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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작가 시점] 천천히 가는 '느림'의 미학, 이종서

16.05.12 0

<전지적 작가 시점>은 노트폴리오에 작품을 게재하는 작가를 선정해 그의 작품을 인터뷰하는 자리입니다. 그동안 작가가 어떤 의도로 이런 그림이 그렸는지, 무슨 생각으로 이런 표현을 했는지 궁금하셨죠? 앞으로 진행되는 <전지적 작가 시점>을 통해 작가보다 작품 중심의 이야기를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이종서

#01. 느림

느림

 

두번째 느림



<느림>은 작품 제목 그대로 ‘느림’이 느껴진다. ‘느림’의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맑은 날씨와 그림 속 인물의 자연스러운 포즈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물론, 비 오는 날도 좋긴 하지만 ‘느림’을 누리기에는 맑은 날씨가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날씨가 좋으면 공간에 제약 없이 어디든지 갈 수 있으니 그림 속 인물들의 마음도 한결 편안해지겠죠? 그 외에는 등장인물들이 배경과 잘 어울릴 수 있도록 여러 포즈를 미리 생각하고 작업하고 있어요.

 

느림이 느껴지는 공간으로 저 두 장소를 선정한 이유라도 있나. <느림>은 대학교의 한 건물 같기도, <두 번째 느림>은 해변가가 떠오른다.

아쉽게도 예측하신 곳과는 전혀 다른 곳에서 모티브를 얻었어요. <느림>의 경우, 3~4년 전에 경복궁에 간 적이 있는데 거기서 찍은 사진에 모두 기둥이 있더라고요. 우연찮게 기둥 위에 얹혀진 지붕을 포토샵으로 날려봤는데 꽤나 매력적이라 염두에 두었던 것입니다. 그게 첫 번째 <느림>의 배경이 될 줄은 몰랐어요. <두 번째 느림>은 화장실 창문을 내다보다 떠올랐어요. 주택이라 창문 밖을 내다보면 다른 집 풍경이 보이는데, 어느 날 빨래를 너는 할머니의 모습이 너무나 정겨워서 쉽게 잊혀지지 않았어요. 작품 속 빨래는 창문인 셈이고, 젊은 여자는 할머니인 셈이죠.


몇 가지 색을 사용하지 않아서일까, 작품 전반에 ‘차분함’이 녹아있다. 색채표현에 있어서도 몇 가지 특정한 색만 선정한 이유가 있나.

그림 속 주인공에게 포커스를 맞추려면 색을 많이 안 쓰는 것이 좋다는 걸 많은 작업을 통해 알았지만, 색을 많이 쓴다고 차분함이 안 느껴지는 것도 아니라고 봐요. 다만 저의 성향일 뿐이죠. 

 

세번째 느림



같은 맥락에서 이종서의 작품 대부분은 하늘을 에메랄드 빛으로 표현했더라. 그래서 언뜻 하늘이 바다 같기도, 하늘 같기도 하다.

항상 색채 작업을 할 때는 하늘을 마지막으로 작업합니다. 우선, 현실적인 ‘진짜 하늘색’을 넣어보긴 하지만 전적인 그림 톤을 업 시키는 ‘무언가’가 필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노란색의 기운이 감도는 에메랄드 빛을 자주 사용해요. 약간의 노란 빛을 띠는 하늘은 생기가 넘치는 것 같기도 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아지랑이까지 보이는 것 같거든요. 때문에 차분한 에너지를 불러 일으키는 에메랄드 빛을 사랑합니다. 그래도 요즘에는 여러 가지 색으로 하늘을 표현하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느림>과 <두 번째 느림> 작업 시 가장 유의했던 부분은 무엇인가.

‘빛’과 ‘그림자’입니다. 오로지 나를 위한 시간에 따뜻한 빛을 맞으며 보내는 시간은 참 행복하죠. 그리고 그 빛이 따갑게 느껴질 땐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이렇듯, 빛과 그림자는 항상 공존하지만 제 각각의 기운이 있어서 그림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그만큼 조화를 이루는 것 같아요. 빛과 그림자의 구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림이 바뀌기 때문에 이런 작업은 항상 흥미롭고 즐겁습니다.

 

특별히 ‘느림’을 연작 시리즈로 제작한 이유가 있나.

어느 날 우연찮게 마주한, 밀란 쿤데라의 <느림>이라는 책 제목이 단번에 제 마음을 사로잡았어요. 그 하나의 단어가 <느림>시리즈를 제작하는 복선이 됐어요. 누구나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한번쯤 속도를 줄이고 현재의 삶을 음미하고 싶을 거예요. 개인적으로 저는 그림을 그릴 때가 ‘느림’을 만끽하는 때인데요, 이런 ‘느림’을 제 그림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었어요. 

 

#02. 러버덕(Rubber Duck)

 

진지하게 활을 쏘는 여자와 그와 상반되는 귀여운 러버덕의 표정이 다소 코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여자는 왜 러버덕을 저격하고 있나.

러버덕이 내한한 첫날에 바람이 빠진 일이 있었는데, 거기서 모티브를 얻었어요. 제가 생각하는 사건은 두 가지입니다. 러버덕 제작업체와 좋지 않은 관계가 된 누군가가 화풀이를 하는 것, 그리고 사회에 불만이 많고 애정 결핍이 있는 인물이 러버덕에게 화룰 푸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이렇게 해석했는데 다른 분들은 그림을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하네요.

