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Story  /  피플

[전지적 작가 시점] '공간'과 맞닿은 '여행'에 관한 기록, 최지수

17.03.02 0

<전지적 작가 시점>은 노트폴리오에 작품을 게재하는 작가를 선정해 그의 작품을 인터뷰하는 자리입니다. 그동안 작가가 어떤 의도로 이런 그림이 그렸는지, 무슨 생각으로 이런 표현을 했는지 궁금하셨죠? 앞으로 진행되는 <전지적 작가 시점>을 통해 작가보다 작품 중심의 이야기를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최지수 

BEST ROOMMATE EVER

누군가의 여행일기(Lake Zurich) 

 

Life after people. 인간멸망 그 후, 갑자기 그들이 모두 사라졌다. 

 

특별히 ‘여행’과 ‘공간’을 주제로 작업하는 계기가 있나.

공간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레 ‘여행’을 키워드로 작업을 하게 됐어요. 여행을 하면 다양한 공간을 그릴 수 있으니까요. 또, 어릴 때부터 유독 집을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백과사전에 실린 건물 도면 자료를 굉장히 좋아했어요. 그렇게 공간에 대한 관심이 확장되다 보니 자연스레 연극무대나 공연장 같은 ‘가상의 공간’에도 호기심이 생겼어요. ‘여행’과 ‘공간’을 주제로 작업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이유는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는 가장 큰 단위가 ‘공간’이기 때문이에요. 

 

‘여행’을 주제로 작업하는 최지수만의 특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여행을 주제로 작업할 때는 철저히 관찰자 입장에 서려고 해요. 여행을 통해 받는 인상은 너무나 단편적이기 때문에 그곳에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과 생각의 차이가 분명 존재하니까요. 예를 들어, 내가 30분 동안 머물면서 아름답다고 느꼈던 장소가 그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감흥도 없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지나친 낭만은 담지 않으려고 해요.


최지수의 작업은 여행뿐만 아니라 ‘공간’에 대한 애착이 큰 것처럼 보인다. 본인이 느끼는 공간의 매력은 무엇이며, 공간을 통해 나타내고 싶은 메시지는. 

공간묘사에 애착이 생기고 제 작업의 주된 방식이 된 이유는 인물묘사에 서툴다는 단점이 작용해서예요. 사실, 인물묘사를 통해 전할 수 있는 이야기가 참 많아요. 표정, 외향, 대화, 습관 등등이요. 하지만 저 같은 경우엔 카메라를 뒤로 훅 빼서 인물이 서있는 장소를 묘사하는 게 더 적성에 맞더라고요. 그 후로 더욱 공간에 주목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인물묘사에 애정이 없는 건 아니에요. 그래서 그림 속에 여러 장치를 설정해서 주인공을 묘사하곤 하죠. 그림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관객들이 제 작업을 통해 조금이나마 끈질기게 그림에 집중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01. Road trip

<Road trip 01: a Motel>

 

<Road trip 02: a Gas station>

공간표현이 평면적이면서도 입체적이다. 최지수가 공간 표현에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무엇인가. 

작업 시, 이 곳은 만들어진 공간이란 걸 어필하려고 애써요. 그래서 익숙한 기호나 소품을 인위적인 곳에 매치시키는 걸 좋아하죠. 그래서 초현실주의 화풍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거기서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Road trip>시리즈는 어떤 감상에서 시작된 작업인가. 

어릴 때부터 많이 봐왔던 외국 영화나 미국 드라마 속 ‘로드 트립’에 대한 로망에서 시작됐어요. 한번 도 겪어본 적 없고, 앞으로도 겪지 않을 ‘끊임없이 이어지는 길을 달리는 여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여행에 대한 동경과 막연한 낭만을 시작으로 작업을 했어요. 사실 저는 차멀미가 심해요. 그런데다 가까운 지인에게 전해 듣기로 ‘로드 트립’은 전혀 제 타입의 여행이 아니더라고요. 하지만 또 평생 못해볼 일은 또 아니고요. 그래서 ‘로드 트립’을 떠올렸을 때, 막연한 동경과 낭만 그리고 두려운 감정이 떠올라요. 그런 기호화된 감각에 대해 작업했다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Road Trip 01>과 <Road Trip 02>의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메시지의 차이가 있는 건 아니고, 약간 내용이 달라요. <Road Trip 01>은 비 오는 밤을, <Road trip 02>는 바로 그 다음날 안개 낀 새벽을 그렸죠. 또, 자세히 살펴보면 <Road Trip 01>에는 일행이 있어요. 그래서 한명이 스쿠터를 지키고, 다른 한명이 빈방을 찾으러 건물에 들어가죠. 하지만 <Road trip 02>에서는 일행이 없어진 채 등장인물 혼자서 주유소에 도착한 모습이에요.


