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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예술가의 자상화, 삶에 대해 사유하다.

15.08.13 1

 
- <자화상> 빈센트 반고흐. 1889, 오르세 미술관

 



위 그림은 반 고흐의 <자화상>이다. 앞으로 죽 늘어놓을 장황한 말들과 있는 힘껏 멋을 부릴 문장에 앞서 그림을 먼저 던져놓는 이유는 우연히 이 글을 읽게 될, 아니면 가볍게 뒤로 가기 버튼을 누를 수도 있는 당신과 ‘어느 문제’에 대해 생각을 공유하고 싶어서다. 우선 이 글을 타이핑하고 있는 지금의 나는, 이 글을 읽고 있을 당신의 존재가 궁금하다. 마치 반 고흐의 자화상이 가진 눈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것처럼 나는 글을 통해 내 존재의 자화상을 그리고 그것을 통해 당신과의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비록 일방적인 소통일지라도.

 

나는 미술 평론가들이 정의내린 고흐의 자화상에 대한 설명을 쉽게 이해할만한 지식을 갖지 못했다. 모르는 자의 변명일수도 있겠지만, 설령 그 정도의 지식을 가졌다 할지라도 적어도 지금은 있는 그대로 그림을 이해하고 싶다. 예술은 공부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 즐겨야 하는 것이니까. 그러므로 당당히 말해야겠다.

 

"나 고흐는, 여기 이렇게 존재하며 이 그림을 보는 당신의 존재 또한 인정한다. 나는 당신을 보고 있다. I see YOU!"라는 강렬한 '존재'와 그의 '자(自)의식'이 내가 보고 느낀 그의 자화상이다.”

 


<자화상(自畫像). 스스로 그린 자기의 초상화>

 

 


-<게르니카> 파블로 피카소, 1937


-<샘> 마르셀 뒤샹,63 x 48 x 35cm, 1917

 

 

 

예술가들의 작품을 보고 있자면 작가 개인의 경험과 생각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다. 피카소(Pablo Picasso)의 <게르니카(Guernica)>와 뒤샹(Marcel Duchamp)의 <샘(Fountain)>도 결국 모두 그들 자신의 경험과 느낌, 생각을 바탕으로 만든 작품인 것이다. 이처럼 대부분의 예술작품은 작가 스스로의 자의식을 담았다고 말 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은 탄생부터 1인칭 시점의 우주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모든 인식의 중심에 '나'를 설정한다. 데카르트가 말했듯, 나의 존재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므로 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을 '나' 위주로 해석하고 표현한다. 어쩌면 인간은 '나'외엔 아무것도 없는 동물일지도 모른다. 여담이지만, 술집이나 카페에서 옆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대화하는 것을 가만히 듣고 있으면 거의 모든 말이 "나는 이래, 나는 어때, 내 생각은 이래, 나도 그런 일 있어"로 시작하는 걸 느낄 수 있다.


-<파이프를 물고 귀에 붕대를 한 자화상> 빈센트 반고흐, 1889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 인간은 이토록 자의식이 강한 동물이자 절대로 1인칭 우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따라서 자신의 모습을 자신의 눈으로 볼 수 없다. 때문에 절대로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으며 ‘나의 모습’이나 ‘본질’같은 명제는 영원히 풀지 못 할 숙제로 남는다. 이런 인간의 태생적 난제를 풀기 위해 철학자나 심리학자와 같은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만의 방법으로 이론을 펴냈는데, 예술가들은 이런 난제를 풀기위해 '자화상'을 그렸다. 즉, 자화상이란 예술가가 자신의 본질에 대한 탐구와 성찰을 하기위한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다. -나는 무엇인가! 그리고 나를 보는 너는 무엇인가!

 
-<I,ve got it all> 트레이시 에민 

 

 

 

현대 예술계에서 문제작가로 평가되는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의 <I,ve got it all> 이다. 위 사진에서 알 수 있듯, 작품의 주제는 지극히 개인적인 삶의 흔적들이다. '나의 삶이 곧 나의 예술이고, 나의 예술이 곧 나의 삶이다.' 라는 그녀의 말처럼, 그녀는 예술 활동을 통해 스스로의 본질과 자아 성찰에 대해 끊임없는 탐구를 반복한다.

- 메이플 소프 (Robert Mapplethorpe, 1946 -1989)

- 낸 골딘 (Nan Goldin, 1953~)

 

 

많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모습을 담아냈다. 자아의 성찰이 아닌 존재의 증명으로서 자화상을 논할 때, 화가의 자화상이나 사진가들의 셀프 포트레이트는 또 다른 목적성을 띄기도 한다. 메이플 소프(Robert Mapplethorpe)는 게이 사진가, 성 소수자로서의 삶을 살았던 젊은 시절의 자신을 기억하기 위해 자신을 사진에 품었다. 낸 골딘(Nan Goldin)은 누군가에게 ‘당해야만 했던’ 폭력의 결과가 훗날 기억의 왜곡으로 아름다운 노스텔지어로 변하는 것을 막기 위해 멍 든 자신의 얼굴을 사진으로 남겼다. 둘의 작품은 온전히 자신의 경험을 담은 일기 혹은 모뉴먼트로서의 자화상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데카르트

 


고작 어떤 예술가의 얼굴이 담겨있을 뿐인 ‘자화상’이 예술로서 가치를 가지는 이유는, 그 안에 숨어있는 자아 성찰이나 존재의 증명에 대한 노력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혹은 자기 자신을 알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우 우우~ 우리존재 화이팅
- 버벌진트

 

 


그렇다고 예술가, 철학자 혹은 심리학자들만이 인간의 존재나 스스로의 본질에 대한 탐구를 하는 것은 아니다. 버거운 현실 앞에 무너지고 희미해지는 건 젊은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내 존재에 대한 고민과 탐구가 자신에 대한 재발견과 잃어가는 자존감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게 조심스러운 생각이다. 나는 소중한 존재이며 너 또한 소중한 존재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치 있다. 

 

 

박차

반가워요, 박차입니다.
뇌가 섹시해지는 것을 인생의 과업으로 삼은 애정결핍증 환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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