 

마치 만화 속 한 장면 같다. 두 등장인물(?)에게 말 풍선을 넣는다면 어떤 대사를 넣고 싶나.

여자: 쓰~읍!!
러버덕: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이종서의 작품은 전반적으로 톤 다운된, 따듯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풍긴다. 특별히 이런 화풍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

재학시절에도 그림을 그렸지만, 본격적으로 그리게 된 건 다른 직업을 얻고 난 후부터였어요. 강철을 다루다 보니 차갑고 위험한 일이었죠. 하루의 반 이상을 일터에서 보내는 경우가 많았기에 심신이 많이 지치기도 했었고요. 그래서 그림을 그릴 때만은 따뜻해지려고 했는지 그림이 전부 차분하고 따뜻하게 나오는 것 같아요.

 

러버덕 납치(Rubber Duck Kidnap)

 

문득 든 생각인데, 눈과 코만으로 러더벅의 귀여움을 표현하기 쉽지 않았을 거 같다. 작업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나.

러버덕의 디자인은 정말 간결해서 동그라미 두 개, 웃는 입술 하나를 얼굴에 대충 넣어도 러버덕이더군요. 그만큼 잘 만들어진 디자인이라 생각해요. 다만 명암을 넣는 작업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수월하게 작업을 했습니다. 항상 하는 얘기지만 포토샵이라는 도구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이종서 작품은 전반적으로 안정적인 구도를 가지고 있다. 작업 시 공간과 구도를 어떻게 구성하나.

네모 안의 그림에 집중 시키려면 ‘공간’과 ‘구도’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림의 공간과 구도는 딱히 정해진 공식 없이 다양하죠. 저 같은 경우에는 그림 속 주인공을 이리 저리 옮겨보고 가장 잘 어울리는 곳에 배치해 작업하고 있어요.

 

#03. 라이카(스푸트니크 2호)

            

            

            

            

 


'라이카(스푸트니크 2호)'는 작품의 이름이자 우주선의 이름인가.

‘라이카’는 강아지 이름이고 ‘스프트니크 2호’는 러시아 인공위성의 이름입니다.

 

우주선 속에 있는 강아지의 표정이 서글퍼 보인다. 작품을 보고 직관적으로 ‘죽음을 맞이한 반려견을 다룬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무슨 사연인가.

러시아 과학자들이 우주 공간에서의 생명반응을 관찰하기 위해 떠돌이 개였던 ‘라이카’를 우주에 보낸 일이 있었어요. 이 그림은 떠돌이 견 ‘라이카’가 죽음을 맞이하기 몇 시간 전의 상황을 그린 것이죠. 세계 최초 우주로 날아간 동물이지만 살아 돌아오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작업동기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때문에 시작됐어요. 어느 날 무라카미 하루키의 <스푸트니크의 연인>을 읽게 되었는데 제목의 숨은 의미를 아무리 생각해도 알아낼 수가 없어서 백과사전을 찾아봤어요. 그때 ‘스푸트니크’가 러시아의 인공위성이란 걸 알았고 그 안의 ‘라이카’를 알게 됐습니다. 순간, 라이카의 슬픈 이야기를 그림으로 옮겨 놓으면 좋겠다 싶어서 작업을 했어요. 만약 제가 <스푸트니크의 연인>을 읽지 않았다면 라이카에 관한 이야기를 그리지 못했겠죠.

        

우주선에 실린 라이카, 출처: http://hankookilbo.com

 

마지막 장면에서 강아지 눈동자에 비추는 형상이 슬퍼보인다. 

스푸트니크2호를 우주로 띄우기 전, 사람들과 함께 했던 추억을 떠올리는 모습입니다.

 

문득 우주선의 종착지는 어디일지, 라이카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해진다. 

소련 정부는 라이카를 우주선에 태워 보낸 지 6일 째 되는 날 공기부족으로 사망했다고 발표했어요. 하지만, ‘라이카’는 사실 우주선의 높은 내부 온도로 스푸트니크를 발사한지 7시간 만에 사망했다고 해요. 라이카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짐작이 됐어요. 동물은 말만 못할 뿐이지 인간이 느끼는 감정을 똑같이 느낀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구에서 함께 했던 사람들과 추억을 떠올리며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했을 라이카를 떠올리면 마음이 먹먹해져요.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스푸트니크2호의 잔해가 우주 속에서 유유히 방랑하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I miss you

그래서 일까, 전반적으로 이종서의 작품은 단순히 ‘이미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스토리’가 녹아 있는 것 같다. 마치 쭉 이어지는 영상의 한 장면을 캡쳐한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작업 시, 미리 스토리를 감안하는지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평소에 제목을 먼저 정하고 작업을 시작하는 편입니다. 제목을 미리 정한 뒤, 그것에 관한 정보를 모두 습득한 후 작업을 시작하죠. 그렇게 하는게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데 많은 도움이 되더군요. 스토리 작업은 창작이기 때문에 머리를 쥐어짜야 하는 즐거운 고통이 뒤따르지만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 생각해요.


이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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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naver.com/ieejs02

김해인

읽는 사람이 즐거운,
언제나 유쾌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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