 

<Road trip 01: a Motel> 일행과 함께인 등장인물 

 

<Road trip 02: a Gas station> 혼자 주유소에 방문한 등장인물


전반적인 작업 과정이 궁금하다. 

어떤 그림을 그리느냐에 따라 과정이 다르지만, 대부분 모눈종이에 스케치를 시작해요. 모눈종이를 사용하게 된 계기는 사소해요. 직선을 잘 긋지 못하다 보니 그림의 수평을 맞추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거든요. 결국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모눈종이를 사용했죠. 모눈종이에 스케치를 마친 후에는 스캔을 받아 포토샵으로 채색해요.

 

Road trip의 작업 키워드를 꼽자면? 

긴장감과 기대감

  

#02. Working on holiday FOREVER

여행을 싫어하는 여행가이드의 여행.
누군가에게는 설래는 여행이, 누군가에게는 일상의 한 부분이다.

 

<여행을 싫어하는 여행 가이드의 여행>이라니. 제목부터 심상찮다. 어떤 감상에서 시작된 작업인가. 

3년 전 쯤 만났던 한 베테랑 여행 가이드를 모델로 했어요. 눈이 휘둥그레지는 이국적인 자연풍경 앞에서도 너무나 집에 가고 싶어 하는 모습이 인상 깊더라고요.

 

수많은 인물과 다양한 공간이 등장하는 만큼 복잡하고 화려한 작업이다. 그럼에도 산만하지 않은 인상인데, 그림의 구조와 색감을 선정한 기준이 궁금하다. 

<Working on holiday FOREVER>를 계기로 다양한 색감을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그 전까지는 많은 색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있었는데, 동시에 여러가지 색상을 잘 활용하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 작업을 통해 다양한 색감을 사용해봤어요. 중저채도의 조합, 명도와 채도의 대비 등, 기초조형요소를 연습하는 감각으로 작업했죠. 산만하지 않아 보인다니 연습한 보람이 있네요.

 

물 흐르듯 자연스레 이어지는 공간의 변화가 인상적이다. 이렇듯 공간 측면에서 <Working on holiday FOREVER> 작업 시 가장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좀 더 자유로운 공간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구성이더라도, 시선이 계속 움직이고 재미있는 흐름을 따를 수 있도록 이요. 지금 보면 너무 재미있어하고 싶어 하는 부분이 눈에 띄어 조금 민망하긴 하지만, 이런 시도가 다음 작업을 잇는데 좋은 발판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작업의 배경이된 스키폴 공항과 노이슈반슈타인 성, 출처: http://housandwonders.net, 나무위키

 

그림에 등장하는 각각의 장소에 대해 설명해 달라. 

기본적으로 ‘가상의 장소’를 베이스로 하고 있지만, 여기저기서 모티브를 많이 따왔어요. 공항은 인천공항과 암스테르담의 스키폴 공항이 섞여있고, 호텔에서 이어지는 호수와 자연풍광은 노르웨이 풍경이 많이 담겨있어요. 메인 관광지로 묘사된 성은 디즈니가 <백설공주>를 제작할 당시 참고했다는 독일의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참고했어요.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을 살펴보면 모자를 쓴 사람 같기도, 조류의 한 종(種) 같기도, 공룡 같기도 하다. 이들의 정체는 무엇인가. 

주인공인 가이드는 공룡이고, 다른 사람들은 새예요. 개인적으로 새의 조상이 공룡이라는 설을 좋아해요.

 

특정 공간에 수많은 인물이 등장해선지, ‘월리를 찾아라’가 생각나기도 한다. 혹시 <Working on holiday FOREVER>만의 관람 포인트가 있나. 

