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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예민하면 안 되는데?

16.07.08 0

출처: 곽정은 트위터 캡쳐 

 

작년 이맘 때쯤, 곽정은 트위터에 오른 해당 멘션으로 여론이 뜨거웠다. 누군가는 ‘친절한 택시기사의 칭찬’을 불편해하는 곽정은을 ‘초 예민러’, ‘프로 불편러’라 칭했고 누군가는 ‘일부 공감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대다수의 여론이 곽정은을 ‘예민한 여자’로 내몰았다. 소시민적인 성격 탓에 의견을 표현한 적은 없지만 그녀가 느낀 ‘불쾌감’이 무엇인지 그간의 경험으로 가늠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조금씩 그녀의 발언을 이해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는 듯 하다.

 

왜 예민하면 안 되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20대 절반을 채운 안내원 아르바이트에서 성차별적인 발언을 참으로 많이 들었다. 30대 초반의 감독은 항상 여성안내원들의 나이를 묻고 "여자 나이는 크리스마스 케이크 같은 거죠ㅎ. 25살 이후에는 헐값에 팔리잖아요ㅎ"라는 개그(?)를 서슴지 않았다. 그 이후에 참가한 회식 자리에서도 "여자는 대학 뭐 이런 거에 상관 없이 남자만 잘 만나서 시집 가면 되죠. 그러니 OO씨, XX씨도 남자 잘 만나면 되겠다ㅎ"라고 했다.(OO씨는 나였다.) 당시에는 불쾌감의 정확한 원인도 모른 채 미간을 찌푸리며 ‘그러는 감독님이랑 여친은 몇 살이세요?’라든가, ‘저희 엄마는 제가 애완용 동물처럼 살라고 학비 3천 만원 들이지 않았어요’라고 답했는데 그에 대한 반응은 대부분 “무섭다”였다. 지금에야 이런 대꾸에 “사이다네!”라고 하겠지만 당시에는 저런 같잖은 개그(?)가 마치 ‘현관문에서 신발을 신듯’ 자연스러웠고 그에 대한 나의 반응은 ‘기가 세네’라는 평이 대부분이었다.



여자답다(Like a girl)는 것  

사실 지금도 ‘그런 평’을 종종 듣는다. 각종 사회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의견을 이야기할 때, 누군가의 발언에서 차별적인 단어선택을 지적할 때, 범죄가해자에 빙의 하여 쓸데 없는 감수성을 발휘하는 사람을 비판할 때 등. 그럴 때면 전투력을 상실한 게임 캐릭터마냥 무기력해지곤 한다. 생각해보건대 아마도 ‘너 기 세다. 무서워’라는 문장 앞에는 ‘여자가’ 혹은 ‘여자치고는’이라는 수식어구가 생략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체 왜 그런 문제에 대해 ‘여자로서’ 예민해지고 무서워지지 않으면 안 되는 지 항상 궁금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그에 대한 ‘타당하고 논리적인 이유’를 들어본 적은 없다.

 


그리고 의외로 예상치 못한 곳에서 힌트를 얻었다. 최근 위스퍼는 ‘여자답게(like a girl)’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공익광고 격인 본 캠페인은 그간 ‘여자답게’가 규정하는 사회적 프레임에 대해 재고하고 있었다. 영상 초반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여자답게 뛰어보세요’, ‘여자답게 싸워보세요’라는 감독의 지시에 우스꽝스런 제스처를 취한다. 그리고 해당 수식어구가 함의하고 있는 ‘진짜 의미’가 무엇일지 스스로 답하도록 유도한다.

 


사회는 여성들에게 끊임 없이 ‘여자다운 행실’을 요구하고, 해당 프레임에서 벗어난 여성들에게 ‘넌 왜 이렇게 여성스럽지 못하니?’라는 말로써 자신감을 떨어뜨리고 우울하게 만든다. 물론, 메시지는 다양한 형태로 표현된다. 사실 ‘여자답다’는 표현자체가 불쾌한 것은 아니다. 다만, 단순히 표현되는 ‘말의 형태’ 말고 기저에 숨어있는 ‘부정적인 의미’와 ‘의도’에 까끌까끌 함을 느끼는 것이다.

