 

- 안도타다오 <물의 절(Temple of Water)> 中 아와지 섬

 

면지는 침묵의 공간이다. 표지와 내지는 화려하지만 면지는 수수하다.
눈으로 보는 표지가 시각에 기반하고 있다면, 읽어야 하는 내지는 읽기에 기반한다.
면지는 그 사이에서, 즉 독자가 표지를 열고 내지로 진입할 때
(‘시각 공간’에서 ‘읽기 공간’으로 모드가 전환될 때)
심호흡을 할 수 있는 적절한 완충지대가 되어준다.

- 정민영, <편집자를 위한 북디자인> 아트북스, 2015 / p.48

 

 

시선의 통로

사람의 시선은 불공평하다. 그래서 한 곳을 바라봐도 시선이 집중되는 부분과 흩어지는 부분이 생기기 마련이다. 색(色)도 마찬가지다. 글자의 색과 명도, 그리고 채도에 따라 시선이 편중 되기도 하고 우리가 미처 느끼지 못하는 부분에서 ‘시선의 불공평’이 일어난다. 이는 책 속에서 더 심화 된다. 책은 펼침 면에 따라 가운데 골짜기가 생기고 그 골짜기를 따라 왼쪽과 오른쪽 구분된다. 그리고 손으로 쥐고 있는 부분과 읽는 자세에 따라 눈에서 먼 곳과 가까운 곳이 생긴다. 이렇듯 불공평한 공간에 배열된 글자는 독자에게 온전히 읽히기 힘들다. 때문에 책은 독자의 시선을 고려한 통로가 필요하다. 마치 동선이 좋은 건축에서 오래 머물 수 있듯, 시선의 통로가 확립되면 책의 내용을 온전히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의 지면은 평등한 공간일까? 아니다. 차별이 심한 공간이다.
같은 공간에도 볕이 잘 드는 양지가 있고, 그렇지 않은 음지가 있듯이 지면에도 시선의 양지와 음지가 있다.
전망 좋은 곳이 있는가 하면, 그늘진 곳이 있다.
평편한 지면이 있는가 하면 골짜기가 형성되는 경계면이 있다.
지면의 차별을 결정하는 요소는 크게 두 가지다.

- 정민영, <편집자를 위한 북디자인> 아트북스, 2015 / p.207

 

그런데 왜 문안을 모으고 분산시키는 것일까?
사람들이 길을 따라 목적지를 찾아가듯이 표지에 ‘시선의 길’을 내기 위해서다.
독자는 부지런하지 않다.
가독성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으면 애써 읽으려 하지 않는다.
시선의 길은 정보를 효과적으로 인지하도록 도와준다.

- 정민영, <편집자를 위한 북디자인> 아트북스, 2015 / p.48

  

“올바른 편집 디자인은 보는 사람에게 적절한 ‘시각적 통로’를 마련해주고,
그 통로를 따라 움직이도록 유도한다.”

- 임현우,한상만 <새로운 편집디자인> 나남, 2007 / p.26

 


연출가 = 편집자

 

책은 저자와 독자의 경험을 연결하는 매개체다. 원고는 책의 구조와 배열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연출되어 독자에게 전달 된다. 표지디자인과 내지디자인, 목차 구성, 미묘한 레이아웃, 서체 디자인 등, 한 문장에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요소들이 북 디자인으로써 연출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요소들을 결정 하는 것이 오로지 디자이너의 역할만은 아니다. 책을 만드는 편집자 역시 모든 요소를 컨트롤 할 수 있는 연출자다. 책은 그저 글 모음집이 아니라 작품과 같다. 책은 디자이너와 편집자의 협업을 거쳐 작품이 되고 독자를 만난다. 그리고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경험 매개체'가 된다. 

 

책은 읽는 매체라기보다 경험하는 매체다.
독자는 저자가 완성한 원
고를 내용에 맞게 편집 디자인한 책을 만지고, 보고 느끼면서 읽는다. 

그런데 ‘읽기’만 강조되다 보니 독서 과정에 동원되는 다른 감각은 무시된다.
읽기를 통한 내용 전달은 책의 중요한 기능이지만 내용 전달이 책의 전부는 아니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책은 보고 만지면서 느끼게 된다.
모든 감각이 동원되는 것이다.

- 정민영, <편집자를 위한 북디자인> 아트북스, 2015 / p.19

 

제목 편집자를 위한 북 디자인(디자이너와 소통하기 어려운 편집자에게)
출판사 아트북스
저자 정민영
출판일 2015. 0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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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웃

더욱더 관찰하고 더욱더 통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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