가이드가 들고 있는 깃발을 따라가며 이야기를 읽어가거나,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여행지에서 발현되는 자신의 모습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03. 스페인 여행 드로잉

스페인마드리드의 카페 Salón de Peluquería. 미용실같은 외관을 하고 있다. 공정무역 커피 및 초콜렛, 비건샌드위치 등을 팔고있다.

 

스페인 마드리드 카이샤 포럼(Caixa Forum). 프라도미술관 건너편에 있는 미술관. 이끼와 풀을 외벽에 심어놓은 특이한 외형으로 유명한 곳이지만, 외관은 지난번에 그렸으니 이번엔 미술관 안의 사람들을 그려봄.

 

스페인 마드리드 Atocha Railway Station. 아토차 역 앞의 잡상인들. 좌판에 줄을 연결해 들고있다가 경찰이 나타나면 순식간에 줄을 당겨 좌판을 싸들고 도망간다. 출처: 최지수 트위터

 

스페인 여행 드로잉은 그간 최지수가 보여준 ‘여행’과 ‘공간’을 주제로 한 그림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포트폴리오에 올리는 큰 작업이 아닌, 연습장에 가볍게 그리는 그림이라 느낌이 조금 다를 거예요. 재료도 휴대용 수채화 파레트, 물감, 사인펜처럼 평소에 사용하는 것들과 다르고 표현방식도 다르거든요.

 

사진으로 남기는 것과는 다른, 여행지를 그림으로 그리는 일의 장점이 있다면. 

아무래도 같은 장소를 여러 번 되새김질하게 되니 기억에 오래 남아요. 그리고 특정 기억을 내 마음대로 가공할 수가 있다는 점이 장점이죠. 개인적으로 누군가에게 해만 끼치지 않는다면, 어느 정도내 마음에 드는 방향으로 여행을 기억하는 것도 좋은 방법 같아요.

 

여행의 순간을 기억하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나. 

기초적이고 단순한 방법이라 팁이랄 것도 없지만, 여행을 다니며 그때그때의 감상을 일기나 그림으로 남기는 것보다 출장보고서를 쓰는 것처럼 기록해요. 시간, 장소, 이동경로, 교통편, 비용 등을 미리 준비해간 양식에 작성하는 거죠. 여행을 하는 동안의 감상은 나중에 사진을 보고 천천히 떠올리며 정리해도 되지만 관련 정보는 미리 기록해 두지 않으면 찾아보기 너무 어렵더라고요.

 

스페인 마드리드 La Latina 지역. 마드리드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이며 카페나 레스토랑, 술집 등이 모여있다. 그리고 개똥주의 표지판이 많았고, 개똥도 많았다...

 

스페인 마드리드 미술 공예 잡화점 Artesania Chopo. 여행중 쓸 드로잉북을 찾다가 들어간 곳. 자수용품, 조각용품, 공예용품, 지류, 화구, 염료 등등 광범위한 재료들을 판다.


낯선 여행지에서 눈 여겨 보는 요소들이 있다면. 

골목이 끝나는 부분과 건물과 건물이 만나는 부분, 아치형 구조물 너머로 보이는 모습이요. 사실, 이런 요소들이 꼭 여행지에서만 접할 수 있는 요소는 아니지만, 공간이 접히는 지점을 좋아하다보니 한 번 더 보게 되더라고요.

  

여행을 하는 동안 ‘꼭 작업을 해야겠다’고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

여행지에서 순발력 있게 그때그때 그리기보다는 일단 사진으로 찍은 후에 편안한 공간에서 당시의 감상을 떠올려 작업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어떤 때는 아무리 사진을 찍어 봐도 그 느낌이 담기지 않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때면, ‘아 이건 그림으로 그릴 수밖에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조형적으로 너무 아름다워서 손이 근질근질한 경우도 있지만 앞서 언급했던 경우에 더 작업하기에 좋아요.

 

최지수에게 여행이란.

개인적으로 여행지에가면 많이 긴장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이에요. 언어가 통하지 않는 곳도 많고, 영어도 잘하지 못하는 편이라 그만큼 곤란한 일도 많이 생겨요. 하지만 그만큼 많은 자극을 받을 수 있어서 주기적으로 짐을 싸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여행은 사서하는 고생이자 다음번을 기약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해요.


최지수

 

http://notefolio.net/surea09
http://twitter.com/hoopoe09

김해인

읽는 사람이 즐거운,
언제나 유쾌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0 Comments