 

 

 

무희(캉캉) 나혜석, 캔버스에 유채,41X32cm,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유추해보자면 아마도 그녀는 아저씨의 멘트에 숨어있는 ‘넌 보통여자들과 다르구나’는 칭찬을 가장한 (여성에 대한) 그릇된 인식에 기분이 나빴을 것이다. 물론, 아저씨는 혹자가 말하는 그저 ‘넉살 좋은 아저씨’일 뿐,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건 꽤나 심각한 문제일지 모른다. ‘여자나이는 크리스마스 케이크 같은 거죠ㅎ’라는 망발이 개그가 됐던 시절도 있었으니 말이다. 때문에 아저씨의 말이 온전히 칭찬으로만 느껴질 뿐, 그녀의 불편함이 이해되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어쩔 수 없는 문제요, 지금 우리가 마주한 사회의 실상일 것이다.

 

 

나혜석과 이 시대의 ‘경희’들  


“먹고 입고 하는 것만이 사람이 아니라 배우고 알아야 사람입니다. 당신 댁처럼 영감 아들간에 첩이 넷이나 있는 것도 배우지 못한 까닭이고 그것으로 속을 썩이는 당신도 알지 못한 죄입니다. 그러니까 여편네가 시집가서 씨앗을 보지 않도록 하는 것도 가르쳐야 하고, 여편네 두고 첩을 얻지 못하게 하는 것도 가르쳐야 합니다”하고 싶었다.


- 출처: 1918년 3월 나혜석이 <女子界>에 발표한 단편소설 <경희>일부 발췌
김형필(2001), <나혜석의 삶과 문학> 외국문학연구9, p93-116

 

-1932년경 나혜석의 작업실에서 촬영한 사진, 출처: 아이파크 스토리

 

그런 면에서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인 나혜석의 삶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그녀는 당시 가부장적인 사회를 비판하고 ‘여성해방’과 ‘자유연애’를 주장하며 여성의 독자성을 설파한 ‘신여성’이었다. 그녀는 글과 그림에 자신을 투영하여 주체성을 드러냈다. 그녀는 여성 역시 남성처럼 교육을 받아야 하며, ‘가부장제’라는 비합리적 제도에 도전할 것을 주장했다. 이러한 그녀의 메시지는 소설 <경희>와 목판화 <김일엽의 하루>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계집애라는 것이 시집가서 아들 딸 잘 낳고 시부모 섬기고 남편을 공경하면 그만이니라.”

“그것은 옛날 말이에요. 지금은 계집애도 사람이라 해요. 사람인 이상에는 못할 것이 없다고 해요. 사내와 같이 돈도 벌 수 있고, 사내와 같이 벼슬도 할 수 있어요. 사내가 하는 것은 무엇이든 하는 세상이에요”

“뭐 어쩌고 어째. 네까짓 계집애가 하긴 무얼 해. 일본 가서 하라는 공부는 아니하고 귀한 돈 없애고 그까짓 엉뚱한 소리만 배워가지고 왔어? 그리로 시집가면 좋은 옷에 생전 배불리 먹다 죽지 않겠니?”

“먹고 살다만 죽으면 그것은 사람이 아니라 금수이지요. 보리밥이라도 제 노력으로 제 밥을 먹는 것이 사람인 줄 압니다. 조상이 벌어 놓은 밥, 그것을 그대로 받은 남편의 그 밥을 또 그대로 얻어먹고 있는 것은 우리집 개나 일반이지요”

 

-출처: 한국근대여성문학사론 p199, 한국문학과 전통 p54
<경희> 나혜석, <여자계>中 p94-95면, 1918년 3월

 

소설 <경희>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똑똑한 딸을 일본으로 유학 보낼 만큼 선구적이지만, 여성의 역할에 대해 여전히 봉건적인 캐릭터로 표현된다. 이에 경희는 그간 온순했던 모습을 버리고 아버지에 맞선다. 그녀의 대사를 살펴보면, 아버지로 표현되는 가부장제 횡포에 대한 비판과 이를 통해 여성으로서 주체성 확립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김일엽의 하루 목판화 나혜석, <신여자> 제2호, 1920년 4월,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판화에 등장하는 김일엽은 가사 일을 하면서도 독서와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고 나라와 국가를 걱정하는 인물이다. 이는 어머니와 아내로서 해야 할 일을 다하면서도 사회에 공헌하는 여성의 모습을 나타낸다. 김일엽의 모습은 나혜석이 지향하는 이상적인 모습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시대라면 당연했을 그녀의 메시지는 당시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급진적으로 다가왔다.

 

 

저것이 무엇인고 나혜석, 목판, 1920년 2월,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저것이 무엇인고. 시속 양금이라던가.
아따 그 기집애 건방지다.
저것을 누가 데려가나.
_두 양반의 평


고것 참 이쁘다. 장가나 안들었더라면... 맵시가 동동 뜨는 구나.
쳐다나보아야 인사나 좀 해보지.
_어느 청년의 큰 걱정

 

<저것이 무엇인고>는 여성을 바라보는 이중잣대(멸시와 성적(性的)욕망의 대상)를 드러낸다. 판화 속 여성은 바이올린을 들고 있는데, 노인 두 명은 그녀를 가리키며 “아따 그 기집애 건방지다”며 손가락질 한다. 반면, 청년은 그녀의 외모를 평가하며 ‘장가나 안 들었더라면...’하고 아쉬움을 표한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지금, 여성에 대한 시선은 과연 얼마나 변화 했을까.

 

 

개척자 나혜석, 출처: 네오룩

 

“편하게 전과 같이 살다가 죽읍세다”라는 안일한 생활에의 유혹, “남들이 다 하는 것쯤의 학문으로 나 같은 것이 무얼 하나”라는 자기 성찰, “그리 많이 해 무엇 하니, 사내니 고을을 간단 말이냐? 군 주사라도 한단 말이냐? 지금 세상에 사내도 배워가지고 쓸 데가 없어서 쩔쩔매는데”라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이런 것은 경희의 불안이자 작가 나혜석과 동시대 여자 유학생 모두의 불안이다. 이들이 시대의 선각자일뿐 아니라 특히 여성이기에 더 심각하게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 출처: 한국근대여성문학사론, p67

 

<경희>에서 나타나는 표현은 어쩌면 이 시대를 살며 ‘여성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에게도 해당할 것이다. 나혜석 역시 여러 작품과 파격적인 행보로 여성의 ‘주체성 확립’과 ‘성적 자기 결정권’을 주장했으나 당대 사회적 분위기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때문에 현실에서는 자신과 외부에 끊임 없이 갈등해야 했고, <경희>에서 드러나는 회의감은 타인의 이야기가 아니었을 것이다. 때문에 이상과 현실 측면에서 그녀를 평가하는 다양한 관점이 있다.

 

 

 

자화상 나혜석, 캔버스에 유채,60X48cm,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분명 100년이 지난 지금 시대를 사는 ‘경희’들에게도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 이성/동성간 대립에 의한 회의감 등, 다양한 내/외부적 갈등과 그에 따른 괴리감이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사회에서 체감하는 불편함을 들추어내 이야기하고, 그 원인을 찾고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면 그건 분명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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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및 문헌 

네이버 캐스트 <한국최초의 여성화가>

<한국근대여성문학사론>

<한국 문학과 전통>

이문정(2005), <한국 근대 여성 미술가의 작품에 나타난 여성성 연구: 나혜석, 박래현, 천경자를 중심으로> 현대미술학 논문집(9), p177-214

김형필(2001), <나혜석의 삶과 문학> 외국문학연구9, p93-116

류진아(2011), <나혜석의 급진적 페미니즘 연구> 인문사회과학연구 제12권 제1호

김경애(2013), <나혜석의 여성해방론의 실현과 갈등> 여성과 역사, p263-297

김해인

읽는 사람이 즐거운,
언제나 유쾌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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